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읽고
두 전쟁이 연이어 보도되었을 때,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이 글을 처음 쓰기로 마음먹은 2024년부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분쟁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 등 각지에서 인명의 상실과 재산 피해가 지속되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쟁은 국제적 이슈임이 분명하고 고유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당장 이러한 사태에 얽힌 요인과 경과를 전체 맥락에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를 비롯해 이러한 사태를 배경으로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화두에 오른 문예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점 역시 비전문가가 해당 사태를 체계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요인이 된다.
그렇기에 본 텍스트에서는 사태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문제가 종식되었다고 할 수 없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을 소개하고 분석할 것이다. 물론 해당 작품은 국제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으며, 사태의 전반적 맥락을 파악하기 수월하다는 최소요건을 충족하면서도 더 나아가 세계시민 의식에 적합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 게시글에서 다룰 파울 젤란의 시편인 「죽음의 푸가」는 강독 대상작으로써 아쉬움이 없으며, 후속 내용에서 연결될 부분을 생각해 보면 생전 그의 말에 충실할 만큼, 파울 첼란의 존재를 잘 나타내는 시 중 한편이라고 볼 수 있다.
파울 첼란의 시를 배경으로 이 텍스트는 외재적 분석을 통해 전쟁 범죄 및 인권 유린 등이 국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유기적 요인을 분석하며, 세계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올바른 가치 판단 역량과 태도를 제시하고 그 근거와 활용방안을 보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파울 첼란의 행보
파울 첼란의 시와 그것이 동반하는 이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게나마 그가 시를 쓰게 된 경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파울 첼란은 1920년, 루마니아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10대 시절의 첼란은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스페인 내전이 발생하자 공화파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로는 의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그해에 벌어진 오스트리아 병합 사태로 인해 빈에서 공부할 수 없게 되고, 당시 루마니아의 교육기관은 유대인 할당제를 실시했기에 파울 첼란의 입학 자체도 굉장히 어려워졌다. 이후 프랑스에서 학업을 이어가다가, 수정의 밤 사건을 겪고 루마니아로 귀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Schutzstaffel(나치 독일의 친위대)과 루마니아 동맹군이 체르나우치를 점령하고, 첼란은 게토 지방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그 시절 강제노역에 착취당하면서도 그는 문학을 공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43년, 몰도바의 수용소로 이송되고 뒤늦게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파울 첼란 자신은 1944년이 되어서야 소련군에 의해 풀려나게 된다.
이후로도 첼란은 창작을 계속하다가 1952년, 독일로 떠난 여행에서 문예 모임인 '47Group'에게서 낭독자로서 초청을 받고 강제수용소 생활을 묘사한 「죽음의 푸가(원제: Todesfuge)」를 낭독한다.
2. 죽음의 푸가에 관한 해석
이 장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파울 첼란의 시를 강독할 필요가 있기에, 「죽음의 푸가」의 전문을 인용하여 아래에 별첨하였다. 동시에 본 텍스트의 목적은 단순한 문학이 아닌 세계 이슈에 얽혀 있으므로 작품 강독에는 외재적 접근을 시도하겠다.
가장 먼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상당히 명확한 편이다. 정확히 어느 지역에 자리한 어떤 이름의 장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의 배경 지식을 갖추고 작품을 강독한다면, 작중 배경은 분명히 나치 독일이 주도하는 유대인 수용소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새벽의 검은 우유”를 마시는 ‘우리’는 수용 중인 유대인들을 주축으로 한 수용자들이며, 독일로 편지를 보내고, 허리띠의 쇠를 휘두르는 푸른 눈의 ‘그’는 필연적으로 독일군, 그중에서도 국방군이 아닌 Schutzstaffel의 친위대원으로 바라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 수용자들인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시는 “새벽의 검은 우유”란 무엇일까.
해석에 앞서, 말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 보고서를 읽는 대상 독자라면 이해하고 있겠지만, 문예 작품이라는 대상 텍스트를 강독하는 데 있어 단일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문예의 모든 의도와 해석에는 결과가 수반될 뿐이며, 그것이 독자나 심사위원 등 평가 주체의 인식을 거쳐 좋고 나쁨을 평가받을 뿐이다. 그러므로 “새벽의 검은 우유”라는 상징 혹은 알레고리 역시 복합적 관점에서의 다양한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인 해석을 시도해 보겠다.
