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제 일상입니다만
명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마트에서 포장된 제품을 보면 손이 주춤하고, 편의점에 가는 일이 줄었다. "포장해올까?" 하곤 자연스레 유리 용기를 장바구니에 넣고, 비 오는 주말에 모든 게 귀찮아도 배달음식은 끼니에서 제외한다. 허접한 단일 메뉴일지언정 사무실에서 먹을 점심용 도시락을 고민하고 준비한다. 가방이 무거워지고 장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선택의 폭이 줄어 먹거나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제한된다. 참 번거롭다. 그럼에도 반대의 상황들이 더 불편해서 그냥 오늘도 이런 하루를 기꺼이 감내한다.
꽤나 엄격하고 대단한 듯 얘기했지만 나는 완벽한 제로웨이스터가 아니다. 유혹은 늘 존재하며 예상치 못한 실수를 범할 때도 있다. 일회용 잔이 싫어서 커피를 안 마시겠다는 내게 "텀블러를 갖고 다니세요." 하고 핀잔주는 사람도 있다. 몰라서 안 갖고 다니겠나, 나도 그 날은 가방이 가볍고 싶었나 보지. 그래도 이런 생활을 지향한다고 열심히 공표한다. 자꾸 주변에서 나를 감시하도록, 사실은 아무도 내 생활에 관심 없겠지만 보다 자가 검열을 엄격히 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기 위해서.
대부분은 길지 않은 설명에도 "그렇구나." 하며 수긍한다. 속내까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존중해준다. 멋지다고 엄지척을 외치는 분들도 있다. 반대로 일상이 이런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상황도 간혹 있다. 피곤한 선택을 했다며 고생한다는 반응을 돌아오기도 한다. 오늘 내가 입고 온 바지를 보고 "왜 청바지를 입었죠?" 하고 묻는 사람은 없는데, 주류가 아닌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했더니 많은 질문을 받는다. 이런 질문들은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의도를 파악하게 되기도 한다. 순수한 물음이 아니구나 하는. 그런 상황에서 나는 유난을 떠는 사람이 되어있어서 열을 띄고 설명 아닌 해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또 유난이라는 누군가의 생각을 확신으로 바꾸는 것도 같다.
제로웨이스트는 사실 나은 편이다.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환경 캠페인과 다큐, 광고들 덕분이다. 대형마트에서 비닐을 쓰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고 과포장에 대한 규제도 생기니까 처음엔 반발이 컸지만,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명확해서인지 수긍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식습관은 이해시키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작년 하반기부터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한 내가 자꾸 거절하는 사람이 되고 있기 때문이고, 제로웨이스트는 나 혼자 불편하면 그만이지만 식습관은 자리를 같이하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자꾸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휴무자가 많아서 사무실이 조용했던 어느 날의 일이다. 센터장님이 몇 명 없는 걸 알고는 점심 식사를 제안했다. 마주칠 일도 말을 나눌 일도 극히 드물어 내가 어떤 식습관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분이었다. 나는 점심을 매일 챙겨 오는 직원이었어서 동료들이 같이 갈 수 있는 거냐고 나를 걱정했다. 어깨를 으쓱했더니 한 분이 총대를 매 줬다. 슬님은 비건이라 아무거나 먹을 수가 없어서요, 하고. 도시락을 이미 싸왔으니 저 빼고 편히 드시고픈거 드셔도 된다고 함께 사정을 설명했다. 센터장님은 "메뉴를 바꾸지 뭐!" 하며 이건 먹을 수 있었요? 저건요? 하며 나를 배려해주셨다. 한식으로 메뉴가 바뀌었고 식당으로 가는 내내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있었다. 고마웠어야 했을까, 나 하나 때문에 4명의 메뉴를 바꾼 상황, 그냥 난 그 상황이 좀 불편했다.
