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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결 Aug 06. 2020

눈 숲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내리고 쌓이는 눈이었다"

 

 겨울이 오고 눈이 쌓이면 나는 그것을 핑계로 먼 숲을 찾곤 했다. 나름의 의식 같은 것이었는데 소설小雪을 지난 연말 즈음은 한 해 동안의 후회나 미련 같은 것들을 숲에 묻어두었고, 해가 바뀐 정초 즈음돼서는 신년 소망이나 목표 같은 것들을 눈 위에 가볍게 새겨두었다. 인적이 드문 강원도의 선자령이나 만항재가 그 일을 부리기 적당했으므로 나는 대여섯 시간을 운전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눈삽으로 하얀 것들을 걷어내 단단히 텐트를 치고 나면 스스로가 조금은 쓸 만하다 느껴졌고 끓인 찌개에 찬 소주를 몇 잔 마시면 어떤 헛헛함도 채워지곤 했다.

하지만 눈이 매번 절실하거나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집 앞 길목에 쌓인 희끗한 눈이 거무스름 변하면 내심 다신 오지 않았으면 하고도 바랐고 군 복무 중 연병장에 쌓인 눈은 항상 지겹고 힘에 부친 것이었다. 또 하얗게 변모한 종로 거리를 지날 때 술 궁리가 나질 않는 것과 첫눈이 내린 뒤 애인에게 ‘눈이 왔어.’라고 소식을 넣지 않을 때는 모든 것에 심드렁한, 혼자서도 간신히 서 있을 궁색한 무렵이겠다.

젊은 날 아버지의 봉고차 뒷좌석에는 항상 ‘파손 주의’라는 글자가 붙은 상자들이 가득했다. 당시 중산층 정도에서나 볼 법한 녹즙기나 안마기 같은 것들이 셋방살이하는 우리 집 구석에도 몇 개씩 있던 것을 보면 아마 그런 것들을 팔지 않으셨나 싶다. 그런 아버지가 가장 힘들어하는 계절은 겨울이었다. 눈이 내리고 길이라도 얼면 아버지는 줄곧 ‘요즘은 장사가 힘들어.’ 라며 긴 숨을 내뱉곤 하셨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눈이 오면 좋겠다.’라는 말을 아버지 앞에서 하지 않게 되었다.


북극의 이누이트족은 눈에 관한 수백의 낱말 표현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녹고 있는 눈, 물기 없는 눈, 먼지처럼 잔 눈 등.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언어들은 누군가에 의해 부풀려 날조된 것임이 확인되었고, 소수민족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의 상징이 되었다. 눈은 단지 눈일 뿐이며 오지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것을 특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미겠다. 나는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 편 인간이 감각하는 눈의 느낌은 매번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조를 더욱 의심하지 못했음도 생각한다. 실제로 감정이 격해지면 아름답던 눈이 돌연 서러워지기도 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시절엔 그만큼 시리며 아린 것도 없다. 반면 사랑의 감정이 충만할 적엔 그것은 외려 차지 않고 따듯할 때가 많다. 그것은 말하자면 ‘따뜻한 눈’ 정도겠다.


2년 전 겨울. 애인과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마주친 눈은 고통이나 상실 그리고 극복이 뒤섞인 일종의 감정 순환의 물질이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 국경을 지나는 고갯길은 연일 눈보라가 심해 사투에 가까운 날을 보내야 했는데, 당시 사선으로 빠르게 내리치는 눈은 차갑기보단 따가운 것이었고,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을 남김없이 적시는 불쾌한 것이었다. 몸은 굳고 언 발가락에 통증이 밀려왔다. 그토록 많은 눈을 맞으며 걷는 일은 애인에겐 어둡고 완고한 것이었다. 애인은 무언가를 잃은 사람처럼 내내 침묵으로 걷기만 했고 간혹 멈춰 서 움츠려 미동하지 않거나 허기를 채우려는 듯 바게트를 꺼내 뜯어먹기도 했다. 엄습하는 추위에 맞선 어떤 본능적인 몸짓이었겠지만 나는 그것이 불편했다. 굼떠서 몸이 얼어버리는 것보단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효율이라 믿었다. 하지만 애인은 그럴 의도가 없어 보였다. 결국 달래던 나의 말은 독촉과 채근으로 이어졌고, 길 한 편에서 크게 다투었다. 우리는 모두 날 서 있었다. 그런 눈 앞에서 서로는 독단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있었다.  

느지막이 도착한 숙소에서 나는 곧장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몸을 씻고 체온을 높이려는 것 이상으로 걷는 동안에 쌓인 무거운 감정을 풀어내려 애썼다. 막 욕실에서 나온 나의 맨살에는 흰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피어올랐고, 엉키지 않고 오르다 뿌옇게 흩어지듯 허공에서 희미해졌다. 라디에이터에 올려 둔 젖은 옷가지와 신발도 서서히 마르며 하얀 김이 솟아올랐다. 애인과 이렇다 할 대화도 없이 침대에 누운 나는 이내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어느 먼 숲이었고 내가 눈이 되어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무의 위아래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장면이 계속되었는데 나한송 같은 잎맥이 넓은 식물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었고 어릴 적 교실이었다. 나는 교실 뒤 사물함에 기대 '1-1 슬기로운 생활' 같은 교과서를 펼쳐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의 얼굴을 보려 애썼지만 끝내 보지 못하고 꿈에서 깨어버렸다.   

이튿날 아침 이상하리만큼 속에 엉킨 것들이 풀어지는 감각이 선명했다. 숙소의 이층 노대에 서서 바라본 마을은 흰 설에 잠겨 고요했고 숫눈이 투영하는 햇살에 두 눈이 시렸다. 언뜻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에 쌓인 것들을 허공으로 하얗게 흩뿌렸다. 이내 발끝으로 볕이 와들고 그 가장자리에 선 애인과 나는 하얗고 차가운 입김을 길게 늘어놓았다. 감자를 삶아 배낭에 넣어 두고 찻잎을 끓여 차를 우려냈다.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 극적이지 못했을 마음이 그곳에서 피어났다. 나는 떠나기 전 숙소 방명록에 ‘쌓인 눈으로 누군가는 고생을 좀 하겠지만 마음에 여백을 들이는 일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짧게 적어 두었다.  


이번 겨울에는 태백에 갈 것이다. 눈의 발원지가 하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어린 동심을 오래전 그곳에 심어두었다. 언제든지 그곳에 닿으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눈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 여백이 자연히 내 마음에 트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홀가분해질 것임을, 그 수수하고 아름다운 착각으로 얼마간 더 힘 있게 그리고 나답게 살아낼 것임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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