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로운 Aug 18. 2020

06. 우리 집 가장 비싼 가구 이야기

미니멀 부부의 평생 쓸 의자 이야기



평생을 두고 쓸 물건을 구매할 땐, 충동으로 사지 말고 또렷한 의도를 갖고 사자. 집으로 가져오는 물건들의 기준을 한 단계 높이고, 일단 가져왔으면 오래도록 지니고 사용하자.
- ≪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 프랜신 제이



아내 "슬"의 이야기


 내가 가진 과거의 물건들 중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반박할 것은 많지 않다. 한정된 용돈으로 물욕을 잠재우려니 선택이 폭이 좁아진 탓이다. 만 원 정도면 옷 한 벌은 거뜬히 살 수 있던 명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가성비를 외치며 다양한 지하상가 구석을 훑고 다니는 게 일상인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도 그 선택에 일조했다.


 인터넷 쇼핑을 즐기기 시작한 대학생 때는 가격에 혹 해서 샀다가 질 나쁜 물건을 보고 반품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잡다한 것 여러 개보다 제대로 된 하나가 더 낫다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다다익선이란 생각으로 참 다양한 물건을 쉽게 사고 버렸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이왕 사는 거 제대로 된 걸 사자는 주의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 필요 없어 내놓는 물건들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참 잘 거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래 장소에 나가는 바쁜 날도 있었고, 수십 개 씩 오는 문의 채팅에 답장하다가 지치는 핫한 아이템도 많았다.


 남편은 거래 후 돈이 든 봉투를 들고 와서 이건 자투리 통장에 넣을게, 하고 말했다. 본인의 물건을 팔고 받은 돈의 운용법을 왜 내게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내보이는 봉투에 별 다른 관심이 가지 않았다. 부지런도 하다, 싶었고 많이 모았어도 탕수육을 사 먹을 정도 그만큼이겠거니 생각했을 뿐.

 

 그렇게 마켓에서의 거래가 1년쯤 지속되던 어느 날, 남편은 결심했다면서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도착한 장소에는 가구 매장이 있었는데, 남편은 중고 거래하면서 모든 자투리 돈이 의자를 살 만큼 모였다면서 의자를 사겠노라 선언했다. 그래 의자 그까짓 거 얼마 한다고, 우리도 의자다운 의자를 놓고 살자 싶어 그러라고 했다.

 

 당시 우리 집엔 Y체어라 불리는 의자 1개와 남편이 대학생 때 과제로 만든 원목 스툴 1개가 '앉는' 가구의 전부였다. 작은 집엔 좀처럼 사람이 놀러 오는 경우가 없었고, 남편이 사용하던 책상을 식탁 겸용으로 써서 여러 개의 의자가 불필요했다.


 '정상적인' 1개의 의자는 남편이 결혼할 때 절친의 무리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었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결혼 선물은 서로 원하는 가구를 해주자고 약속했단다. 남편은 의자가 가장 완벽한 조형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어서 국내 브랜드도 잘 모르는 내게 가끔 의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고, 가구 매장을 가면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랜 시간 의자를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니 선물로 본인의 로망 가구인 Y체어를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결혼 선물로 요청할 만큼 의자를 소중히 생각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존중했다. 하지만 가구의 축에도 들지 않는 의자는 내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빈티지란 명목 하에 남이 쓰던 걸 해외에서까지 찾아 들여오다니, 의자는 그냥 '앉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게 뭔가 상식을 벗어난 듯 신기하기도, 생경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때문에 의자에도 나름의 레벨이 있다는 사실과 좋은 의자는 남의 쓰던 것이라도 비싼 가격에 리셀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몰랐어도 되는 빈티지의 가치를 알게 된 건 정상적이었던, 하나뿐인 의자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느 날, 높은 찬장에서 물건을 꺼낼 일이 생겼는데 딛고 올라갈 의자를 찾다가 Y체어가 눈에 들어왔다. 밟고 오르는 데에 망설임은 없었다. '의자'니까.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크게 났다. 대충 살펴보니 멀쩡해 보여 오래된 것이라 그런가 보다고 넘어갔다. (위기의 시작)


 하루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의자 다리가 부러졌다며 읍소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그 의자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았기 때문에 순간 솔직해지기 힘들었다. 밟고 올라갔었어, 하고 고백하는 순간 내 몸무게도 밝혀야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 같아 두려웠다. 결국 심각해진 남편에게 나도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내고 오래되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위로까지 해주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 없는 약 100여 개의 물건을 1년 여간 팔고 모은 돈으로 의자 하나를 추가 구입하겠다는 남편을 말릴 수 없었다. 점원과 하는 대화의 내용 -금액- 이 심상치 않았지만 내 생각과 의구심 따위는 배제해야 했다. 그래서 제일 많은 물건과 맞바꾼, 우리 집 가장 비싼 가구는 '의자'가 됐다. 칠칠맞은 나로부터 의자를 보호하고자 15만 원이나 주고 산 전용 방석까지 놓여있는.

 

 남편은 고장 난 의자를 자신이 쓰겠다며 고쳤고, 새 의자는 내 선물이라며 주었다. 그러나 남편이 TV 근처로, 침대 옆으로, 책상 앞으로 이동할 때 새로운 Y체어가 함께 집안을 종횡무진한다. 남편은 매일 Y체어의 소음 방지 커버를 확인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손잡이를 쓰다듬기도, 방석을 팡팡 두드려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


 내게 의자는 아직 '고작 의자'이지만, 남편이 행복하니까 그걸로 됐다. 그리고 남편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설픈 가성비는 그만 따지고 오래오래 행복해질 수 있는 물건만 주변에 두어야겠다고. 아, 재테크가 가능한 의자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덧붙임 1.