새벽 / 검은 / 우유
“새벽의 검은 우유”라는 텍스트를 의미론적 배경에서 해체하면, 독자적 의미를 얻지 못한 조사 ‘의’는 소거되고 ‘새벽’과 ‘검은’ 그리고 ‘우유’라는 개념을 열거할 수 있다. 그리고 열거된 개념들은 관념과 실체로 다시 분류할 수 있다. ‘새벽’과 ‘검은’은 모두 실체를 가지지 않는 관념적 대상이다. 그에 비해 ‘우유’는 그 자체로 실체를 얻지는 못하지만, 수식받음으로써 실체를 지닐 수 있는 대상이다. ‘우유’라는 모호한 개념을 ‘새벽’과 ‘검은’이라는 관념이 수식하면서 그것은 의미를 얻는 셈이다.
작중 현실에서 ‘우유’는 현실의 우유와는 크게 다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유가 아닌 셈이 될 것이다. 사실주의적, 동시에 외재적 관점에서 미루어보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에 다른 자원들에 대비해 고급 물자에 해당하는 우유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하 나치당) 기준에서의 자국민으로서 성립하지 못하는 유대인에게 밤낮없이 지급되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우유’는 우유가 아닌, 그러나 우유와 전혀 다르면서도 강력한 공통의 성질을 공유하는 대상을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새벽의 검은” 무언가를 나타내면서도 우유와 전혀 다르고, 또 ‘마신다’는 공통의 성질을 공유하는 대상이라면, 그것의 한 가지 방안으로써 ‘연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작중 ‘우리’는 그의 명령 아래에서 땅을 판다. 구덩이는 곧 무덤이 되고, 독일에서 온 ‘그’는 “너희들 무덤은 구름 속에 있고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구름 속에 있는 무덤, 그것을 상투적 관념으로부터 관측하여 영혼이 하늘로 날아가는 일인 죽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텍스트에서는 그 대안으로써 ‘소각’을 제시하겠다.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유대인 수용소, 당대 나치 독일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일개 수용소나 그 인근 토지에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면적을 확보할 수 없을 만큼, 그러니 끝내 시신을 태워버리면서까지 홀로코스트는 이어졌다. 그러므로 작중 ‘우리’는 순차적으로 시신이 되고, 일련의 소각과정을 통해 연기로 바뀌기에, 연기로서 피어오르고 흩어지는 ‘우리’의 무덤은 구름 속에 있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좁은 공간을 할당받는 수용소 생활과 시신이 되어 땅속에 던져 넣어지는 상황에서 벗어나 최종적으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하고 ‘그’는 말하는 셈이다.
1. 파울 첼란의 시는 악의 진부성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한나 아렌트의 저서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세간에는 이러한 개념이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만 곡해되어 알려져 있기도 하나, ‘평범성’이라는 어휘로는 한나 아렌트가 제시하려 한 본래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banality’라는 영문 어휘의 의미와 저자의 주장을 통하여 어휘를 재해석하자면, 그것은 평범성이나 평이성이 아닌 진부성 혹은 상투성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실제로 저자의 단행본을 읽어 본다면, 다음과 같은 문구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이 피상적이면 피상적일수록 악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한 피상성의 지표는 상투어의 사용이며 (…중략…) 아이히만은 가장 완벽한 표본입니다.”
