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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Jan 14. 2021

제로웨이스트
: 일회용 없이 음식 포장해오기

용기내 챌린지 기록


1. 분식류 용기내

분식류는 포장이 어렵지 않다. 주문하고 메뉴가 나올 때까지의 소요 시간이 짧고 떡볶이나 만두 등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을 담아오기만 하면 되기에 기다림도 길지 않다. 떡볶이나 어묵은 포장하면 국물을 더 주실 때가 많으니 떡볶이를 나처럼 국물 때문에 먹는 사람들에겐 희소식이겠다. 먹는 도중 남기고 싶다면 (그럴 일 없었지만) 뚜껑만 닫으면 되고 먹고 나서도 설거지만 하면 되니 쌓일 쓰레기가 없다. 이 얼마나 가뿐한지..!



예전에는 김밥 한 줄도 예쁘게 담아보겠다며 인 당 반찬통을 챙겼지만 최근엔 설거지거리도 줄이자는 생각으로 분식류를 포장해올 땐 통의 크기를 조절해 하나만 챙긴다. 왼쪽의 하얀 통은 3인분은 족히 포장할 수 있는 크기의 반찬통으로 김밥 두 줄을 한꺼번에 담았다.


어느 날은 왕만두가 먹고 싶어 더 큰 통을 들고 길을 헤맸는데 판매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작은 김치만두만 포장해왔었다. 일렬로 예쁘게 담아주신 만두를 몇 인분인지 의식도 못한 채 먹었던 기억이 있다.



2. 식재료 용기내


1) 대파

신선하게 먹고 싶은데 2인 가족이다 보니 대파는 한 단을 사면 얼려두는 게 더 많다. 그런데 필요한 만큼 소분해서 파는 동네 시장을 알게 됐다. 집에서 추가로 손질할 필요도 없이 즉석에서 다듬어주고 내민 용기에 맞춰 잘라 넣어주기까지 하셨다. 새댁 똑소리 난다며 "와이프 잘 만났네!" 하고 남편을 향한 내 칭찬은 덤이었다. 널리 알려진 듯 아직 낯선 용기내 챌린지. 하다 보면 겪는 쑥스러운 일들이 많다.



2) 두부

두부 용기내를 시도하고 성공한 이후로 더 이상 포장두부를 사 먹지 않는다. 당일에 막 나온 신선한 두부는 반을 잘라 바로 먹고 나머지 반은 소분하여 냉동실에 얼려둔다. 얼린 두부는 수분이 빠져 유부와 같은 질감을 내는데 나름 하나의 두부로 두 가지 식감을 맛볼 수 있어 이것도 재미라면 재미겠다.


- 이 브런치 관련 글 : 두부 로드



3) 과일

대형마트는 간편함과 청결함이 장점이다. 하지만 갔다 하면 포장지가 무더기로 나온다. 이럴 땐 걸어서 금방인 동네 마트를 찾는다. 적립 시스템도 없고 진열이 투박해도 박스 채, 바구니 채 파는 동네의 소규모 마트에선 포장 없이 과일을 살 수 있다. 과일은 크기가 제각각이라서 딱딱한 그릇을 들고 가기보다는 장바구니를 이용한다. 망가지고 물러진다며 굳이 비닐 한 장을 더 주시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비닐을 안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 하면 물러나 주신다. 잎이 약한 채소를 담을 땐 그럼에도 강경하게 비닐을 건네신다. 몇 번 실랑이를 해보고 나서 이제는 집에서 출발할 때 비닐도 함께 챙긴다. 불필요한 말이 오가지 않고 추가 비닐도 생기지 않는다.


 

나름 친환경 콘셉트로 파리 여행을 했던 2018년에는 낱개로 파는 납작 복숭아를 손수건에 포장해왔었다. 낱개로 과일을 파는 상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경험이었다.


 

4) 찻잎

제로웨이스트 샵에 갔다가 몸의 기름을 빼준다는 문구에 홀려 미친 듯이 퍼담았던 찻잎. 한 번 우릴 때 1g씩 사용하면 된다고 했는데 4-50일은 먹을 양을 양껏 담았던 기억이 난다. 티백을 하나씩 뜯지 않아도 되고, 소량을 우려 마시니 사용 후에는 건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서 금방 화분의 거름으로 줄 수 있다. 시작도 끝도 제로하다는 것이 용기내 챌린지의 매력이다.