"건강 때문인가? 안타깝네, 먹는 재미도 인생의 큰 부분인데.", "외국에 있을 때 채식주의자들을 보긴 했는데, 저는 이렇게 엄격한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날 식사를 하기 전, 후에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 중 일부다. 나는 잘못한 사람처럼 "하하. 그렇죠? 좀 피곤하게 살죠?" 하고 답했다. 그들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다. 오늘은 짜장면 말고 짬뽕이요, 하는 것처럼 어떤 기호와 선택의 문제인데 스스로 존중받을 자유를 차 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커피를 사러 가서 두유로 바꿔 주문하는 내게 누군가가 우유도 먹을 수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이건요? 저건요?, 궁금한 항목이 점점 늘어났다. 설명이 길어지는 듯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음, 얼굴이 있는 모든 건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얼굴이 없어도 동물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그것도요." 하고. 상대방은 하하하 웃더니 "저에게는 미나리에게서도 얼굴이 보이는데요? 그럼 그것도 먹으면 안되죠!" 했다.
소나 돼지를 먹지 않는 게 환경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묻던 친구도 있었다. 소가 분출하는 메탄가스 때문이냐고. 나는, 물론 그것도 맞지만 농장을 만들기 위해 벌목하는 산림이 너무 많고,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개체를 키우기 위해 항생제가 많이 투여되며, 배설물로 인한 토양과 해양 오염도 크다고 대답했다. "아아! 그렇구나. 오오!" 그는 경청했고,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했다. "아, 오늘 곱창 엄청 당겨!"
화가 났다. 아니 저럴 거면 왜 물어보는 거지 싶어서. 받아들인 라이프 스타일을 정착시키지 못한 초보자는 모든 반응에 예민했다. 대처 방법을 몰라 태도에 여유가 없었고 그럼에도 모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조용히 있거나 웃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제로웨이스트도 처음엔 그랬던 것 같다. 입 주변을 닦기 위해 티슈를 두 장씩 뽑아 쓰고 버리는 사람을 볼 때, 물 한잔도 꼭 종이컵에 마시는 사람을 볼 때, 동네 마트에서 주는 비닐봉지나 카페에서의 빨대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 쓰는 사람들을 볼 때 등등. 한심하거나 화가 났다. 거리를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적도 있다. 그땐 내가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니 그들의 태도를 판단해도 된다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우월감에 차있었던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우스운 자만심인지. 그렇게 4년, 제로웨이스트는 시작한지 좀 되어서일까 이제는 여유를 찾았다. 그냥 일상이 되어 설명할 것도, 강요할 것도 없는 고요한 내 습관이 됐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골몰할 뿐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을 타박하지 않는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던 초심자의 자세가 비건에서 다시 시작된 것이다. 내 설명을 듣고도 노력하지 않는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았고, 내 설명을 듣고도 나를 피곤한 사람 만드는 게 화가 났다. 며칠을 스트레스받다가 남편에게 "제로 웨이스트는 자연스러운데 비건은 왜 이런 거지? 당신도 밖에 있을 때 이래? 왜 존중하질 않는 거야?" 하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인은 선언하지 않고 그냥 할 수 있는 걸 한다고, 음식은 뺄 것을 빼고 받아와서 먹고, 티타임이 있을 땐 병 음료를 고르고, 얼음이 든 테이크아웃 잔은 거절하며, 케이크를 나눠 먹을 땐 개인 젓가락을 쓴다고. 그럼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매번 그러니까 쟤는 저런 애구나 한다고. 그럼 어느새 "기님은 얼음잔 필요 없죠?" 하고 먼저 물어본다고. 선언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된다고. 그러니 본인이 선택하는 음식은 '그냥 저런 애가 선택한 음식'이 되는 것 같다고. 물론 "고기를 안 먹으니까 자꾸 마르지." 하는 걱정 어린 잔소리, 필요 없는 조언을 듣긴 하지만.
그러면서 덧붙였다. 작년과 올해 환경과 비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한 걸 느끼지 않는지, 우리도 이러한데 훨씬 더 이전부터 비건을 선택한 분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걸 느끼고 있지 않을지, 더 큰 오해의 시선과 장애물을 헤쳐오지는 않았을지를. 그러니 사회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지켜나가서 '아, 얘는 이런 애.'가 되면 되는 거라고.
3n살의 철부지, 찡찡이 나는 이렇게 불혹을 넘긴 으-른 남편에게 마음을 단단히 할 용기를 얻는다. 내가 존중받길 바라는 것처럼 내 잣대로 남을 판단하지 말자고 다시 다짐하면서.
참나, 멋있는 건 다 본인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