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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잌 May 12. 2024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이야기

아닌 건 아닌 거다.

얼마 전 미국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볼 수 있었다.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가 벌써 기내 영화로 제공되는 것이 신기했는데, 셀린 송 감독이 대한항공 이용자들에게 본인을 소개하며 영화를 즐겨 달라고 하는 특별 영상이 나온 것을 보면 뭔가 별도 계약을 체결한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안 그래도 관람하려고 했던 영화를, 그것도 너무나도 무료한 장거리 비행 도중에 볼 수 있어서 참 행운이었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출장을 갓 마치고 돌아온 3월 말이었는데 초안을 반쯤 써두고 게으름 피우다 보니 어느덧 5월 중순이 되어버렸다).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많은 미국 언론들이 호평을 하고 작품과 각본 부문에서 오스카 후보로까지 올라갔기 때문인데, 나는 사실 근 몇 년간 동양계 작품들을 조금 과하게(?) 밀어준다는 느낌까지 주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올해도 <패스트 라이브즈>가 적어도 1개는 수상을 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아무래도 <오펜하이머>가 너무 쎘던 것 같다.


그리고 아예 사족을 다는 김에 한 문단 전체를 할애할 생각인데, 먼저 예전 <헤어질 결심> 관련 글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한물갔다고 깠던(?) 것을 철회하려 한다 (굳이 영어로 하자면 “I take back what I said about Nolan before.” 정도가 되겠다). <오펜하이머>의 탄탄한 각본, 킬리안 머피와 로다주의 명연기, 시간대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세련되게 컬러와 흑백으로 표현한 연출 등을 보면 놀런 감독 확실히 아직 죽지 않았다 (미국인들이라면 아마 ”Nolan’s still got it.”이라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 <미나리>와 윤여정 배우, 그리고 작년 오스카를 싹쓸이한 <에에올>까지, 이렇게 최근 오스카 수상사례들을 전부 나열하면 새삼 아시아계 영화의 약진이 와닿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기생충>을 제외한 나머지 케이스는 모두 그 정도(?) 영화는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PC 문화의 수혜 및 예전 아시아 영화들에 대한 홀대에 대한 억지 보정 같아서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반면, 그래미는 BTS가 앨범을 수백만 장 팔아도, 영어 히트곡을 줄줄이 내도 절대 주요 상을 주지 않는 게 재미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이라는 매우 동양적인 소재를 담백하게 풀어낸 꽤 잘 만든 영화이다. 나는 “인연”의 “인” 자가 사람 인(人)이 아닌걸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인과관계 할 때의 원인의 인(因)을 써서 인연(因緣)이라 쓴 다한다. 사실 “인연”은 동양권에서는 매우 흔하다 못해 오히려 식상할 수도 있는 소재인데, 8000겹의 만남, 그리고 영화 포스터 속의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전생과 현생의 연결 이런 개념은 서양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흥미롭게 다가왔을 것 같다.


미국 교포긴 하지만 오랜 한국 생활로 인해 뼛속까지 한국인 감성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사실 "인연"이라는 소재 때문보다는, 주인공인 노라와 해성, 그리고 노라의 남편인 아서에게까지 은근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아서 이 영화가 좋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한국으로 돌아와서 극 중 노라와 똑같이 12세에 다시 한국을 떠났는데, 그 시절 내가 좋아하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땐 너무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 애가 좋으니까 괜히 더 틱틱대고 짓궂은 장난만 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애가 나의 첫사랑(이라 부르긴 너무 거창하고 첫 이성에 대한 관심 정도가 적절할 듯)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학교도 같은 반이고 교회도 같은 데를 다녔었는데, 역시 같은 교회를 다니시던 그 애의 어머니도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매번 볼 때마다 우리 사위 왔냐고 웃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한국을 다시 떠난 뒤에도 매년 여름 한국에 놀러 와서 교회에서도 매주 보고, 다른 친구들과도 자주 함께 어울리곤 했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노라처럼 정체성이 미국인 쪽으로 훨씬 기울어지고, 한국에도 몇 년 동안 안 들어오면서 그녀를 포함해서 많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연락이 끊겨버렸다. 영화에서 노라와 해성이 페이스북으로 서로를 찾듯이, 나도 성인이 된 후 싸이월드로 그 애를 찾았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 다른 친구로부터 얼마 전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청첩장을 받진 못했고, 그녀가 이 글을 볼리는 없지만 행복하게 잘 살길 기도한다.


사실 그녀 외에도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사람들 중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정말 순수하게 한 번만 다시 만나보고 싶은 예전 “인연”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 극 중 해성처럼 그들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느끼고, 다음 생에는 어떤 인연일지 궁금해질지가 궁금하다. 영화 마지막에 노라는 해성에게 (대략) "네가 기억하는 그 12세의 소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했었어. 나는 그 애를 20년 전에 너와 함께 두고 온 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대사가 정말 좋았다. 모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변하는데, 나는 예전부터 이 "변화"(심지어 더 좋은 쪽으로의 변화도)라는 개념이 참 서글프게 느껴졌다. 뭔가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는 시간이 영원하길 바래서였을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노라가 해성에게 자신이 변해서 슬퍼하기보단, 마치 평행우주 속에 각각 존재하는 12세의 나영이와 36세의 노라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라는 듯한 이 대사가 너무 좋다.

해성과 노라의 이번 생에서의 인연은 이때 이미 끝났다. 이때의 나영이는 지금의 노라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었고, 해성의 기억 속에는 평생 남아있을 사람이다.