 이 글을 쓰며 남편을 슬쩍 떠보니 아직도 물먹은, 낡은 의자라 상태가 안 좋아서 부러진 줄 알고 있다. 아마 이 글을 발행하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통해 사과한다. 미안해..


덧붙임 2.

 부러진 기존의 의자는 촉을 박아 수리해서 사용 중이다. 하지만 빈티지 가구로써의 가치를 잃어버렸고 삐걱 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커져서 남편이 앉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남편 "기"의 이야기


 입시 '기계' 양성으로 유명했던 인문고의 1학기 봄에 담임 선생님에게 "미술대학 갈랍니다."하고 선언했다. '기계'에서 벗어나는 대답을 했던 그 날, 담임 선생님은 날 어이없게 바라봤고 어머니는 두 번이나 학부모 상담으로 학교에 오셔야 했다. 그래도 난 야간 자율학습 대신 미술학원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 의해 온갖 구박을 받았지만 결국 3년 뒤 나는 원하던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고, 나무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원목가구를 사랑하게 됐다.


 학부 생활 동안 이래저래 늘 눈에 밟히던 의자가 하나 있었다. 요즘 더 유명해진 '한스 웨그너'의 CH 24인데, -등받이 모양 때문에 Y- chair라고도 불린다- 다이닝 체어의 일종으로 300개의 공정을 거쳐 장인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가구지만 작품과도 같은 의자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사악한 가격에 그 의자를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학교 졸업 후 나와 동기들은 디자인 전공자답게 결혼 선물은 각자 원하는 오리지널 가구로 선물을 하기로 약속했다. 실제로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유명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의자나 타 브랜드 조명을 선물 받았고, 내 차례가 왔을 땐 주저 없이 CH 24, 그것도 빈티지를 부탁했다. 친구들은 스웨덴에 출장 간 현지 한국인 바이어를 통해 SNS로 실시간 사진을 받아가면서 제품을 찾았으며, 1970년 경 제작된 것을 구매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내게 전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몇 주 정도 기다렸다가 의자를 받은 날, 너무 좋아서 온종일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로망 의자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구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에게 받는 선물이라서 더 의미가 있었고, 나중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면 그들과 나눌 이야기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여온 의자에 매우 만족하며 살던 어느 날, 가구에 대한 개인적 관점이 변화하는 3가지 일이 생겼다.


1. 선물 받은 의자의 보수가 필요해졌다.

 의자 다리를 지지하던 가로대가 흔들리고 '끼익 끼익' 하며 나무 뒤틀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결국 결합부가 부러졌고 나의 첫 로망 의자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이건 생각보다 큰 충격이었으나 계속 곁에 두고 싶어 보수하기로 했다. 더 나은 선택을 권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가구 디자이너이자 보수를 진행한 친구는 말했지만, 가치가 없어지더라도 '의자'로써의 역할 수행이 가능하게 고쳐져 돌아왔다.

 →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하고 보니, 그럴듯한 외형보다 고쳐서 다시 사용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내 의뢰와 선택에 만족한다. 삐걱 거리는 소리는 커졌지만 현재도 전처럼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다.  


2. 혼수 가구로 들인 식탁을 중고 판매하게 되었다.

 혼수로 들인 식탁은 4인용이었다. 하지만 4인의 몫을 하는 일은 3년에 1번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었다. 더 잘 쓰이길 바라며 4인 식탁은 중고 처분했고, 결혼 전 내가 사용하던 원목 책상을 식탁 겸용으로 사용했다.

 → 미니멀과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현명하게 꾸려가기 위해서는 사용할 가구를 들일 때 서로의 성향이나 앞으로의 계획 등을 먼저 고민하고 신중히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식탁이 꼭 식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탈피했다. 하나의 물건이 여러 가치로 사용되는 것만큼 의미 있는 미니멀 & 제로 라이프는 없다.


 3. 아내에게 선물할 평생 쓸 의자가 미니멀 라이프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길 바랐다.

 내가 직접 사용하고 바라보며 느낀 CH24 의자의 좋은 점과 사랑스러움을 라이프 스타일 동지인 아내와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표현하지 않았지만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고 모은 돈으로 아내에게 같은 의자를 선물하고 싶었다. 결국 봄부터 비워낸 헌 물건 98개는 우리 집을 쾌적하게 해 주었으며, 그 해 겨울 아내의 새 의자로 돌아왔다.

 → 수십 개의 물건보다 평생 함께 할 좋은 물건 하나로 행복이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에 백만 원이 넘어가는 의자는 사람들이 비싸고 사치품이라고 느낄 수 있다. (가격을 듣고 장인어른, 장모님은 매우 놀라 여러 차례 가격을 되물으셨다.) 하지만 계절 따라, 유행 따라 변하는 물건을 들이고 비우는데 돈과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버리지 않을 생각으로 평생 사용할 물건 하나를 들이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 더불어 좋은 품질의 의자가 주는 편안함과 바라만 보아도 설렘을 주는 오브제는 모든 염려를 상쇄한다.


 아내에게 의자 사용의 만족도가 나와 같은지 궁금해서 가끔 어떠냐고 묻는다. 그러면 가볍고 편하다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물건 평가에 인색한 아내가 하는 그 대답은 최고의 칭찬임을 나는 안다. 두 개의 의자가 모두에게 만족스럽고 충실한 역할을 수행한다.


 아내와 나는 나란히 의자에 앉아 밥도 먹도 이야기도 나누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우리의 일상이 내가 사랑하는 의자에 쌓여간다.


덧붙임

 도촬. 아내가 Y체어에 앉아 무언가를 할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건 내 행복 중 하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침대가 불편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