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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Sep 26. 2020

23. 왕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꼰대

품 안의 자식 ... 자식과도 성인이 되면 수평적인 관계 맺어야 

 브런치에 쓴 글을 접한 후배가 젊은이들의 인기 매체라고 소개한 ‘뉴닉’에서 이 매체의 ‘여성 용어 가이드’라는 글을 읽었다. 우선 뉴닉은 3인칭 대명사를 ‘그’와 ‘그녀’로 구분하지 않고 ‘그’로 통일해 쓴다. 나도 같은 생각에서 언젠가부터 인터뷰 기사에서 여성 3인칭 대명사도 ‘그’라고 쓴다. ‘뉴닉’은 또 낙태 대신 ‘임신중단’을, 저출산 말고 ‘저출생’이라는 말을 쓴다. 산모보다 태아에 초점을 맞추고, 출산의 당사자인 여성의 책임보다 이 사회의 책임을 부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수긍할 만하다. 유모차는 유아차라고 한다. 유모차는 이 유아용 이동수단을 미는 주체가 엄마(여성)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래서 또 한 수 배웠다. 

 ‘뉴닉’의 출발점은 밀레니얼 세대 입장에서 뉴스는 너무 많을뿐더러 말이 어렵고 앞뒤 맥락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기업 글쓰기 강의 때 기사처럼 쉽게 쓰라고 얘기하는 나로서는 이런 착안점이 흥미로웠다. 기사 스타일은 사실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200년에 걸쳐 진화한 쉬운 문체이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의 점토판엔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

 인류 역사상 세대차가 없었던 시대는 없을 것이다. 윗세대는 자기 잣대를 기준으로 버릇없다고 했고 아랫세대는 이들이 꼰대스럽다고 했을 것이다.   

 꼰대는 노인이나 선생님을 가리키는 은어다. 이 말은 영국 BBC방송을 통해 해외에도 알려졌다. BBC는 지난해 가을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으로 풀이했다. 환갑을 넘긴 노인인 나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20년 가까이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다. 꼰대의 두 필요조건을 갖춘 ‘천생 꼰대’인 셈이다. 지난 5월 말 한국잡지교육원을 수료한 제자들과 며칠 전 저녁을 같이했을 때도 거의 혼자 떠든 거 같아 귀갓길에 반성했다. 

 나는 기자 지망생 제자들이 쓴 인터뷰 실습 기사에 가차 없이 칼질을 한다. 빨강, 파랑, 초록 세 가지 색 볼펜으로 가하는 이 ‘미시적 난도질’은 원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이 칼질은 그러나 일부 오류를 지적한 것 말고는 대부분 대안적 접근일 뿐이다. 퇴고할 때 이런 대안을 검토했기를 바라고 비교형량해 자신의 원안이 낫겠다 싶으면 원안을 고수해도 좋다고 말한다.  

 꼰대의 가장 일반적 특성은 자신의 오랜 경험을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재단하려 드는 것이다. “나 때는 말이야”가 꼰대어 사전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배경이다. 이탈리아어로 우유를 뜻하는 라떼(latte)는 한국에 상륙해 어쩌다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라는, 꼰대를 희화화하는 꼰대어의 약어가 돼 버렸다. 왕꼰대와 꼰대의 차이는 이럴 때 왕꼰대는 “왕년에 말이야”라고 한다는 것이다. 꼰대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걸핏하면 가르치고 지적질을 한다. 또 자신이 지위나 서열이 더 높다는 이유로 연하자에게 반말을 하고, 심지어 무시한다. 꼰대어 사전엔 “내가 누군지 알아?”도 올라 있다. 꼰대는 의전과 특권에 익숙해 대접이 기대치에 못 미치면 자존심 상해 한다.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와 가부장 주의는 꼰대들의 정신적 생태계이다. 무엇보다 꼰대는 후배들이 끼워주지 않아 자기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꼰대인 걸 자각하기도 어렵다.

 나는 어쩌면 왕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소심한 꼰대인지도 모른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편견을 내장하고 이 편견을 바탕으로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으려 나는 나름 애쓴다. 그래서 꼰대지수 같은 게 있다면 또래보다는 낮을 거라 자부한다. 

 “개그를 다큐로 받지 말라”는 말을 가끔 하지만 내가 웃자고 한 이야기에 열받아 누군가는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때로는 내 생각일 뿐일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나는 뼛속까지 리버럴이지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의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나는 개신교 신자로서 개역 성경의 ‘형제’를 표준 새번역 개정판이 ‘형제자매’로 바꾼 것에 동의한다. 