노라의 키워드가 "인연"이라면 해성의 키워드는 "미련"에 더 가깝다. 특히 해성은 "만약"에 대한 생각이 참 많은데, 그는 계속 나영이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12년 전 노라가 아서와 결혼하기 전 뉴욕을 찾아왔더라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해 상상하고, 또한 그랬다면 둘이 사귀었을지, 사귀다 헤어졌을지, 결혼했을지, 아기를 가졌을지 등등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한다.


물론 해성도 "인연"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하긴 하는데, 이 역시 "미련"에서 파생된 왜 그와 노라가 맺어지지 못했는지에 대한 "전생"에 대한 상상을 빙자한 푸념에 더 가깝다. 전생에는 그와 노라가 왕비와 왕의 부하 같은 이뤄질 수 없는 관계였는지, 사랑 없는 정략결혼을 한 데면데면한 부부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기차 옆자리에 앉게 된 사이였는지 등등 (여기서 재밌는 것은 노라가 해성에게 아서와 처음 만나게 된 몬탁(Montauk)의 작가 캠프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때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언급하는데, <이터널 선샤인>도 조엘 역의 짐 캐리와 클레멘타인 역의 케이트 윈슬렛이 마치 인연처럼(?) 몬탁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근데 이번에 와서 확인한 사실은, 넌 너이기 때문에 떠나가야 했어. 그리고 내가 너를 좋아한 이유는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넌 누구냐면 떠나는 사람인 거야... (중략) 그리고 아서에게 너는 곁에 남는 사람인 거야."

-극 중 해성의 대사

그만큼 해성은 그를 단순히 "과거"의 자신이 좋아했었던 사람으로 생각하는 노라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노라(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나영)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끝까지 친구로 남아 우정의 포옹으로 끝나는 게 맘에 든다. 신파적이지 않아서. 담담히 이번 생에는 연인이 될 인연은 아니라는 현실에 순응하고, 지금의 현실 역시 어떻게 보면 전생이라면 다음 생에서의 인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고, 잘 모르겠지만 그때 보자라고 하며 작별하는 모습이 참 담백하다. 약간의 찌질함이 더해져서 더욱 순수해 보인다.

닿을 듯 말듯 닿지 않는 인연

그나저나 이 손이 닿을 듯 말듯한 연출은 참 클리셰 적이긴 한데, 딱히 저것보다 더 함축적으로 감정선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수십여 년에 걸쳐 많은 영화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헤어질 결심>이나 <화양연화>처럼.


마지막으로 노라의 남편 역으로 나오는 아서도 참 좋은 사람인데, 나는 의외로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아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20년 만에 만나는 옛 친구라 하더라도 솔직히 약간의 걱정, 의심도 되고 충분히 기분이 나쁠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라를 100% 이해해 주고, 자기가 평생의 인연인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백인 빌런이 아니냐고 하는 유머 감각과 쿨함도 갖추고 있다 (본인도 작가라 그런지 감수성이 풍부해서 두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부분도 있고). 특히 마지막에 해성이 그에게 노라와 둘이서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인연이라는 말을 아냐고 물었을 때 웃으며 영어로 “Yeah, you and I are 인연 too. I’m really glad you came here. It was the right thing to do.”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멋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노라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이번 생에서는 아니다라고 딱 잘라 선을 긋지.

이 바 분위기가 영화랑 아주 찰떡이다.

그리고 영화의 스토리와는 크게 관계없지만 극 중 아서가 한 말 중에 굉장히 공감 가는 게 있었는데, 아서가 노라가 잠꼬대는 늘 한국어로만 한다고 이야기하며, 그녀가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꿈을 꾸는 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 자기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게 두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서로의 내면에 절대 이해할 수 없고 모르는 부분 투성이라 힘든데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끼리의 연애는 얼마나 더 어려울지 상상이 안 간다. 심지어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잘하는 노라와 아서 사이에도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데, 배우자의 언어나 제3의 공용어가 완전히 능숙하지 않아도 국제결혼 하시는 분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잠꼬대는 안 하지만 꿈은 등장하는 사람에 따라 영어로 꿀 때도 있고, 한국어로 꿀 때도 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라 그냥 한번 적어봤다.  


어쩌다 보니 <패스트 라이브즈> 관련 글에 내가 좋아하는 <이터널 선샤인>, <헤어질 결심>, <화양연화>가 모두 언급되었는데,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떠올랐던 영화는 따로 있다. 바로 내가 브런치 계정을 만들고 나서 처음 글을 썼던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인데, 이 영화가 <패스트 라이브즈>와 분위기나 스토리는 완전히 달라도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극 중 해성은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 생에 다른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고 하지만, 결국 (이번 생에서는) 아닌 건 아닌 거다. 정말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니까 끊어진, 혹은 원하는 대로 이어지지 못한 인연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말자.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故 김주혁 배우가 열창했던 "세월이 가면"의 가사처럼 그냥 잊지 말고 소중히 기억해 주면 된다.

광식도 우유부단함 때문에 인연을 놓친 듯 하지만 사실 그냥 인연이 아니었던거다.
"인연이었을까? 아닌 건 아닌 거다. 될 거라면 어떻게든 된다. 7년 넘게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그녀와 이루어질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바보짓들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그게 짝사랑의 본질이다. 이제 더 이상 바보짓 않는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중 광식의 "인연"에 대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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