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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결 Jul 12. 2020

연말

"예정된 실패 속에 있을지라도"

 

 어두운 밤 길목에서 간혹 괴성을 지르는 사람을 마주 할때가 있다. 부러 악의적으로 내뱉는 사람을 제외하곤 그 소리가 문득 애잔하게 들리기도 한다. ‘아’ 발음과 ‘하’ 발음 끄트머리에 ‘ㄱ’ 받침이 들어가는 소리. ‘악’도 ‘학’도 아닌 발음과 숨이 목울대에 뒤엉켜 서서히 삐져나오는 어떤 기이한 소리. 거나하게 술에 취해 허공에 ‘턱’ 내뱉는 소리가 꼭 그리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내야 내남 알 길이 없으니 부리는 행패가 없다면 가만 지나치면 될 일이다.


지난해 겨울, 한 채권자가 애인의 아버지를 구타했다. 그 폭행의 정도가 심했던지 통화 목소리가 어눌했다. ‘얼굴이 아프다, 허리를 굽히지 못하겠다, 그리고 사실 아주 무섭다.’ 입을 옴직거리며 애써 밀어낸 목소리였다. 수화기 넘어, 그의 앓는 태도는 보통의 부녀간 정숙한 대화를 한계 없이 넘어섰고, 그것이 마치 내겐 둥치 굵은 나무가 베어 꺾이는 서글픈 파열음 같은 것으로 들려왔다.
젊었을 적 그는 10년 넘게 재래시장에서 거봉이나 배 같은 과일을 팔았다. 마흔 무렵부터는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과일 유통업자가 되었고 이후 사업이 번창해 해외를 오가는 수출상으로까지 성장했다. 그러다 1997년 가깝게 지내던 이들의 협잡에 사업은 끝을 보았다. 하지만 평소 주변의 신망이 두터웠던 아버지는 투자를 받아 어머니와 함께 말레이시아로 떠났고 십여 년 가까이 품을 들여 수만 평의 바나나 농장을 일구었다. 그리고 불운하게도 그것이 고리의 사채빚을 지게 한 것이다. 나는 애인 앞에서 그의 시도도, 실패도, 그로 인한 누군가의 피해도, 아무것도 부인하지 못했다.   


애인은 아버지를 채근해 그의 얼굴 사진과 당시 채권자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파일을 받아냈다. 보내온 사진에는 핏기가 엉켜 부어오른 입술과 푸르스름한 눈가의 멍빛이 자식이라면 결코 마주치지 말아야 할 형태로 드러나 있었고, 녹음파일에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당치않은 가해나 가학이 살기에 실려 그의 귀에 길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만나보지도 못한 채권자의 얼굴이 어른거려 며칠 밤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가중된 압박과 협박에 아버지는 쫓기듯 어머니를 먼저 한국으로 돌려보냈고, 빚을 갚을 요량으로 오산집에 있던 오래된 그림 한 폭을 서울 사는 아무개에게 담보로 했다. 운반할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나와 애인은 서둘러 그것을 챙겨 트렁크에 실었다. 나는 운전 내내 낯섦, 인연, 죄, 창백한, 모진, 용서, 처연한, 불가항력 같은 단어들에 기웃거리기도, ‘지구 이외에 우주에 살아있는 것은 없으니 죽어있는 상태가 더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어느 물리학자의 말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수원, 신갈을 지나 도착한 아파트에서 한 중년의 여자가 우릴 맞았다. 중앙 전등에 매달린 작은 십자가 주위로 이름 모를 그림과 오래된 장식품이 가득 둘러있는 집이었다. “물건 주인과는 어떤 관계세요?” 한 번 앉으라는 말없이 여자는 거실에 서서 물었다. 나는 구구절절한 사연도 통하지 않는 어떤 낯설고 기계적인 세계 안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기분이 기이해졌다. 고개를 푹 숙인 애인 대신 나는 “이 친구의 아버지고 저는 남자친구입니다.” 라는 정도로 바르게 애썼다. “그림도 확인해봐야겠지요?” 여자가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건조하게 물어왔다. 나는 가위를 빌려 화폭에 묶인 노끈을 자르고 버틸대로 버텨서 질겨진 불운같은 청테이프를 끊어냈다. 행여 흠이라도 나지 않을까.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모서리를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더 꽉 주어 남은 테이프를 마저 뜯어냈다. 그런 경험에 익숙해질 방법이 없었으므로 손바닥에는 축축한 것이 흥건했다. 집주인은 포장이 벗겨진 그것들을 한 번 훑어보고선 익숙한 듯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제 아들이 보내 달라 길래… 그쪽도 찍어두는 편이 좋아요.” 나는 여자의 말대로 서둘러 그림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두었다. 액자 속에서 이제는 수염이 훤히 드러난 달마가 벽장 한 편에 기대 빤히 웃고 있었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구하기 힘든 차라며 잎을 우려내 한 잔 들고 가라는 주인여자의 상냥한 말끝이 나는 왜 그리 분했을까. 나는 애인의 손을 잡고 여자에게 고개를 숙인 뒤 현관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괜찮아, 괜찮다’고 애인과 나에게 자꾸 말해주었다.


한 해가 지나 더 추워지기 시작한 연말이었다. 나는 무엇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어떻게 끝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여러 친구들과 숱한 마무리를 맺고 있었다. 초저녁에 시작된 술자리는 늦은 새벽까지 이어지곤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다는 친구의 말을 지나, 중형에서 대형으로 차를 바꿔볼까 하는 선배의 말을 지나, 차장이 되었다는 후배의 말을 지나, 그리고 그런 형태의 질문도 내게 몇 가지 쏟아졌지만 나는 그저 그런 표정으로 넘기곤 했다. 전날 밤이었다. 한 채무자가 애인에게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고 나는 월급의 절반을 떼어 애인 아버지의 통장에 입금해 두었다. 미래의 우리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고 모든 것이 예정된 실패라는 생각도 들었다. 견과류 부스러기들이 쓴 술과 함께 살강거리며 입안을 맴돌았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돌아가고도 나는 매번 배웅도 없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술집을 나섰다. 익숙한 편두통이 술기운과 밀려왔다.  


집 앞 골목에 들어섰을 즘이었다. 행인 한 명이 오방으로 걸음을 떼며 악을 지르고 있었다. 전봇대에서 담이 낮은 회벽으로, 헌 옷 수거함에서 미싱사 문턱으로, 로터리에서 한길로. 술에 불어 터진 목소리였다.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은 무엇도 피우지 못할 회벽 가장자리의 들풀을 비추고, 나는 훅 끼쳐오는 자동차 전조등에 몸을 오래 비추기도 했다. 경적 소리에 불쑥 서늘한 마음이 들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어떤 결기 같은 것도 서렸다. 멀리 허공으로 솟고 솟았다 투신하는 그 괴성을 나도 몇 번인가 발음해 보았다.

선 자리가 맨 앞이고 맨 끝이기도 한 그해 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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