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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Jul 01. 2021

편집자만큼 꿀 빨기 좋은 직업이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출판사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6가지 제언

(할말하않)


2018년부터 출판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하여 현재 4년 차를 향해 달리는 나의 연봉은 3000만 원이다. 2019년 북에디터에서 실시된 ‘출판계 연봉 공개’ 비공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3~5년 차 출판인들의 평균 연봉이 대략 이 정도인 것 같다. 나는 많이 받는 편일까? 앞으로 연차를 쌓다 보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익명의 15년 차 마케터는 이런 말을 했다.


혹시라도 돈 벌어서 부모님이나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면 40대가 되기 전에 업종을 변경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타 업계 종사자 대비 2~3천 정도 덜 받아도 소소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겠다는 분들은 괜찮겠죠.


출판 전문 웹진 <출판N>의 2021년 6월호에는 「출판계 세대교체의 현주소 - 젊은 출판인들의 불안과 그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다. 웅진씽크빅 단행본 사업 본부장인 신동해 씨는 3년 차 정도의 젊은 출판인들이 사라지면서 이 업계가 늙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통계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3년 차 편집자와 마케터는 산삼보다 구하기 어렵다”라는 농담이 떠돈 지 오래다. 신동해 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육아휴직 문제 개선, 업계 공통의 편집 매뉴얼 제작, 실적주의적으로 임금체계 개편 등을 제안한다. 흠… 썩 탐탁지 않다.


나의 동년배 편집자들은 왜 이 바닥을 뜨는 걸까? 그들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돈, 명예, 보람. 이 셋 중에 하나만이라도 챙겨주면 된다(셋 다 챙겨주는 회사를 꿈의 직장이라고 한다. 음… 맞다. 그런 건 꿈속에나 존재한다). 그런데 몇 년째 사양산업이라는 소리를 듣는 (단행본) 출판계에 갑자기 돈이 생길 리도 없고, 편집자는 직업 특성상 명예를 얻기도 어려워 보인다(명예는 기본적으로 저자의 몫이니까).


남은 건 보람뿐이다. 젊은 편집자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출판사가 이 보람마저 제대로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직원들이 보람찬 출판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개선했음 좋겠다. 나는 그나마 버티고 있는 젊은 편집자 당사자로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엇무엇을 ‘하자!’가 아닌, 최소한 이것만큼은 ‘하지 말자!’라고 말이다.



(1) 불법 다운로드 소프트웨어 사용하지 말기

한글, 인디자인, 포토샵, 엑셀 등등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구입 또는 업그레이드 해달라고 요구했다가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거 그냥 다운로드하면 돼!” “너무 비싼데…, 다른 방법 없어?”(사실상 안 해주겠다는 뜻). 그러다 보니 ‘정품 인증’이 되지 않은, 아마도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무단으로 받은 듯한 소프트웨어들을 그냥 쓰게 된다.


화딱지가 난다. 저자·번역자·에이전시 등 여러 관계자와 출판 관련 계약을 맺으면서 누구보다도 저작권에 민감한 출판사들이 정작 필수적인 소프트웨어들은 도둑질해서 사용하는 판국이라니. 편집자는 끊임없이 양심에 상처를 입으며 일하거나, 아니면 당당하게 정의로운(?) 도둑이 되어 자기합리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몇몇 구식 프로그램들은 잘 돌아가지도 않고 호환성도 떨어지는 등 문제가 많다. 마땅히 출판사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비용을 편집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2) 일 못한다고 화내지 말기

원고 검토서를 제출했다가 사장에게 된통 화풀이를 당한 적이 있다. 사장은 내가 설정한 예상독자가 “말도 안 된다”고 했고, 나는 왜 말이 안 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왜? 왜? 왜? 마치 압박면접을 하듯 이어진 질문 공세, 결국 사장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고집’을 피운다면서 말이다. “다시 써와!”


왜 이 사람은 화를 낼까? 사장은 스스로에게 화가 난 듯했다. 눈앞에 있는 편집자가 뭔가 틀렸다는 건 직관적으로 알겠는데, 정확히 어디가 틀렸고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그 자리에서 논리적으로 설명(설득)해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낀 것이다. 사장이 언성을 높일수록, 나는 두렵다거나 짜증난다기보다는 이 사람의 빈약한 자아에 안쓰러움만 더욱 커져갔다. 조금 억울하긴 했다. 본인의 미숙함에 대한 분노를 왜 남에게 푸는가?


