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첫 번째 게시글로 퀴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지만, 제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네요.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비판을 듣거나 동의받는 것의 문제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고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만, 동성애로서의 당사자가 아닌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주체의 당사자성이나 인격 또는 감정을 훼손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은 텍스트를 다룰 때마다 도무지 떨쳐내기 어렵고요.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조심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야 퀴어가 특별하고 다른 주체와는 다르기에 생겨나는 배려-라는 명목의 구분 또는 차별- 같은 게 아니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갖춰야 할 태도는 본디 이런 것이 아닐까요. …중요한 내용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아무래도 전부 이야기하기에는 페이지가 서문으로 가득찰것 같으니 여기서는 잠시 쉼표를 놓아두겠습니다.
"이전 시대에 동성 개인 간의(남색과 같은) 성교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19세기에는 행위이기보다는 정체성의 문제가 되었으며, 누군가가 금지된 행위를 했다 안 했다보다는 그가 동성애자 '이다. 아니다.'의 문제가 되었다. '남색'은 행위였지만, '동성애자는 이제 종이 되었다'는 것이 푸코의 주장인 것이다. 이전에도 동성애적인 행위들은 있어왔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개인의 존재 내용을 결정하는 성적 핵심 혹은 본질의 문제가 되어, "그는 동성애자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 이러한 비판은 성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창출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위 인용문에 언급된 미셸 푸코의 주장에서 저는 행위와 정체성에 관한 지점을 추출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앞선 인용에 따라 표현을 조금 바꾸어 보자면, 19세기 이전에는 금지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있던 것이고, 19세기로부터는 금지된 존재가 있던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성애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상황을 바꾸어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조금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악행을 저지른 사람과 악인의 관계가 그에 해당하죠. 이러한 인식의 문제는 정체에 관한 혼란을 유발합니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과 악인 혹은 동성 간 금지된-금지되었던- 관계를 맺은 사람과 동성애자처럼요.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누군가 동성애적 행위를 한 사람이면동성애자인 게 아니냐, 라고 묻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인식의 문제를 말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지점을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악행과 악인에 관해서 먼저 떠올려 보죠. 악행과 악인 중 무엇이 먼저인가의 문제도 다루어 볼 수 있겠군요.
(누구)가 (무엇)을 벌였습니다.
위 문장에 각각 대입을 해본다면,
- 악인이 악행을 벌였습니다.
- 선인이 선행을 벌였습니다.
- 선인이 악행을 벌였습니다.
- 악인이 선행을 벌였습니다.
이대로는 감이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볼까요?
- 악인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 선인이 가난한 사람에게 고액의 기부를 하였습니다.
- 선인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 악인이 가난한 사람에게 고액의 기부를 하였습니다.
어떠신가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지는 않으셨을까요. 문장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악인인지 선인인지 그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셨나요? 물론 악인이 기부를 하는 데엔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말하거나 선인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되물어 보죠.
"살인을 저질렀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를 한 그의 정체성은 선인과 악인 중 과연 무엇일까요?"
타인 혹은 집단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그는 선인 혹은 악인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두 행위를 벌인 당사자가 스스로 선인 혹은 악인이라고 정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이 될 수 없죠. 살인자 및 고액 기부자라는 타이틀만은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그에게 부여되겠지만요.
물론 이 이야기는 정체성과 인과를 이야기하기 위한 내용이죠.
이제 다시 동성애에 관한 내용으로 돌아가 볼까요?
앞선 이야기에서, 개인의 정체를 정의하는 것은 타인 혹은 집단 그리고 그 개인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개인 내재에서 발현되는 사랑이라는 감정. 즉, 동성애에 한해서는 주체 자신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개인 내재에 있는 것이고 타인이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동성애적 행위를 한 사람이 반드시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흥미 본위 혹은 다른 이유로 몇 번의 동성 간 관계를 맺었다고 하였다고 그의 정체성이 동성애자로 확정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지금까지 제가 한 이야기와 푸코의 주장 상으로는 "당신은 동성애적 행위를 했는가?"와 "당신은 동성애자인가?"라는 질문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으며, 상이한 답이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행위와 정체는 반드시 일대일 대응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새롭게 도출되는 생각은 정체성의 확립과 구분이 반드시 필요한가, 라는 내용이 될 수 있겠죠.
언어에는 힘이 있습니다. 거리감을 만들어내거나 혐오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죠. 이성애자, 동성애자, 또 다른 다양한 성애자… 라는 개인의 정체를 기반으로 만든 언어가 있죠. 그러나 우리 개인에게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구분일까요?
위 어휘들을 구분하지 않고 모은다면 결국,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습니다.
물론 저는 정체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거나 그런 강요를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당연한 것이라는 오해로부터 비롯되는 차별과 혐오"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