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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Nov 03. 2020

게임 세계의 보이지 않는 여자들

청년세대 게이머의 능력주의 신화 비판

1. 삶을 장악하는 게임

박원익·조윤호, 『공정하지 않다』, 지와인, 2019.
“이 사건은 게임, 특히 RPG 장르에서는 게임의 근간을 흔드는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RPG를 하게 만드는 욕구가 뭐겠어요? “남들보다 강해지고 싶다.” “남들보다 더 인정받고 싶다.” 인정 욕구, 과시욕이겠죠. 현실에서는 내가 노오력한다고 그만큼 뭐가 이루어집니까? 잘 안 되잖아요. 근데 게임에서는 되잖아요. 그래서 RPG를 하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RPG에서는 공정한 환경, 즉 돈, 노력 등 내가 무언가를 투자한 만큼 내 캐릭터가 강해지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G식백과, 2020.9.15.)

     

지난 9월,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게임 <던전 앤 파이터>(던파)에서 ‘궁댕이 게이트’라고 불리는 사건이 터져 게이머들의 공분을 샀다. 궁댕이 게이트는 던파의 한 게임 운영자가 게임 내 아이템과 재화를 무단으로 생성하여 부당 이득을 취한 사건이다(그 운영자 계정의 모험단 이름이 ‘궁댕이맨단’이었다). 그 운영자는 일반 유저라면 몇 달을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얻고는 그냥 일반 계정인 척하고 게임을 즐겼다. 이렇게 부정행위로 얻은 아이템의 가치는 현금으로 계산하면 무려 5000만 원 상당이라고 한다(아이템을 현금 거래한 정황도 발견됐다). 게임 유튜버 김성회는 “지금 던파 유저들은 나의 노력과 시간을 모욕당한 기분일 것”이라며 게이머들이 분노한 이유를 설명했다(G식백과, 2020.9.15.).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며 다른 것보다 “공정한 환경”이라는 말에 꽂혔다. 그게 도대체 뭐길래 RPG의 근간이라고까지 불리는 걸까? 던파의 유저들, 그리고 게이머[1]들은 공정성이 훼손됐기 때문에 노여워한 것이리라. 게이머들은 무엇을 공정하다고 보는가(반대로 뭘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가)? 『공정하지 않다』의 저자 박원익과 조윤호는 오늘날 20대[2]가 주어진 신분이나 출신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지위나 임금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인 ‘업적주의’를 지녔으며 이에 위배되는 것은 이들 세대에게 정의롭지 않다고 설명한다. “나보다 ‘덜 노력한’ 누군가가 기회를 갖게 되거나 혜택을 ‘더 받는다면’ 참을 수가 없다. 그것은 […] 공정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박원익, 조윤호, 2019, 30~31쪽)


[1] 이 글에서 ‘유저(User)’는 특정 게임,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을, ‘게이머(Gamer)’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게임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등 전반적인 게임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만을 가리켜 ‘플레이어(player)’라고 부른다.

[2] 게이머 중에는 20대뿐만 아니라 더 나이가 많은, 이른바 ‘기성세대’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6월부터 조사 시점(2019년 4월)까지 연령대별 게임 이용률이 10~30대는 80퍼센트 이상인 반면 40대 이상에서는 약 5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글에서는 10~30대를 ‘청년세대’로 분류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게임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논한다(『공정하지 않다』에서는 오늘의 2030세대를 ‘청년세대계급’으로 명명한다).


오늘날 게임은 ‘어차피 그냥 게임’에 불과한 것(서브컬처)을 넘어 적어도 청년세대에게는 대중문화로서 인정을 받으며 현실을 장악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자신의 행동이 현실을 재현한다는 인식을 갖고서, 자기의 분신과 같은 게임 캐릭터를 만들어 감정이입하고, 게임 속 서사를 따라가거나 개입하며, 다른 플레이어와 소통하면서 갈등을 겪는 등의 ‘사회생활’을 경험한다(딜루트, 2020, 75~77쪽). 게임 밖에는 각종 게임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게이머들은 서로의 취향, 생각, 사상을 공유한다.[3] 나는 출판 편집자로서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게임의 문법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때 게임의 위상을 실감한다.

