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퓨처 Feb 05. 2023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코로나 전에는 회사에서 봉사활동을 자주 다녔다. 그중에 지적 장애인들의 보호시설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간단한 교구재를 함께 만들어서 구동해보기도 하고, 단체 게임을 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결코 활동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정상인들보다 훌륭한 점도 있었다. 특정 교구의 상세 조립등 순간 집중력이 필요한 부분에선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배우기도 했다. 그분들의 얼굴엔 어느새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더 이상 지적 장애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의학적 치료가 아닌, 마음을 나누는 공감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자 분들 말씀이, 우리가 다녀간 이후 한 동안 그분들이 우울해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교감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활동이 그분들에겐 청량제와 같았던 것이다.


신경 이상으로 인한 장애를 치료하는 데 있어, 의학적 접근보다 심리적 교감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 의학자이며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다. 신경과 전문의로, 평생 치료했던 자들에 대한 임상 체험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의학적 체험을 넘어 한 의사의 사람 이야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자연학자인 동시에 의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질병과 사람 양쪽 모두에 똑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신(심리)과 물질(육체)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둘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다루고 분리할 수 없도록 결합시켜 실행하는 연구가 가능하다면 범주가 서로 다른 그 두 영역을 접근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며 추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영상을 만드는 시각피질에 결함이 있어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시각인식불능증'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목을 끈다. 이 사람이 바로 아내의 머리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다. 이것은 매우 특이한 병으로, 바닥에 떨어진 바늘도 발견할 정도로 시각엔 아무 이상이 없지만, 때때로 특정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신발을 신는다면서 손을 발바닥에 갖다 댄다던지 하는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진료가 다 끝나고 모자 대신 아내의 머리를 끌어당긴 것이다.


놀랍게도 이 사람의 직업은 음악 교사였다. 어떻게 작곡을 하며 음표를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촉각을 통해 획득한 것을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에 시각적 이미지의 창조능력을 획득하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올리버 색스는 추측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스스로 우수한 음악가이자 교육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김으로써 본인의 질병을 심리적 학습으로 커버했기 때문이리라. 올리버 색스는 그에게 그 어떤 처방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다음과 같이 얘기해 줄 뿐이었다.


"선생님은 훌륭한 음악가이고 음악은 선생님의 삶 그 자체입니다. 만약 제가 처방을 내린다면, 음악 속에 파묻혀서 생활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음악이 선생님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시라고 말입니다."


책에는 이와 같은 소주제의 이야기 24개가 담겨있다. 모두 올리버 색스의 의학적 외의 마음적 접근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임상 체험서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완독 후엔 한 편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 들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최고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런 걸작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8월이 되면 올리버 색스 작고 8주기를 맞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임을 예술로 만드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