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직장 퇴사일기-5

그리고 회복

by 소소

지옥 같은 월요일 아침 나는 그렇게 등 떠밀리듯

낯설고 새로운 부서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날의 출근길은 마치 벌을 받는 시간처럼 고통스러웠다.
그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되는 거리였지만 계단을 내려가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발 헛디뎌서 다리가 부러지면..출근을 안 해도 될까.’
참으로 어리석고도 위태로운 상상..그만큼 마음이 버거웠다.


새 부서에서의 첫 날 대표는 나를 자신의 자리 바로 앞

대표실 한가운데 빈 책상에 앉혔다.
대표 자리 일직선으로 앞 자리 였다.

내가 뭘 하는지 다 볼 수 있는....


임시로 가져다 놓은 책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컴퓨터도, 연필 같은 문구류 하나도. 그 흔한 A4용지조차 없었다.
혹시 몰라 아침에 남편이 챙겨준 내 개인 노트북이 그날을 버티게 해주었다.
그 노트북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퇴근을 30분 앞두고서야 겨우 PC가 도착했다.
그제야 나는 대표와 조금 떨어진 자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내게는 어떤 업무도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표는 나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점심은 사서 드세요.”
말끝은 가볍지만, 의도는 명확했다.

참...이 XX... 치사하네....

속으로 쌍욕이 나왔다...하하

밥 가지고도 이렇게 치사할 수 있구나.

마치 아주 원초적인 부분까지 집요하게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원래 속한 부서는 회사에서 식사가 제공되는 구조였지만

이동된 부서에서는 그마저도 없다는 뜻이었다.
내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중식 제공’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지만 그걸 따질만한 마음의 여유는 나에겐 없었다.


예상했지만...그 부서에서의 시간은 지옥이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숨이 차올라 심호흡을 하러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고

두통약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다.

웃음은 사라진지 오래고 자존감은 매일 조금씩 침식되었다.
정말이지 괴롭고 굴욕적이며 치욕적인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

약 2주쯤 지났나... 대표는 너 이래도 안그만 두니? 하는 얼굴로

퇴근무렵 나에게 또 다른 통보를 내렸다.

“00씨. 들으셨죠? 내일은 ★★으로 출근하세요."

"네? 못들었습니다."

"A님이 말씀 안하시던가요?"

"네"

"뭐 그건 지금 들으셨으니 됐고요. 어딘지 아시죠?"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습니다"

"지도는 알아서 네이버에서 찾으시고”


★★은 모회사의 또 다른 사업체가 있는 곳.

우리집에서 2시간 이상 떨어진 지역, 교통도 불편한 곳이었다.


와... 정말 와....하는 감탄사만 나오더라.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대표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갑작스럽게 하루 아침에 출근지를 바꿔버렸다.

편도 2시간 이상. 왕복 4시간 거리로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바로 전날 퇴근무렵 알려주는게

인간이 할 짓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날 퇴근 후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나는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아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마침 그 날은 달의 마지막 날 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결심이 서자마자 대표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까지만 근무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대표의 답장은 단 한단어- "네"였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메세지였을까.

그렇게 조용히 나는 그곳을 떠났다.


지금 돌아보면 그만두기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 중 이 선택은 분명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잘한 결정이었다.

그 즈음 함께 퇴사한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백수가 된 우리는 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거기서 그렇게 당했으니 이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섞인 말이었지만 진심이 담긴 회복의 순간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신고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건 조직을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고 둘러댔을 것이다.

후회가 남는다.


그렇게 그 곳을 나온 지금 나는 나를 나로서 존중해주는 조직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작은 성과에도 따뜻한 격려를 받는다.

얼마 전에는 회사에서 표창도 받았다.

꽤 오래 걸렸지만 무너졌던 자존감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고

그토록 바라던 ‘괜찮은 하루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내가 겪은 일을 그 누군가는 또 겪었고

이후에도 이런일이 반복되다 결국 꽤 많은 인원이 그 곳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그런식으로 자신에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둘 내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면서도 때때로 놀라운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그 대표 또한 운영 악화를 이유로 모회사 대표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스스로 만든 방식이 자신에게도 돌아간 셈이다.


권력의 그늘에서 누군가를 짓밟으며 존재감을 유지하던 그는 그렇게 초라하게 떠났다고 한다.

쌤통이었다.

우연히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 속 그는 이전에도 어느 회사에서든 비슷한 방식으로 군림하다가

결국엔 늘 경영 악화를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직함은 대표 혹은 이사였지만 실상은 늘 책임을 지지 않는 ‘거짓말대표’였다고 했다.


하지만 천성이 어딜 가겠나.

그는 아마도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누군가 또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말을 꼭 남기고 싶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다면 나처럼 절대 참지 말고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우리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다뤄질 이유가 없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라고.


이 글은 상처를 가진 누군가가 또 다른 상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약속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내가 받은 모욕과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그의 통치 아래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버석거렸는지

나는 이제 다시는 그런 시간을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더 빛날 것이다.

그 사람이 틀려도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꼭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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