  

[3] 게임의 안팎을 통틀어 게임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공간을 ‘게임 세계’라고 부른다.


“게임은 ‘선택’이라고도 한다. 또한 게임은 ‘체험’이라고 한다. 삶의 문제들이 계층 심화로 인해 선택 불가능한 비활성 메뉴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서만 적극적 ‘선택’을 체험한다. 게임이 삶을 물들이고, 원래부터 삶을 모방했던 이야기는 이제 게임을 모방한다. … 가장 위협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는 변화는, 게임의 언어로 세계를 보는 눈, 그리고 그 눈에 의해서 쓰이고 읽히는 이야기다.”(진산, 2020.10.5., 44쪽)



2. 게이머가 추구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성


마이클 영, 『능력주의』, 유강은 옮김, 이매진, 2020.


게이머들에게 능력주의(≒업적주의)는 매우 중요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롤) e스포츠 프로팀 배빅틱스(Vaevictis eSports)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배빅틱스는 2016년 독립국가연합 지역 롤 리그인 LCL(LoL Continental League) 출범했을 때부터 활동한 프로팀이다. 그런데 2019년 리그 편성 방식이 개편되면서 배빅틱스는 기존 모든 선수를 방출하고 여성 유저 5명을 영입하여 세계 최초로 여성으로만 구성된 롤 프로팀을 만든다. 이 여성 선수들의 티어가 낮고 포지션이 안 맞는 등의 문제[4]로 인해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과연 실력이 있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실제로 2019 스프링·섬머 시즌의 모든 경기에서 처참히 패배하고 만다. 결국 2020년 2월, 개편 1년만에 배빅틱스는 실력 문제로 리그에서 퇴출된다(박해수, 2020.2.19.). “프로리그를 모욕”하며 그저 “화제성때문에 개못하는 여자애들 모아놓고 만든팀”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은 조롱과 냉소로 가득했다.[5]


[4] 롤 플레이어들은 일반적으로 랭크(rank) 게임 모드를 이용한다. 5:5 팀 전투에서 승리하여 LP(League Point)를 쌓고 티어(tier, 계급)와 랭킹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다. 5명의 팀원들은 각각 탑, 정글, 미드, 원딜, 서포터라는 5개의 포지션(역할)을 맡는다. 티어는 오름차순으로 아이언 4~1, 브론즈 4~1, 실버 4~1, 골드 4~1, 플래티넘 4~1, 다이아몬드 4~1,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챌린저가 있다. 대체로 프로들의 티어는 마스터 이상인 반면, 배빅틱스의 여성 선수들은 다이아몬드에 불과했고 주 포지션도 전부 서포터였다.

[5]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215572


롤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공정하지 못한 플레이 유형으로 ‘대리·저격·방플·부캐(대저방부)’를 꼽는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는 대리는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랭크 게임을 대신 플레이하는 행위를 말한다. 롤을 서비스하는 회사 라이엇 게임즈에서는 이를 불건전 행위로 간주하고 꾸준히 단속하고 있다. 대리게임에서는 보통 게임 실력이 뛰어난 유저가 게임을 못하는 의뢰인의 티어를 대신 올려준다. 의뢰인은 자기 능력에 맞지 않는 과분한 티어를 얻어 인정 욕구와 과시욕을 충족하고, 대리를 해준 사람(대리기사)은 그 대가로 돈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전문 대리게임 업체가 성행하자, 2017년 이동섭 국회의원은 이들을 처벌하는 내용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고, 개정된 법률은 2019년 6월부터 시행됐다(김미희, 2019.6.24.). 개정안을 발의할 당시 이동섭 의원은 “전문대리게임이 왜 나쁜지 쉽게 설명하자면, 토익시험을 치는데 내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제3자에게 돈을 주고 대신 시험을 보게 해서 점수는 내가 받는 것과 같다”며 발의 취지를 밝혔다(장민영, 2017.6.12.).