 사과 한 마디 없이 의사 국가시험을 치르겠다는 의대생들을 겨냥해 나는 오늘 아침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렇게 올렸다. 

“안동국시도 아니고, 

밥상 걷어찰 땐 언제고 다시 차리라며 

대국민 사과 한 마디 없다. 

뻔뻔하기가 '전국 1등'이다.”

 그러자 한 페친이 “왜 안동국시냐”고 댓글을 달았다. “안동국시 한 그릇 차려낸 상도 아니고, 앞서 정부가 일주일 연기하고 접수 기한도 두 차례 연장해 준 의사 국시를 거부했습니다.”라고 대댓글을 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안동 비하는 아닙니다~ ㅎ”

안동국시와 의사국시가 라임이 같아 시도해 본 언어유희로, 안동에 대한 비하 뜻은 없었다. 


 아들·딸을 프랑스의 장관과 대사로 키운 오영석 전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요즘 시니어가 대접을 못 받는 덴 시니어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건 젊은 사람들의 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노인은 자리를 양보 받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맙다는 말도 안 해요. 자존감이 낮으면 남을 배려하는 힘도 달립니다.”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 교수를 지냈고 프랑스에서 25년간 산 그는 나와의 인터뷰 때 자신은 젊은이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말에도 반말은 있어요. 프랑스에서 반말은 하대가 아니라 친근감의 표시죠.”

 그는 또 “부모가 자식의 전공·진로 결정에 개입하는 건 자식과 동반 자살하려는 거와 같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의 장래를 책임집니까? 그랬다가 잘못되면 ‘얘야, 미안하다, 한 번뿐인 너의 인생을 내가 망치고 말았구나’ 할 건가요?”

 그는 부모의 역할은 “자식에게 모범을 보이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망 내지는 조언해 주는 것까지”라고 못박았다. 

“경험이란 망루와 같습니다. 많이 쌓일수록 망루가 높아져 앞을 멀리 내다볼 수 있죠.”

 그는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출구가 여럿인 넓은 방을 둘러보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어느 시기에 어느 문을 여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죠. 중요한 건 그 문을 제 손으로 열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이 열어주는 문은 관 뚜껑밖에 없어요.”

 나는 자식이 성인이 되면 자식과도 수평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에게도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과한다고 약점을 잡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관계가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언론사는 후배에게 보통 반말을 한다. 타사 후배들에게도 말을 놓는다. 나도 반말을 했고, 퇴직한 지 7년이 됐지만 지금도 업계 후배를 만나면 반말을 한다. 선배와의 대화에 센스 있게 중간 중간 반말을 섞는 후배도 있다. 

 나는 연하자와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시인의 마을’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에서 활동하며 몸으로 익혔다. 시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은 오프라인 모임 때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호칭한다. 리더는 이장님이라고 불리는데, 대학 후배이기도 한 초대 이장은 “예수님, 부처님과 동급의 예우”라고 설명했다.  

 10여 년 전 고려대 출신의 한 오너 기업인과 인터뷰한 후 있었던 일이다. 이분이 전화를 걸어 대뜸 반말을 했다. 곧바로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대 출신답게 말했다. 

“통화된 김에 밥이나 먹읍시다.”

 이분이 식사 자리에서 해명을 했다.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에 나와 나란히 적어 놓은 고대 후배와 나를 혼동했다는 것이다.  

“고대 출신은 1년만 선배면 초면에 말을 놓습니다.”

 나의 고교 후배는 고대 나온 고교 선배의 대학 동아리 산행에 묻어갔다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 학번 위 고대 출신 여성에게서 반말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연장자라고 해도 반말은 암묵적으로라도 합의가 이뤄졌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삼성맨 출신으로 CJ코퍼레이션과 동부제철 사장을 지낸 천주욱 창의력연구소장은 나와 한 인터뷰에서 “'나 때는 말이야' 하려면 그때와 더불어 지금의 문화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전 고희를 넘긴 그는 “인터넷에 접속해 지금 무엇이 유행하는지 파악하라고 권했다. 

“젊은 세대의 생각과 풍조가 어떤지도 파악해야죠. 비판을 하더라도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 오늘도 나는 부단히 성찰한다. 학습을 하고 이런 저런 혁신도 한다. 꼰대스럽지 않은 시니어로 사는 게 인생 2막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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