한편, 출판계의 몇몇 ‘선배’는 후배를 강하게 키우겠다는 명목으로 다소 거칠게 갈구고 볶기도 한다. 과연 이런 군대식 교육법이 (신병 훈련소라면 모를까) 출판사에서 편집자의 업무 역량을 키우기에 바람직한가? 철저한 상명하복 시스템을 따르도록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나, 편집자의 창의력이나 기획력을 늘리는 데는 분명 실패할 것이다.


자녀(학생) 교육을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일부 부모나 선생처럼, 후배 갈굼을 정당화하려는 선배는 대체로 자신이 ‘교육자’라는 사실에 심취해 있다. 강호의 무림고수로부터 혹독한 수련을 받아 절세의 영웅이 탄생한다는 무협지의 시나리오처럼, 자신의 엄격한 ‘교육’으로 걸출한 편집자가 태어나길 바란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갈굼을 당하면 그냥 죽는다. 가끔 강한 편집자가 나올 수는 있겠으나, 그건 제자가 잘나서지 스승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사자가 새끼를 절벽으로 떠밀어 강하게 키운다는 유사과학적 속설을 믿는다면, 편집자 말고 그냥 사자를 기르자. 젊은 편집자들은 누군가의 감정받이가 되기 위해 출판사에 들어오는 게 아니다.



(3) 후배를 아랫것 취급하지 말기

택배로 보낼 신간 증정본을 한창 포장하던 중이었다. 사장이 지나가면서 이런 말을 툭 던졌다. “너도 짬 좀 찼으니까, 이런 일은 아랫사람 시키지 그래?” 여기서 나보다 ‘아랫사람’이래봤자 최근에 들어온 신입 한 명뿐이었다. 자기 책상에서 일을 보던 그분은 갑자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괜히 미안했다.


당시 그 후배님은 막 입사해서 한창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 나는 그분이 사무실 분위기에 적응하고 편집자 업무에 능숙해질 수 있도록, ‘허드렛일’은 억지로라도 내가 맡아서 하려고 했다. 택배 포장과 같은 일들은 편집자에게 숙련도가 요구되지 않기에, 선배로서 딱히 가르칠 필요도, 후배로서는 자세히 배울 필요도 없었다(따라서 괜히 시킬 필요도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신입이 들어오기 전에 내가 막내이던 때, 나는 사장과 함께 저자와 술자리를 가졌다. 저자님은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작은 출판사에서 이래저래 잡일이 많아 바쁘시지 않냐고 물었다.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그런 일은 아랫것들 시키면 되고, 사장은 술이나 마시는 거지.


‘아랫것들’이라는 한마디는 아직도 마음속에 충격으로 남아 있다. 설령 농담이더라도 그런 말을, 심지어는 그런 취급을 당하는 내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도 내뱉다니…. 편집자가 철저한 상명하복 시스템을 따르도록 만들 게 아니라면 그런 말은 삼가야 한다. 쓸데없이 위아래를 따지는 건 어쭙잖은 경력 혹은 나이를 들먹이며 자신이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으스대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만큼 꼴사나운 짓도 없다.



(4) 비즈니스 관계 이상으로 친해지려 들지 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참으로 끔찍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감사한(?) 점은 회식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회식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려온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하는 자리가 아닌 이상, 회식도 편집자에겐 업무의 연장이다(저자가 참석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회식에 참석한 시간만큼을 계산해 야근수당을 주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편집자들은 평소에 각자 다른 업무(원고)를 맡아서 개별적으로 일하기에, 사무실은 조용하고 다소 썰렁하다. 그런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장은 근무 중 편집자끼리 서로의 신변잡사에 관해 이야기하며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구태여 마련했다. 결국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지금 담당한 원고 편집하기도 바쁜데, 요즘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참으로 미안한 소리지만, 사장을 제외하고 직원들끼리는 점심을 같이 먹거나 하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남이가?” 뜨겁게 정을 나누며 함께 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태도를 취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서로 선을 넘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요즘 신 음식이 끌린다고? 뭐, 임신했어?”라는 말을 들은 편집자의 심정을 상상해보자. 어떠한 악의 없이 좀더 친해지려고 던진 ‘넝담~’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성희롱이다. 이런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괜히 서로 얼굴 붉히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로 만난 사이, 일 얘기만 하자.


뜨거운 정보다 중요한 건 차갑지만 단단한 신뢰다.



