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해지는 서버 시장 충돌, AMD의 생산량 부족
최근 인텔이 지난 2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듣고 그냥 필 받아서 적었습니다.
인텔 클라이언트 그룹(PC및 랩탑)의 성과는 예상 이상으로 매우 뛰어납니다. 홀로 4조원 넘는 순이익을 남겼으며, 매출 증가(0.6)보다 순이익 증가(1.0)가 큽니다. 마진율도 7% 이상 개선된 모습이 보입니다.
더 재미있는 부분은 ASP(판매단가) 변화인데, 작년 동기 대비 모두 랩탑에서 17%, 서버에서 5%의 판가 하락이 있었단 것입니다. 하지만 판매량 증가가 무려 33%나 되었으니 박리다매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정작 마진율은 올라간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세가지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장에 CPU가 부족하단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텔의 10nm SF공정이 빠르게 성숙하고 있따는 의미일 것입니다. 인텔의 추가 생산량은 전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AMD가 생산량 부족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AMD는 이미 2020년 초 TSMC로부터 기존 2배의 7nm 생산량을 할당받았는데, 정작 2020년 3분기에서 4분기로 넘어갈 때 인텔에게 클라이언트 점유율을 소폭이나마 따라잡혔습니다. 물론 AMD는 이 물량을 그냥 앉아서 잃은 것은 아니고, 아래에서 볼 데이터 센터쪽으로 크게 돌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클라이언트와 달리, 데이터 센터 그룹은 상황이 영 좋지 못합니다. 클라이언트와는 반대로 이 쪽에서는 매출 감소보다 더 큰 순이익 감소가 나타났습니다.
HPC등을 하는 대형 고객들은 AVX512의 힘으로 매출 상승이 일어났으나, 빡빡하게 잔뜩 CPU를 끼워넣어 서비스를 해야 하는 밀도 중심의 클라우드 쪽 고객들의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판매량 1%감소에 비해 더 큰 ASP감소로 인해 비즈니스가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는 AMD가 칩렛 디자인을 통해 다코어 CPU를 성공적으로 런칭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인텔 데이터센터 공정이 14nm 기반 캐스케이드 레이크 + 10nm SF가 아닌 일반 10nm로 제조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현 상황에 비춰, 두 회사의 차기 로드맵들을 보며 이후엔 어떤 일들이 전개될지 한번 추측을 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 분야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워낙 설계부터 제조가 오래 걸려, 앞의 1~2년간 일어날 일은 생각보다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올해 4분기를 시작으로 인텔 10nm의 또 다른 개선 공정인 10nm ESF 기반의 제품들이 출하되기 시작합니다. 인텔은 지난 수년간 제조의 부진을 딛고, 드디어 단일한 공정으로 클라이언트부터 데이터 센터까지 모든 제품을 출하하기 시작합니다.
데스크탑 및 랩탑에서는 알더 레이크(Alder Lake)라고 부르는 신규 CPU가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스마트폰과 비슷한 대형 코어 + 작은 고효율 코어 구조가 도입되게 됩니다. 이런 구조를 도입하는 이유는 일반 사용자의 사용 패턴상, 고성능의 코어 개수가 많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미 잘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인텔은 레이크필드(Lakefield)라는 제품을 통해 이를 확인하였고, 이제 PC시장에도 이런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제품을 통해 인텔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및 각종 노트북 제조사들 역시 이미 인텔의 하이브리드 CPU에 대한 이해를 갖추게 되었을 것입니다.
한편 서버에서는 사파이어 라피즈(Sapphire Rapids)라는 칩이 10nm ESF로 제조되어 출시됩니다. 현재 알려진 바로 사파이어 라피즈는 최대 56 코어를 지원하며, 코어 당 성능은 현재 EPYC 기반 코어들보다 10~20% 가까이 좋을 것입니다. 이 시기동안 인텔은 다시금 성능 및 물량의 우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며,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점유율을 찾아올 것입니다. 또한 HBM을 결합한 물건을 판매함으로써, HPC시장에서의 우위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시기가 되면 TSMC의 기존 모바일 기반 5nm고객들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AMD의 Zen 4는 2022년 말 쯤 생산이 시작되는데,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설계와 공정 모두 획기적인 개선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이 시기의 인텔은 7nm의 1년 가까운 지연의 데미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여전히 10nm ESF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AMD가 정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면 Zen 4는 랩탑과 서버를 중심으로 출격할 것이고, 랩탑에서는 그나마 빅-리틀 구조로 버텨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 사파이어 라피즈의 56 코어 셋업은 클라우드 시장에서 Zen 4의 막강한 성능 + 코어 개수(Zen 3 기반 당시 64) 러시를 막아내기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루머대로 AMD도 AVX512를 추가해서 나올 경우(AMD "Zen 4" Microarchitecture to Support AVX-512 | TechPowerUp), HPC시장에서도 인텔에게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AMD는 이 시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가장 중요한 시장들에서 큰 존재감을 나타내야만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출총이익을 크게 잃지 않는 선에서 TSMC의 5nm 생산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애매한 우위를 누리며 안주할 경우, 2023년쯤 7nm를 시작으로 성숙하기 시작하는 인텔의 신기술들에 대항하기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은 직을 유지하고 있다면 팻 겔싱어 취임 3년이 됩니다. Intel Unleashed의 발표를 보면, 인텔은 이때부터 데스크탑 CPU에까지 타일 구조를 도입하게 됩니다. 