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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재 Mar 11. 2021

31. 대형 오보 막은 기자의 직업의식

세기적 오보로 판명 난 세계적 특종 ... 중앙일보만 김일성 피살설

 선배는 어쩌다 혼자 밥을 먹게 되면 평소 손님이 별로 없는 식당에 간다고 했다. 안 되는 식당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서였다. 그의 이름은 조시행. 나보다 열 살 연장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택시를 타면 1000원 미만의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다. 그에게서 받은 영향을 나 나름대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다. 

 편집기자였던 조 선배는 조선일보가 1986년 11월 17일 김일성 사망 오보를 했을 때 고집을 부려 중앙일보의 오보를 막았다. 

 그날 조선일보는 “김일성이 열차를 타고가다 총 맞아 피살당했다”는 내용의 호외를 발행했다(이 오보는 정운현의 <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에 ‘김일성 사망’ 오보 소동으로 수록됐다. 그는 이 오보를 헤이그 밀사 사건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이준 열사 분사 오보 이래 한국 언론사 최대의 오보로 꼽았다.)

 다음 날 1면 톱기사 제목은 ‘김일성 피격 사망’이었다. 당시 조선은 “본지 세계적 특종”이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10시 김일성은 몽골 인민혁명당 서기장 잠빈 바트뭉흐를 영접하러 평양순안국제공항에 나타났다. 세계적인 특종이 하루 만에 세계적인 오보로 전락한 것이다.

 당시 나는 조선일보 출판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보를 한 이튿날 조선일보는 1면 톱 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김일성은 살아 있었다’  

 이 비겁한 제목을 두고 나는 우리 부장과 격론을 벌였다. 이 제목의 과거시제에서는 이런 뉘앙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보를 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김일성은 당시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죠.’

 김일성의 생사가 실시간으로는 확인이 안 되니 이 제목을 단 기사를 싣는 시점에서 그의 생존을 장담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유고를 뒷받침할 만한 추가적인 정보나 정황이 없다면 살아 있다고 추론하는 게 합리적이다. 

 나는 조선일보가 김일성 사망 오보를 한 이듬해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그 후 우연히 당시 중앙일보가 실은 기사를 보게 됐다. 석간이었던 중앙은 1면 톱기사에 각각 ‘김일성 피살설(說)’(17일자), ‘김일성은 살아 있다’(18일자)라고 제목을 달았다. 조 선배가 단 제목이었다. 김일성 피살에 ‘설’ 자를 단 제목으로 그는 이듬해 기자로서는 가장 영예로운 상인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신문편집 부문)을 받았다.   

            김일성은 조선일보가 피격 사망했다고 오보한 지 8년 만에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훗날 나는 조 선배와 식사를 하면서 당시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 시절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이른바 재벌 신문으로서의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단적으로 결정적인 때 치고 나가지 못했다. ‘피살설’이라는 제목을 둘러싸고 편집국 안에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선배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김일성이 죽었다고 기사를 고쳐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구도 김일성의 사망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밖에서 점심을 한 편집국장이 가판대를 훑어본 후 전화를 걸어 조 선배를 찾았다. 

“이 봐, 조시행씨. 김일성 피살에 ‘설’자를 꼭 달아야 해?” 

“달아야 합니다.”

 한 기자의 직업정신 덕에 중앙일보는 대형 오보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중앙은 메이저 신문 중 유일하게 오보를 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그로부터 근 8년 후 심근경색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북한 당국은 사망 이튿날 정오 방송을 통해 그의 사망 사실을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그로부터 34년만인 2020년 3월 4일 창간 100주년을 맞아 특집 지면에 이 오보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오보로 밝혀진 후 다음 날 1면에 ‘김일성은 살아있었다’고 보도했으나 정정보도 형식으로 게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2013년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에 대해서도 사망 오보를 했고, 이에 대해서도 같은 날 사과했다. 

 북한 관련 언론 보도는 유난히 ‘아니면 말고’ 식 오보가 잦다. 직접 취재가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탓이라고 하지만 북한 당국이 우리 언론의 오보에 대응하지 않아 기자로서는 오보에 대한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수 언론의 북한 오보가 더 흔한 건 북한 체제에 대한 증오와 편견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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