저격은 팀 매칭이 이루어질 때 특정 플레이어와 만나기 위해 그 플레이어의 게임 상태를 파악해서 게임을 시작하는 행위로, 주로 자신의 게임 플레이를 생방송으로 송출하는 스트리머들이 저격을 많이 당한다. 방플(방송 플레이)은 그러한 스트리머의 게임 방송 화면을 보면서 원래라면 알 수 없는 상대 팀의 정보를 파악해 유리하게 플레이하는 행위다. 부캐는 본래 키우던 캐릭터(본캐) 외에 부가 캐릭터를 만들어 플레이하는 행위 혹은 그 캐릭터를 말하며, 특히 높은 티어에 있는 본캐를 가진 사람이 부캐를 키워서 낮은 티어의 사람들과 경쟁하여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매칭’되는 시스템[6]을 무의미하게 만들 때에 문제시된다(혹은 본캐로는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자 열심히 플레이하는 반면 부캐로는 굳이 승리에 목적을 두지 않고 설렁설렁 플레이하며 승리를 원하는 같은 팀에게 폐를 끼치기도 한다). 이런저런 행위들은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르게 해석되지만 전반적으로는 게임의 공정한 룰을 깨버리는 것으로 안 좋게 평가받는다.


[6] 롤에서는 MMR(Match Making Rating)이라는 시스템이 적용되어 서로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맞붙는다. 나와 상대의 실력 차이가 너무 나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입증할 수 없으므로 게임할 맛이 안 날 것이다. 많은 게이머가 5:5 팀전에서 개개인의 실력보다도 단순히 같은 팀에 부캐가 얼마나 많은지로 게임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게임이 재미가 없어지는 것을 ‘피해’라고 인식한다(http://www.inven.co.kr/board/lol/2999/84754).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그리고 성과)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말한다(맥나미, 밀러 주니어, 2015, 12쪽). 능력주의 시스템이 잘 돌아간다면 게임의 승패는 불공정함이 아주 조금만 개입돼도 크게 뒤바뀔 것이다. 게이머들은 공정한 경쟁에 민감하고 공정한 룰을 열망하며, 청년세대에서는 이러한 열망이 공정한 시험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018년에는 ‘숙명여고 시험 유출’ 사건이 있었다. 각각 문과 121등, 이과 59등이던 쌍둥이 자매가 불과 1년 만에 문이과 각각 1등을 차지하는 급격한 성적 상승을 보여 시험문제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일었다.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2018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총 5차례의 교내 정기고사에서 교무부장인 아버지로부터 미리 답안을 받아 시험에 응시하여 학교의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검찰, ‘시험지유출’…」, 2020.7.17.). 시험 답안을 미리 받아 보는 것은 방플과 비슷하며 타인의 힘을 빌려 성적을 높였다는 점에서 대리와 닮았다(입시를 준비하는 가족을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본다면 이는 본캐인 아버지가 부캐인 딸[7]을 키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청년들은 이런 입시비리가 등장할 때마다 “차라리 수능 점수로 줄 세우기를 시키는 게 가장 공정하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박원익, 조윤호, 2019, 34~35쪽).


[7] 부모가 본캐, 자식이 부캐라는 생각은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을 만든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에 쓴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봉건주의와 가족은 손을 맞잡는다. 가족은 언제나 상속의 기둥이다. 일반적인 부모(…)는 자기 돈을 외부인이나 국가가 아니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했다. 자식은 자기의 분신이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스스로 일종의 불멸성을 얻었다”(강조는 필자가 함; 영, 2020, 52쪽) 한편 최근에 ‘저출산 위기’ 소식을 전한 KBS 뉴스 유튜브 영상에는 이러한 댓글도 달렸다. “만렙찍고 장비도 다 맞춰야 부캐를 키우지. 본캐가 맨날 쓰레기처럼 겔겔 거리는데 누가 부캐를 키우냐?”(https://youtu.be/3sR9cdQt7A0)