인텔의 Tile구조는 현재 AMD가 사용하는 칩렛 + 인피니티 패브릭 기반의 연결보다 더 개선된 EMIB이라는 구조(Mix-and-Match : 칩 제조의 새 방향 (brunch.co.kr))를 사용합니다. 이를 통해 인텔은 고성능 부위를 나눠 제조함으로써 수율을 높이고, 크기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부위는 기존 14nm나 10nm를 사용해 제조함으로써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웨이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방식을 통해 첨단 공정의 생산량이 부족하다면, 10nm ESF로 iGPU를 만드는 등의 계획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인텔은 이 쯤 확실하게 자체 7nm 공정을 도입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인터넷의 각종 누설 정보에 따르면 밀도는 약 제곱밀리당 2.0~2.5억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TSMC 5nm와 3nm 사이 정도 되는 밀도입니다. 인텔이 이번에도 제조 스케쥴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은 있지만, 팻 갤싱어 취임 이후 "문제가 있다", "7nm를 어렵게 하던 문제를 해결했다" 등, 지난 수년간 인텔이 10nm에 대해 우물쭈물 대답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볼 때 인텔 7nm는 약속한 2023년 말 쯤에는 소량 생산이 시작되고(TSMC 3nm보다 1년 늦는 시간), 2024년이 되면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인텔은 2010년 중반에 투자했던 패키징 및 타일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하며, 제조 역량의 부진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인텔은 신규 패키징 시설에 4조 가까운 돈을 투자할 것임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Intel plans investment for advanced packaging technologies (packaging-gateway.com)). 일반적인 CPU 패키징 공장은 이 정도의 자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존 AMD가 인텔 대비 가지고 있던 장점 몇 가지(Chiplet디자인, 좀 더 나은 미세공정)를 따라잡히고, 인텔은 AMD는 없는 빅-리틀 조합을 가지게 됩니다. 이 모든 기술들은 주어진 웨이퍼 안에서 생산량을 극대화 하는 기술들인데, 이러한 기술들은 스스로 설계부터 제조까지 하는 IDM에게는 매우 막강한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켓 레이크를 백포팅 하면서 설계와 제조 사이의 의존성을 줄였으므로, 필요하다면 TSMC등에게 외주를 주는 선택지도 생겨났습니다.
한편, 현재의 발표들에 따르면 AMD는 2023년 초에는 월 5만장 수준밖에 되지 않을 3nm 공정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Apple and Intel become first to adopt TSMC's latest chip tech - Nikkei Asia).
AMD는 2023년 이후 로드맵이 제대로 공개된 것이 없어 알 수 없으나, 2023년 말 쯤 양산 시작될 Zen 5나 Zen 6는 얼마나 획기적으로 설계했을지, TSMC가 AMD에게도 물량을 줄 수 있을 만큼 생산량을 끌어 올릴 수 있을지 등이 매우 궁금해 집니다.
최근 미세공정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이를 보조하기 위해 패키징, 결합, 이종 코어 조합, 미세공정, 소프트웨어 등 수 많은 테크닉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로 인해 반도체 시장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도 조합되는 기술의 숫자도 많아지고 복잡해졌습니다. 모바일이라는 큰 트렌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설상 가상으로 제조 설계 모든 분야의 리더쉽을 잃었던 인텔은 오랫동안 갈팡질팡 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와중에 서버 및 랩탑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면서, 매출과 순이익 모두가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투자했던 수 많은 분야중 여러 분야에서의 결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팻 갤싱어를 포함하여 프로그래밍 시장 자체를 만들어내었던, 인텔을 사랑하던 과거의 수 많은 paranoid들이 아직은 인텔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힘과 새로운 인재들을 불러 모은 뒤, 과거보다 더욱 복잡한 기술들을 조합하여 다시 과거 프로그래머들이 선망하던 그때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인텔의 성패를 결정할 것입니다.
한편, AMD의 약진도 매우 놀랍습니다. 그 작은 자본과 덩치를 가지고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거인 인텔에게 펀치를 연속으로 먹인다는 것은 막강한 리더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AMD내부의 결속은 매우 강할 것이며, 인텔보다 뛰어난 설계를 한다는 자부심으로 뭉쳐 있을 것입니다. AMD는 Zen으로 넘어올 때 어마어마한 개선을 이루었는데, 그런 개선을 3개 세대 제품 연속으로 해 내었습니다. 인텔 CPU 2~3세대가 해야 할 발전을 한개 세대 만에 해 내 온 것입니다.
과거 가난했던 모습을 뿌리치고, 최근 FPGA를 인수한것과 비슷하게 Zen 5, 6이상의 로드맵을 보여주며 이를 기반으로 더 큰 첨단 공정 기반의 생산량을 차지하기 시작한다면 행여나 인텔이 부활한다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암울한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행보들은 x86진영이 ARM진영과의 더 큰 싸움에서 버티고 나아갈 수 있게 되는 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