3. 기타 용기내


1) 빵

빵은 용기내 챌린지를 시도하기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먹거리다. 이미 비닐에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포장하려는 용기보다 빵이 크면 잘라 넣어달라고 하는데 모양이 망가지는 것을 우려하여 꺼리는 곳도 있다. 이럴 땐 우리의 신념을 위해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요구할 수 있는가 고민하게 된다. 매장이 바빠 보일 땐 용기에 턱턱 넣어도 상관없을 작은 크기의 것들을 고른다. 정착할 수 있도록 지구 환경에 관심 있는 곳들을 탐색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2) 샐러드

코로나 시국에 매장 내 식사가 꺼려지는 요즘, 만들기 번거로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그때그때 포장해온다. 샐러드는 양이 많을 것 같아 큰 유리용기를 가지고 갔다. 용기내가 기특해서인지, 용기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 아니면 포장용기를 하나 아꼈기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량보다 더 많이 채소를 넣어주셨다고 했다. 덕분에 두 끼에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소스를 여기에 바로 뿌려주는 줄 알았는데 변질의 염려 때문인지 따로 포장해서 완벽한 용기내는 되지 못했다. 샐러드를 용기 내려거든 소스 용기도 더 챙기시기를.


 

2) 만두전골

식재료가 많은 만두전골도 가능할까 궁금해하며 큰 용기 두 개를 가져가 봤다. 총 세 번 시도했고 세 번 모두 흔쾌히 담아주셨다. 육수를 담을 그릇은 마땅히 찾지 못해 그건 비닐 포장해야 했는데 감사하게도 먼저 "육수 담을 그릇은 더 없어요?" 하고 물어봐주셨다. 요청하는 것을 넘어 더 배려해주시려는 이런 마음은 두고두고 회상할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3) 낙지볶음

매콤한 음식이 당길 때 생각나는 낙지볶음. 포장해 올 용기가 똑 떨어져서 고민하다가 냄비를 꺼냈다. 함께 나오는 반찬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 볶음의 맛을 훼손시키지 않을 콩나물만 함께 받아왔다. 그 덕에 음식물 쓰레기 같은 비주얼이 되었지만(?) 막 포장해 온 따끈한 것 맞고요~! 시행착오 덕분에 다음에는 더 수월하게 포장할 수 있었다. 오이냉국은 도시락 보온통에 콩나물과 낙지는 분리해서. 건더기를 다 먹고 남은 국물엔 바로 밥을 넣어 비벼 먹을 수도 있다. 정말 버릴게 하나도 없다.



4) 커피

우리 부부는 각자 텀블러를 하나 씩 가지고 있다. 용량이 크지 않아서 스타벅스 기준 톨 사이즈를 넣기엔 작다. 커피를 왕창 마시고 싶을 때 사이즈를 키울 수 없고 톨 사이즈를 선택하더라도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텀블러 할인이 고맙다.)  최근 남편과 내가 메뉴를 통일하는 날이 생겼고 (그런 날이 드물다), 커피도 많이 마시고 싶어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대용량 보온통.


그란데 사이즈를 두 개 합쳐 달라고 요청했고 너무나 익숙한 듯 직원분들은 보온통을 받아주었다. 마스크를 벗고 나들이를 갈 수 있게 되는 언젠가 여러 사람들과 나눠 마실 커피를 잔뜩 담아 외출하겠노라 다짐했다.



4. 용기내 실패 기록

2년 간 용기내 챌린지에 동참하면서 늘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피자 용기내는 실패 했다. 매장 취식이 가능한 지점 외에는 피자 서버가 없기에 별도로 용기에 옮길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크기에 맞춰 전골용 냄비를 가져갔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가져가고 싶다면 직접 옮기라, 며 포장 박스에 든 피자를 건네주셨는데 그렇게 하면 어쨌든 박스를 사용해버린 거나 마찬가지란 생각에 나온 상태 그대로 들고 올 수밖에 없었다.


왜 번거롭게 저러고 음식을 포장해오나 싶을 수도 있다. 배달은 불가하고 꼬박꼬박 받으러 가야 하니 몸을 움직이기 싫은 날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또, 주문하고 늘 여기에 담겠다는 말을 건네야 하고 비닐을 뜯는 직원분을 제지해야 하며 의아하다는 눈빛과 표정이 돌아올 땐 추가적인 설명까지 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조금 변화를 준 별 것 아닌 일이 지구 환경에 (아주아주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성취감을 느껴본다면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크기나 깊이와 상관없이 몰라서 안 하는 것과 알고도 안 하는 것엔 차이가 있으므로 일단 한 번 해보시기를, 소소한 뿌듯함을 맛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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