인간은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구성원들과 상호작용하며 가치, 기술, 지식 등을 학습하는 사회화를 거친다. 오늘날 청년세대가 사회화되는 데에 게임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능력주의와 관련하여 게이머는 게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두 가지 ‘눈(관점)’을 기른다. 첫째, 가치, 능력, 성과를 수치화하여 비교·분석하는 눈. 게임에서는 레벨, 스탯 공격력, 순위 등 캐릭터(플레이어)의 정보가 숫자로 명확하게 드러나며 게이머들은 그러한 스펙으로 대상을 평가하고자 한다. 둘째, 성별, 인종, 장애 유무 등 개인의 정체성 차이를 무시하고 세상을 평평하게 바라보는 눈. 게임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마음대로 만들거나 선택할 수 있으므로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의 진짜 정체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이 드리워진 것만 같은 게임 속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평등하게 경쟁에 참여한다. 이때 여자냐 남자냐 따위보다 중요한 건 게임을 잘하냐 못하냐이며, 게이머라면 오로지 실력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정정당당하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눈은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잘 돌아가기 위해(잘 돌아간다고 믿기 위해) 각 구성원들이 갖추어야 할 것들이다.



3. 보이지 않는 여자들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보이지 않는 여자들』, 황가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0.


하지만 두 가지 눈으로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첫째, 수치가 개인의 능력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가? 정말로 “차라리 수능 점수로 줄 세우기를 시키는 게 가장 공정”할까? 공부 잘하는 학생이 점수도 잘 받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좋은 성적은 오롯이 학생 개인의 성취이기보다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돈, 인맥 등 비능력적 요인인 사회적 자본의 영향을 받는다. 그에 따라 교육 자체의 불평등, 교육 기회의 불평등, 학업성적 격차와 사회진출의 불평등이라는 전반적인 교육 불평등의 세대를 거듭해 악순환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사교육비조사·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사교육비 지출 액수는 가정의 소득에 따라 다르고, 사교육비에 많은 돈을 쏟을수록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오르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녀의 대학 진학률도 높아진다(황규성, 2016.10.1.).


“현대에 들어서면서 부모가 정규 교육을 통해 자녀의 미래에 투자하는 방식이 농장이나 소규모 가족 사업체를 물려주는 방식을 대신해 다음 세대로 특권을 넘겨주기 위한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특권의 세습이 개별적인 사업체 같은 유형의 형태를 띨 가능성은 줄어든 반면, 남보다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등 무형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맥나미, 밀러 주니어, 2015, 50쪽).

  

둘째, 이런저런 정체성의 차이를 정말로 무시해도 좋은가? 청년세대에게 공정함이란 개인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고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종 할당제 정책은 이러한 기준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박원익, 조윤호, 2019, 106쪽). 이를테면, 생물연구정보센터(브릭, BRIC) 커뮤니티에는 “여성과기인 지원정책 찬반”이라는 이슈 글타래가 있다.[8] 과학기술계 다양성과 공정성을 위한 여성과학기술자 지원정책에 대해 찬반 의견을 나누는 이 타래에는 대부분 여성교수임용 할당제에 반대하며 성별에 관계없이 성과가 우수한 사람을 교수로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강연실, 2020.9., 126~127쪽). 하지만 여성운동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저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여학자는 비슷한 조건의 남학자보다 연구비를 제안받거나. 교수와 면담을 하거나, 멘토링 제안을 받거나, 직장을 구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지적한다(페레스, 2020, 131쪽). 즉, 애초에 여성 학자가 우수한 성과를 내기 어렵도록(내더라도 인정받기 어렵도록) 학계가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8] https://www.ibric.org/myboard/list.php?Board=isori&PARA11=10


