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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Jul 30. 2020

침대가 불편해졌다.

혼수 침대, 그 성급했던 구입에 대하여

05. 침대, 그 성급했던 구입에 대하여



 

 '혼수'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무료로 배포되고 공유되는 다양한 리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살지는 않을 텐데, 우리는 규격화된 아이템 리스트가 의아하고 불편했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이라며 지키지 않으 경로를 이탈한 듯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목록이 싫었다.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합의점을 찾아가려 노력했다. 혼수 리스트에 휘둘리지 말고 필요한 것만 준비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이야기한들 결혼 후의 생활은 시작되지 않은 상상의 것이었기에 둘이 말하는 '최소'의 기준 명확할 수 없었다. 우리만의 삶을 살자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지만 양가 부모님이나 결혼 선배들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거는 필요하지 않나?" 하면서 은근슬쩍 혼수 가구와 가전 추가려는 우리를 발견할 때다. 살아보면서 천천히 맞춰가고 채워가도 됐을 텐데, 그땐 혼 생활 작 전 모든 게 완성어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보통의 다른 집에 비해선 우리 집 혼수 가전과 가구의 수는 적긴 하다. 리스를 참고하지 않고 패키지 할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면서 채운 것과 미리 선택한 것 사이엔 분명히 만족감에서 차이가 있다. 래서 리 집엔 결혼 연차가 쌓이는 내내 아쉬움을 남기는 가전과 가구가 있다. 그리고 다음은 그것들 중 침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내 "슬"의 이야기


 할머니와 함께 살던 때를 제외하고 내 방엔 늘 침대가 있었다. 요매트와 이불 정리가 편해진 덕분인지 나는 침대와 한 몸인 것처럼 입식 생활을 즐겼다. 누워서 책을 보거나 엎드려서 시험공부를 했고, 과자를 먹을 때나 문자를 주고받는 대부분의 시간 침대에서 보냈다. 한 여름에도 이불을 꼭꼭 덮어가며 침대와 체온을 공유했고, 누워 있는 게 좋아서 누워있다가 잠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러니 혼수 품목에 침대는 고정값이었다. 크기와 브랜드를 고민했지 침대의 필요성 여부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워낙 내 생각이 확고했어서 침대 없이 살아온 남편은 침대 구매를 전적으로 내게 맡겼다.


 위임받은 품목이었기 때문인지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눈치보지 않고 써도 될 '내 돈'이었지만 조금 더 현명하게 써서 너의 반려자가 이렇게 알뜰하단다, 하고 생색도 좀 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침대 구매 전 디자인이나 브랜드, 가성비 사이에서 오랜 시간 고심했다. 질리지 않으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오래 사용하더라도 촌스러운 느낌이 없는 것을 찾고 싶었다.


 침대 기능의 99퍼센트는 매트리스가 담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매트리스라면 가격을 어느 정도 지불할 각오가 되어있었지만 프레임은 예외였다. 있으면 감각적이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핸드폰의 커버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내면으로 설정한 마지노선 금액에서 내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할만한 프레임을 찾는 건 힘든 일이었다.


 너무 크다, 작은 방을 집어삼키겠어. 탈락! 굳이 수납장이 포함되어야 할까, 침대는 잠만 자는 용도로 쓰자. 탈락! 이 올록볼록한 쿠션은 뭐지, 미쉐린인가. 탈락! 어설픈 마감 뭐지, MDF? 남편이 꺼리는  마감이네. 탈락! 탈락!...탈락...!


 결국 제풀에 지쳐 근사하게 찍힌 온라인 사진만 보고 프레임을 따로 주문다. 쇼룸에서 이것저것 직접 뜯어본 매트리스와는 대비되는 선택과 구매였다. 존재를 너무 우습게 생각한 나의 무관심에 대항하는 듯 마주한 제품 곳곳엔 하자가 있. 우리의 신체조건에 반(反)하는 구조로 아늑함마저 반감시켰다.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는지 지나가듯 토로한 불편함 남편은 격하게 동의했다. 내가 들인 혼수 가구라서 그동안 별말 없이 참고 쓴 모양이었는데 민망하고 미안했다.


 나는 내 선택을 실패로 만들고 싶지 않아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도 시작한 시점이었다. 필요 없다고 그냥 버려버리는 처분 방식을 지양했기에 몇 달 동안 침대의 새활용에 대해 남편과 의견을 나눴다. 단점을 덜어내는 침대 탈바꿈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추의 안녕을 방해하는 헤드를 날려버렸다. 가구 전공자인 남편이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했다. 두, 세 차례 지인의 공방도 오가며 자르고 남은 부자재도 쓸모를 찾아 필요했던 것들로 변신시켰다. 정말 탈탈 털어 대부분의 조각을 재사용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티 트레이와 서랍장 파티션, 프라이팬 정리대와 꿈꿨던 인테리어 화병이 생겼다.  



침대 헤드로 만든 결과물들

 추가적인 소비 없이, 불필요한 낭비 없이 필요했던 아이템을 들이게 됐으니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지구에 무해한 일을 한 것 같아 셀프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서두르지 않았다면 애초에 나갈 돈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시행착오라기엔 너무 큰 아이템이었어서 나름 마음고생까지 심했으니 이 모든 걸 감안해서 계산한다면 총점은 완전 마이너스!


 그래도 침대 헤드를 쓱싹쓱싹 자르고 나서 둘의 마음이 편해졌다. 미니멀 & 제로 라이프를 지속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아이템으로 침대를 제일 먼저 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는 예전에 당연했으니 지금도 당연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물건을 들일 때, 특히 침대처럼 부피가 큰 가구를 들일 땐 일단 없이 살아보다가 정말 필요한 부분을 충족할만한 것으로 신중히 고르겠다.



