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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빠 Nov 14. 2020

'원초적 본능과 신데렐라 우산'을 통해 발견한 인간심리

동경 그리고 허무함

내가 아직 '국민학교'에 다닐 때이다. VHS(Video home system)가 주류던 시절, 비디오테이프 대여점도 동네에 적지 않게 있었다. 여느 때처럼 등하굣길에 동네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을 지날 때, 가게 외부에는 신착 영화 포스터를 보았는데, 제목이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원초적 본능'


당시 나는 5~6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막 성에 눈뜨기 시작할 무렵, 나의 뇌는 본능적으로 그 제목에 반응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봐야지' 하고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동네 전자오락실을 향하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수능을 치고, 대학생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여, 신입생 동기들, 대학 선배들과 MT도 가고, 밤을 지새우며 학과 방에서 과자랑 맥주를 놓고 이야기하며 놀아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이래서 대학생이 되어야 하는 건가?' 하며 히죽거리며 웃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고향집으로 내려와 여름방학을 보냈다. 우리 집에는 당시 nhk 위성방송이 나왔는데, 대학에서 일본어를 배운 나는 공부할 겸 nhk 방송을 자주 보았다. 여름방학 동안 빈둥거리며, 낮과 밤이 바뀌어, 인터넷 서핑과 일본 방송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인터넷을 하며 일본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뭔가 낯익은 느낌의 영상이 나왔다.


그 순간, 다시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른이 되면 볼 거야' 하고 기다렸던 그 영화가 nhk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일본어 실력이 짧았던 탓에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지루해서 보던 중에 채널을 돌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 '어른에 대한 동경'의 하나로 자리 잡았던 영화였기 때문에, 끝까지 보았다. 역시 제목만큼이나 감각적이고 아찔했던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일명 "다리 꼬기"

'어른에 대한 동경'의 상징이었던 영화를 보고 나니,  그것을 이루었다는 기쁨도 한순간이고 허무했다.

'무언가에 대한 동경', 그것은 그대로 남았을 때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올여름은 장마와 태풍으로 비가 자주 내렸다. 그 덕에 나는 우산을 가지고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우리 아기는 내가 출근할 때면 '파란 우산!'이라고 이야기한다. 엄밀히 말하면 파란 우산은 아니고 파란색이 섞인 우산이지만, 우리 아기에게는 파란색이 그 우산을 대표하는 가보다. 그 후로 아기는 '우산'이라는 말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비가 오는 날에도 시간이 있으면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비 오는 날에는 맑은 날에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기는 우산을 쓰고 가는 행인도 구경하고, 물웅덩이에 고인 물을 발로 튀기며 놀기도 한다. 비에 젖은 비둘기도 보고, 빗물에 흠뻑 젖은 화단의 꽃도 구경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 아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내가 우산을 씌어주는 것이다. 내가 아기를 안고 우산을 씌어주면 아기는 우산 속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우와~'하면서 활짝 미소를 짓는다. 아기가 우산을 써본 이후로, 나의 우산을 보면 '우산, 우산' 거리면서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제 키만 한 우산을 만져보기도 하고, 가랑이 사이로 끼고  오토바이 타듯이 우산을 질질 끌고 다니기도 한다. 나는 혹시라도 우산에 걸려 넘어진다든지 해서 다칠까 봐 가능하면 우산을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는 더욱 우산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데 얼마 전, 직장 동료에게 선물을 받았다. 자녀들이 쓰던 물건이라며 준 것인데, 바로 '신데렐라가 그려진 우산'이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 아기가 원하는 것을 주는지, 정말 고맙고 기뻤다. 그렇게 퇴근하며,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우산을 보여줬더니, 아기는 보자마자 호랑이가 피 냄새를 맡은 것처럼 동물적 감각으로 나에게 달려와서는 우산을 낚아채 갔다.


그러고는 드디어 손에 넣었다는 듯이 그날은 그 '신데렐라 우산'만을 가지고 놀았다 아무리 어린이용 우산이지만 아기 허리 높이보다 큰 우산이라 스스로 다루기가 힘들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우산을 바닥에 놓았다가, 다시 우산 손잡이를 잡고는 바닥을 콕콕 찧으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우산을 펴주면 본인이 스스로 써보겠노라고 우산을 꼭 잡았다. 심지어 아기는 목욕을 할 때도 우산을 원해서, 우산을 씌어서 샤워기로 비가 내리는 장면을 연출을 하였다. 아빠만 들고 쓰던 우산을 본인이 직접 쓴다고 생각하니 매우 기뻤던 모양이다.


아기의 눈에 비치는 어른에 대한 동경의 대상, '신데렐라 우산'이다


그런데 아기가 그토록 원하던 우산이 지금은 방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우산이 본래의 기능은 발휘하지 못 한채, 집에 있는 잡동사니 물건 중 하나로 취급받고 있다. 아기의 우산에 대한 '동경'이 사라진 것이다.


어른이든 아기든 '동경'이 있지만 이것을 이루고 나면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고, '이룬 동경'을 반복적으로 즐겨도 만족감은 이전만 못하다. 나는 '원초적 본능'이라는 영화를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나 다시 볼 수 있지만, 나에게 더 이상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하며,  '신데렐라 우산'은 아기에게 더 이상 '손을 뻗었을 때 닿지 못하는 물건'이 아니지만, 그 감정은 아기가 처음 우산을 손에 넣었을 때와는 다르다.


만혼(晩婚)이 시대의 흐름이라고는 하지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육아에 지친 탓인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어느덧 '나이를 먹었다'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동경'이라는 말의 색깔이 점점 옅어져 가면서도, 아기의 '세상에 대한 동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딸바보 아빠가 되어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삶이라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다가도 다시금 무언가에 가슴이 뛰기도 한다.


나와 아기와의 관계, 이미 이룬 동경이지만, 지속되는 동경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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