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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 Mar 12. 2022

술과 함께 라흐마니노프 즐기기

생각보다 클래식은 좋은 안주더이다.


 자주는 못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혼술하며 에어팟으로 클래식 듣거나 클래식 영상 보기. 집에서도 유튜브를 켜고, 와인 한 병을 가져다 놓고 클래식을 들으며 밀린 일기도 쓰고, 지금 연습하고 있는 곡이 끝나면 어떤 곡을 쳐볼까 고민도 하면 시간은 금방 흘러있다. 지친 일상에, 힘든 회사 일에,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인간 관계 속에서 생긴 고민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 않을 때 귀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들이 날 위로해준다. 이미 수세대 전에 명곡들을 남기고 떠난 작곡가들에게 사는 시대도, 배경도 달라진 내가 선율에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위로받는 순간이 제일 좋다.

 클래식이라곤 피아노 협주곡만 좋아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피아노를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들어본 적 있는 선율일 것이다. 최근 서른 아홉에 출연한 주인공 손예진도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이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이라 하길래, 역시 예진언니와 난 통하지라고 맘대로 넘겨짚어 생각해보았다. 약 35분의 화려한 음들로 가득 채워진 이 협주곡을 가장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 곡을 듣는 순간만큼은 잡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으로 협연을 하는 데 단연 조성진이 최고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처음 들었던 임동혁이 연주한 버전을 더 좋아한다. 조성진이 조금 더 섬세한 느낌이라면, 임동혁의 곡이 조금 더 날카롭고 음들이 웅장하다. 피알못이지만, 적어도 내 귀엔 그렇게 들린다. 물론 여러 버전을 번갈아가며 듣지만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많은 재생수를 기록한 음원은 임동혁의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한 앨범.꼭 한 번 들어보시길.

 

가장 좋아하는 와인+라면 조합.jpg


 사실 어떤 술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좋아하는 편인데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 가장 많이 마신 주종은 바로 와인이다. 일단 과음하지 않을 수 있고, 혼자 있어빌리티를 실천하기에도 딱 좋고. 소주는 취기가 너무 빨리 올라오고 맥주는 너무 배가 빨리 불러와서 적절치 못했다. 사케정도도 괜찮았던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이 가장 손이 많이 가긴 한다. 

 최근엔 코로나 확진이 되어 굉장히 많이 아팠어서 피아노도 약 1달을 가지 못하였고, 술도 영 마시질 못했다. 이번주부터 다시 피아노 학원을 가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역시 쉰 티가 가 확- 나고 말았다. 어떻게 연습해놓은 곡이었는데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한 달을 쉰 탓에 예전의 템포로 곡을 칠 수도 없었고 손가락이 굳어버려 손목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아쉬움이 괜히 나에게까지 전해져 집에 와서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안주삼아 와인을 한 잔 따라버리고 말았다. 조성진 쇼팽 콩쿠르 영상을 보며 다시 피아노 연습에 대한 의지를 끌어올려본다. 와인 한 모금 마시며 다시 나에게 말해본다. 아무리 피곤해도 집으로 가지 말고, 피아노 학원 들렀다 가야지. 30분이라도 연습하고 집에 돌아가야지, 그래서 레슨 때 칭찬받아야지!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다짐했던 이 마음이 다음 주에도 쭉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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