‘보이지 않는 여자들’ 문제는 게임 세계에서도 심각하다. 여성 게이머가 아예 없지는 않다. 오히려 꽤나 많다. 『2019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10~30대 여성의 게임 이용률은 약 79퍼센트에 달한다(약 93퍼센트인 같은 세대 남성에 비하면 낮지만). 그럼에도 게임 세계는 대체로 남성중심적이다. 여성 게이머는 “여자가 이런 게임도 해?”라며 낯선 생물 취급을 당하거나 “여자치곤 잘하네”라는 씁쓸한 ‘칭찬’을 듣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건 여성 게이머가 숱하게 성폭력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청년참여연대에서 실시한 ‘오버워치 내 성차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여성 중 87퍼센트가 게임 내에서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게이머를 성기(보지)로 지칭하면서 창녀 혹은 걸레라고 비하하고, “신음소리 좀 내봐” “속옷 사진 보내 달라” 등등을 요구하며, 신체 사이즈나 연락처를 묻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아예 게임을 그만두는 여성 게이머도 적지 않다(참여연대, 2017.3.6.).


게임 속에서 캐릭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신의 성별을 숨길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적인’ 닉네임이나 말투를 쓰든 음성 채팅을 하든 이러쿵저러쿵 해서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발각되는 경우, 성희롱을 당하는 건 기본이요 난감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자신에게 껄떡대며 대시하는 남성 게이머 때문이다.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어떻게든 이성과 엮여 썸을 타보려는 행동은 대체로 게임의 물을 흐리는 짓으로 비판을 받는데, 이때 여성 게이머 또한 괜히 여자인 걸 드러냈다는 이유로 동시에 손가락질을 당하기 일쑤다.[9]


[9] 게임 세계에서 여성 게이머의 이미지는 이리저리 왜곡되는데 ‘여왕벌’이라는 묘사가 대표적이다. 여자의 환심을 사려는 이성애자 남성 게이머의 마음을 역이용해서 게임 내 물질적 이득을 취하려는 여성 게이머를 여왕벌이라고 한다(여왕벌에게 찝쩍대는 남성들을 ‘일벌’이라고 부른다). 남자를 등쳐먹는다고 알려진 ‘꽃뱀’과 비슷하다.
남성 게이머들은 이런 여왕벌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하소연한다.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자신이 여왕벌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는데 정작 자신에게 돌아온 반응은 미적지근하다며 남자의 ‘순정’을 짓밟힌 것마냥 분노하는 부류, 공정한 게임 세계에서 여왕벌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별의별 혜택을 받는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부류.
그런데 여왕벌이 반드시 여성이라는 법은 없다.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는 게임에서는 좀더 노력하면 아예 다른 플레이어를 속일 수도 있다. 즉, 남성 게이머가 여자인 척하는 것이다(이런 유저를 ‘넷카마’라고 한다). 남성 게이머로서 ‘남자가 좋아할 만한 여자의 이미지’를 쉽게 체현해내는 넷카마는 여성 게이머보다 더욱 훌륭한(?) 여왕벌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진짜 여성 게이머라면 성희롱당할까 걱정하며 자신의 성별을 최대한 숨길 것이다.


“게임을 하는 인구수가 많은데도 여성 유저들은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른바 ‘주류 게이머’들은 우리는 다 같은 게이머이므로 ‘친목질’을 예방하고 커뮤니티 내 분란을 막기 위해 성별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말해왔고, 게임 속 세계에서는 그것이 마치 진리인 양 통용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드러내면 안 되는’ 성별은 ‘여성’일 뿐이다. 게임 속 세계에서 인간의 기본 형태는 ‘남성’이기 때문이다. ‘주류 게이머’ 문화에서는 서로를 ‘형’으로 칭하며, 여성 게이머와 관련된 이슈에서는 여성을 조롱하느라 바쁘다. “남자건 여자건 그냥 각자 게임을 하면 그만이다”라고 겉으로는 중립적인 척 말하지만, 여성이라고 추정되는 순간 왜 여자인 걸 티 내냐는 식으로 반응한다.”(딜루트, 2020, 78쪽)



4. 게임은 문화다?