+ 덧붙임

 입식 생활을 즐기던 나는 이제 좌식 생활을 더 좋아한다. 침대는 남편이 쓰고 나는 방바닥을 종횡무진한다. 거기엔 남편의 잠버릇도 한 몫했다. 침대? 혼수 리스트에서 침대는 빼도 좋다, 서로의 잠버릇을 알고 들여도 늦지 않다. 더불어 2017년의 나를 만난다면 말해줄거다. "넌 등살 부자가 될 거니까 방바닥 생활로 시작해도 좋아!"



남편 "기"의 이야기


 초등학교 입학 전 3년 반 동안, 나는 집이라 부르기 어려웠던 건물 지하 공장에서 살았다. 부모님의 작은 사업을 위해 이사한 곳이었는데 합판 몇 장을 바닥에 깔고 방바닥 삼아 좌식 생활을 했다. 여름이면 습했고 겨울에는 냉했다.


 의도치 않게 익숙해지고 있는 합판 좌식 생활 중,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약사 부모님을 둔 친구였는데 나는 그 집에서 침대를 처음 봤다. 뭔가 따뜻하고 아늑해 보였 잘 사는 집엔 침대가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나에게도 '우리 집'이 생겼다. 합판이 아닌 장판이 깔린 방에서 보다 나은 생활을 시작했다. 여전히 좌식 생활이었지만 쾌적함에 만족감이 컸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침대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에게 침대 사용 경험이란 출장지나 여행지에서가 전부였다. 며칠간 만나는 침대에서 로망을 실현해보려 했는데 익숙함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막상 닥치 편히 잠자리에 들진 못했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시작될 침대 생활도 설렘만큼 걱정이 컸다.


 침대 구입은 입식 생활이 익숙한 아내에게 대부분 맡겼다. 집의 가구와 통일감을 주기 위해 프레임 오크 원목이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내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가끔 전달하는 사진을 보며 1번 혹은 2번이란 답을 건네서 선택에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 관여했다. 과도한 쿠션이나 장식이 있는 프레임은 배제하 둘의 취향을 맞춰가려 했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매트리스를 보러 가던 날엔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누워보고 눌러보며 성능을 시험해봤다. 그 테스트가 무색하게 실제로 사용하면서는 많은 날 잠을 설쳤으나, 어쨌든 원하던 소재의 프레임이 선택되어서인지 마음으론 성공적인 입식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이사하는 날의 부산함 때문인지 보지 못했던 프레임의 결함이 발견되면서 조금씩 실망감이 커졌다. 갈라지고 깨져있어 고객센터에 얘기했으나 성의 없는 답변이 돌아왔고 유선 연락은 되지도 않은 채 제품이 단종되었다. 아내의 결정과 돈이 들어간 혼수라 쉽게 아쉬움을 토로할 수 없었고 버리는 건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다. 결함을 무시하고 쓰임에 만족하려 노력했다(신혼 가구라 소비자 보호원을 찾는 등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3년. 애매한 높이의 돌출된 침대 헤드 몰딩에는 간단히 기대앉는 자세도 쉽지 않았는데, 날이 지날수록 거북목과 구부정한 허리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 생활과 함께 시작한 우리의 미니멀 라이프는 미니멈리치를 표방한다. 최소한의 것들로 둘러싸이되 우리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을 들이자는 의미를 담아 정했다. 적은 수의 물건이라도 좋아하는 것들로만 구성된 삶이길 바라는 소망도 포함되어있. 따라서 매일 집안에서 보는 것들로부터 우리는 즐겁고 편안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 게 마땅했다. 그런침대가 예외 사항이 되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우리는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주는 침대를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올해 초, 가장 거슬렸던 침대 헤드는 잘라서 다른 집기류를 만드는 업사이클링을 시도했다. 미니멀과 제로 웨이스트 취지를 살린 실천을 하고 싶었는데 시기적절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나무 살을 하나씩 낱개로 잘라서 이동이 수월하도록 했고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이 없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미리 제품 스케치 꼼꼼히 했다.



오랜만의 톱질이라 긴장이 되기도 했다.


스케치 도안을 바탕으로 완성해가는 물건들

 작업을 하다 보니 수월함을 위해 약간 디자인이 바뀌긴 했지만 의견 조율에 어려움은 없었다. 프레임이 이미 1차 공정을 거친 제품이고, 치수도 미리 다 계획해 둔 덕분인지 업사이클링 과정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 장바구니에 담고 지켜만 보던 건식 화병을 프레임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제안을 했다.



업사이클링 물건 중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병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결과 특별한 인테리어 아이템을 놓지 않는 집에 통일감을 깨지 않고 분위기 전환을 할 만한 건식 화병을 두 개나 만들 수 있었다. 불편한 침대 사용에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긴 시간을 보냈고 나름의 마음고생도 했지만 후속작업으로 여러모로 즐겁기도 했다.


 몇 문단으로 정리된 이 과정은 거의 1년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그 시간 동안 아내와 물건을 들이고 비우는 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버리면 끝날 쉬운 일상이고 침대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표방한 라이프 스타일로부터 부끄럽지 않고 싶었고, 이 과정을 기회 삼아 더 견고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조금 더 현명한 미니멀과 친환경 생활을 향유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 그리고 혹시나 결혼을 앞둔 지인이 뭔가 팁을 요청한다면 꼭 이 얘길 잊지 않고 해주고 싶다. 서로의 보폭이 맞춰지고 살림을 들여도 늦지 않다고, 새 가구를 들인다는 기쁨만으로 혼수 리스트에 매겨지는 체크 표시를 너무 달가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 덧붙임

 아내가 좌식생활을 선호하면서 퀸 사이즈 침대를 홀로 쓴다. 아내 없는 침대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숙면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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