(5) 저자에게 판매보고 대충 하지 말기

출판계에는 신뢰가 무너질 만한 사건이 계속 있었다. 웨일북 출판사에서 나온 책 『90년생이 온다』을 쓴 임홍택 저자는 출판사의 판매보고 ‘실수’로 인해 종이책 인세 1억 5000만 원을 뒤늦게 받았으며,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하면서 전자책 인세 1억 3000만 원을 받지 못해 결국 출판사에 소송을 걸었다. 아작 출판사에서 나온 책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쓴 장강명 작가는 판매보고 및 인세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협의도 없이 무단으로 오디오북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고 출판사에 항의했으며, 결국 계약을 해지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한국의 출판계에서 이번 사태는 대단히 예외적으로 벌어진 일탈 행위”라며 선을 그었다. 글쎄,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정책연구로 나온 「문학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를 살펴보자. 2020년 1500여 명의 문학 작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약 53퍼센트의 창작자가 인세와 판매량 보고를 정기적으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보고가 미흡함에도, 창작자의 64퍼센트는 출판사에 제대로 요청을 하지 않았다(보고받을 권리가 있는지 몰랐거나, 출판사에 밉보이는 등 불이익을 당할까 봐).


출협의 치졸한 선긋기는 한심스럽다. 출판노조(출판노동유니온)의 조합원으로서 말하자면, 한국의 출판계는 출협이 대표하는 것이 아니며 출협 역시 출판계의 대단히 예외적인 일탈 단체일 뿐이다.


출판 기획은 고되지만 재미도 있다. 제품이 모두 다르고, 일의 시작과 끝이 명확해 보람이 크다.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폼도 좀 잡을 수 있다. 다른 문화 기획에 비해 자본이 적게 들고, 자신의 취향을 좇을 뿐인데 문화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명분까지 챙긴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운동이기 이전에 엄연히 비즈니스다. 나는 출판 기획자들에게 먼저 프로페셔널이 되고 나서 그 다음 문화운동가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거대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기본을 제대로 지켜 달라는 거다. 입금, 교정, 예의 같은 것들을. (장강명, 「[장강명 칼럼] 출판 계약을 해지하며」)



(6)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지 말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이지 투 런, 하드 투 마스터(Easy to learn, hard to master). 나는 출판편집자가 이런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학력불문 누구나 편집자가 될 수 있으나, 편집을 잘해내기는 어렵다. 그 ‘편집’이라는 게 무척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글은 저자가 쓰고, 표지 디자인 및 본문 조판은 디자이너가 하고, 판매는 마케터와 서점이 맡는다. 단순한 오탈자 교정교열은 맞춤법 검사기가 훨씬 잘한다. 편집자는 뭘 할까? 편집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만큼 꿀 빨기 좋은 직업이 또 어디 있을까? 글쓰기의 책임은 저자에게 미루면 된다. 디자인 알못이라면 그냥 디자이너가 하자는 대로 책을 만들면 된다. 책이 잘 안 팔린다면 마케터 탓을 하면 된다.


하지만 다시 말해서, 편집자는 저자·디자이너·마케터의 일을 다 해야 한다. 글을 쓸 줄도 알아야 하고, 디자인 감각을 갖추어야 하며, 홍보·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편집자는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모든 과정에 조금씩 관여하는 제너럴리스트, 하지만 각각의 책임을 완전히 떠맡지는 않은 채 책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존재다.


산삼보다 구하기 어렵다는 3년 차 편집자. 나를 포함해서 주변에는 그런 산삼들이 조금씩 있다. 왜 이들은 출판계에 계속 남아 있을까? 나름의 보람을 찾은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당장 다른 분야에 도전하긴 어렵고 마땅히 돈을 벌 궁리도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일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을 저당잡힌 편집자의 손에서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편집자는 모든 일을 다 잘해야 한다는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책임을 전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떠넘긴 채 한 모금이라도 더 꿀을 빨려고만 할 것이다. 젊은 편집자들에게 최소한 보람이라도 되찾아주어 편집자로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내가 제시한 여섯 가지 개선 사항은 참으로 사소하다. 하지만 그만큼 지금 당장에라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대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기본을 제대로 지켜달라는 거다.



이미지 출처

『뮐러 씨, 임신했어?』, 마르틴 베를레 지음, 장혜경 옮김, 갈매나무, 2018.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양경수 그림, 이소담 옮김, 오우아, 2016.


참고 자료

공병훈 외, 「문학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단독]‘90년생이 온다’ 작가 “인세 못받았다” 소송」, <동아일보>, 2021.6.21.

「문화체육관광부의 균형 잡힌 출판행정을 기대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2021.5.13.

신동해, 「출판계 세대교체의 현주소 ― 젊은 출판인들의 불안과 그 이유」, <출판N>, 2021.6.

「아작출판, 장강명 등 작가들에 인세누락 등 계약위반 사과」, <한겨레>, 2021.5.2.

장강명, 「[장강명 칼럼] 출판 계약을 해지하며」,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출판계 연봉 공개 (익명의 설문지)(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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