스티븐 J. 맥나미,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능력주의는 허구다』, 김현정 옮김, 사이, 2015.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국제질병분류(ICD)의 제11차 개정판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등재시키자, 게임 업계를 중심으로 이러한 결정에 반대하는 게이머들은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문화입니다’라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롤을 즐기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돌기도 한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지만, 롤은 질병입니다.” 게이머로서 게임을 가치롭게 여기지만 롤을 플레이하며 겪는 안 좋은 경험들로 인해 이러한 애증의 말이 나왔을 것이다.[10]

 

[10] 여기서 각자 말하는 ‘질병’이 뜻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 WHO가 게임에 의존하는 현상을 의학적으로 병리화하여 ‘질병(장애)’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대해, 게임 업계에서는 게임중독을 예방하겠다는 명목으로 업계에 과한 경제적 규제가 가해지는 것을 우려하여 ‘질병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며, 게이머들은 그러한 규제로 인해 문화가 침체될까 걱정하면서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는 정신병자(정신장애인)냐?’라며 분노하고 있다. 이런 담론에서 질병(장애)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의 은유로 사용되어 유감이다. 이는 실제 질병(특히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폭력적이다(https://brunch.co.kr/@sulsulbooks/6).


사실 ‘게임은 문화다’라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문화예술에 속하는 문학, 미술, 영화 등에 비하여 게임은 코 묻은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둥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자녀 교육에 악영향을 준다는 둥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게이머들은 억울하다. 그래서 게임을 문화로 인정해달라고, 게임을 즐기는 자신들 또한 존중해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게이머들은 주로 게임이 얼마나 이로운지를 설파하고 다닌다. 게임 산업이 얼마나 많은 부를 벌어다주고 있는지, 복합예술로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등등.


하지만 진정으로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선 ‘안 좋은 경험들’ 또한 게임 세계에서 비판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거칠게 말해서 ‘게임의 해악’을 게이머들 스스로 고민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껏 이 해악에 대한 지적은 주로 게임을 잘 알지 못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이른바 ‘부모세대’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고, 그러다 보니 인상비평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글은 청년세대 게이머로서 쓰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게임이 정말로 문화라면 게이머는(나는, 그리고 내 동년배들은) 문화인으로서 얼마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왔는가? “문화라고 해놓고 문화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노도현, 2020.6.6.)라는 비판이 정곡을 찌른다.

 

게임이 능력주의 신화를 강화하는 게 아닐까 성찰하는 것이 이번 반성의 요지다. 앞서 살펴봤듯 게임이 능력주의와 찰떡궁합인데, 게임에 익숙한 청년세대는 업적주의 가치관을 갖고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능력주의는 “서서히 좁아지는 가치 체계가 존재해서 사람들을 가치 등급 질서에 편입시킬 수 있을 때만” 온전하게 구현된다. 그런데 어느 누가 사람의 가치를 함부로 비교하며 “아버지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춘 경비원보다 과학자가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영, 2020, 20쪽)? 즉,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제로섬 게임에서라면 모를까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함부로 등급 정할 수 없으므로, 능력주의는 한계를 맞이한다. 하지만 오늘날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단일한 가치 등급 질서(시장 질서)에 편입되면서 능력주의는 사실상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우리는 능력주의 신화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참고자료     

강연실, 2020.9. 「마주하는 과학책들: 그래도 다시 과학」, 『출판문화』 656호, 126~133쪽.    

「검찰, ‘시험지유출’ 혐의 숙명여고 쌍둥이 실형 구형…檢 “범행 부인”」, 2020.7.17., <동아닷컴>.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0717/102019335/1     

김미희, 2019.6.24. 「돈 목적으로 한 대리게임, 25일부터 불법행위로 처벌」, <게임메카>.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5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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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루트, 2020.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 그냥 게임이나 하고 싶었던 한 유저의 분투기』,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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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이미지 출처: https://youtu.be/-BpgL7V2p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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