즉, ‘banality of evil’은 처형 직전까지도 연설에서 사용되던 상투어와 관청 용어(‘최종해결’이나 ‘안락사’ 등)에 의존한 말을 내뱉는 아이히만을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사유 능력과 악의 상관관계를 다루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누구든지 주위에서 언어에 내재된 사유체계를 겪지 않은 상투어를 남발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악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부재’는 곧 자신과의 내적 대화의 부족을 의미한다. 동시에,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비판적 사유란 자신을 자유롭고 공개된 검토에 노출하는 것이기에 결국, 사유의 부재는 소통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를 해석해보겠다. 그를 위해서 작품 속 ‘그’는 오직 홀로 이야기하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오로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며, ‘슬람미’와 ‘마가렛’이라는 여인에게 편지를 쓰는 존재이다. 현실의 수용소 감독 생활과는 별개로, 작품 속 ‘그’는 오직 수신 없이 발산을 반복하는 주체인 셈이다. 동시에 ‘그’는 ‘그’ 자신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라는 주체는 소통의 단절을 이루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셈이고 ‘수신의 부재’는 곧 사유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 머리 / 슬람미 너의 잿빛 머리
시에서 담담하게 그러나 묘하게 강조되어 보이는 이러한 어구 역시, 작품 속 ‘그’의 상투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는 ‘그’에게 ‘아이히만’을 투영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아이히만’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악의 진부성이란 사유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한 개인의 사유를 끌어내고 확장하도록 유도하는 행위가 문학의 존재의의이기도 하다.
2. 현대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학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파울 첼란의 작품과 이 보고서의 얼개는 모두 홀로코스트에 기반한 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분명,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 몇 차례의 전쟁을 거쳐 여전히 전쟁 중인 세대인 현재에 8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를 하는 명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먼저,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는 1947년에 발표된 시이며, 2025년에 이른 지금은 살아 있는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뿐 아니라 그 시대를 경험한 이들조차 상당히 줄어든 상황이다. 그렇더라도 홀로코스트는 역사의 일면으로써 유럽사, 전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양한 문학 작품을 형성기도 했다. 그러한 문학에는 다양한 목적과 의미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역할은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피해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하면서도 작품 속 Schutzstaffel 친위대원인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유의 부재에 관해 경고하는 「죽음의 푸가」 역시 그 목적과 의미의 전달을 분명히 달성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의 외재적 분석을 통해 본 보고서는 사유의 부재로부터 이어지는 악의 진부성을 관측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악과 차별 그리고 폭력의 근원은 ‘사유의 부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윤리적 주체성을 지닌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닐 수 있는 가치판단 역량과 태도는 곧, 사유의 강화로부터 기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저녁에 마신다
낮에도 마시고 아침에도 마시고 밤에도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산다 그는 뱀을 가지고 놀고 글을 쓴다
날이 어두워지면 그는 독일을 향해 마아가렛 너의 금빛머리 그렇게 쓴다
그가 그렇게 쓰고 집앞으로 나오면 별이 빛난다 그는 제 사냥개를 휘파람으로 부른다
그는 유태인을 휘파람으로 불러낸다 땅에 무덤을 파게 한다
그는 춤곡을 연주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아침에 마시고 한낮에 마시고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산다 그는 뱀을 가지고 놀고 글을 슨다
날이 어두워지면 독일에 글을 쓴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머리여
슬람미, 너의 잿빛 머리 라고 쓴다 우리는 무덤을 공중에 판다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그는 더 깊이 땅을 파라고 소리친다 너희들 이쪽은 땅을 파고 저쪽은 노래하라 연주하라
그는 허리띠의 쇠를 쥐고 그것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푸르다
곡괭이로 더 깊이 파라 너희들 이쪽 너희들 저쪽은 계속해서 춤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시고
낮에 마시고 아침에 마시고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산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머리여
슬람미, 너의 잿빛 머리 라고 쓴다 우리는 무덤을 공중에 판다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그는 더 깊이 땅을 파라고 소리친다 너희들 이쪽은 땅을 파고 저쪽은 노래하라 연주하라
그는 허리띠의 쇠를 쥐고 그것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푸르다
곡괭이로 더 깊이 파라 너희들 이쪽 너희들 저쪽은 계속해서 춤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시고
낮에 마시고 아침에 마시고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산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머리
슬람미 너의 잿빛머리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소리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名手다
그는 소리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리고 너희들은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올라가라
그러면 너희들 무덤은 구름 속에 있고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시고
낮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名手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 마시고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名手다 그의 눈은 푸르다
그는 너를 납으로 된 총알로 맞춘다 그는 너를 정확하게 맞춘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산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머리
그는 사냥개를 우리에게 몬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을 준다
그는 뱀을 가지고 놀고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名手다
마아가렛 너의 금빛머리
슬람미 너의 잿빛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