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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Oct 22. 2021

‘맞다’는 틀리고 ‘맞는다’가 옳다?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맞춤법 심화 학습

그래, 네 말이 맞다.


교정교열 퀴즈! 위 문장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르게 고치시오. [4점]


자주 틀리는 맞춤법 사례에서 이따금 언급되는 표현이 있으니, 바로 ‘맞다’이다. 한국어 문법을 올바르게 따른다면, 위 문장에서는 ‘맞는다’로 고쳐야 한다. “그래, 네 말이 맞는다.” 통상적인 한국어 사용자라면 ‘맞는다’에 어색함을 느끼리라고 본다. 나도 이 표현이 찝찝하다. 그럼에도 ‘맞는다’가 맞는다. 왜냐하면 ‘맞다’는 동사이고, 동사는 현재형으로 활용될 때 어간에 ‘-ㄴ(는)’이라는 선어말 어미가 붙기 때문이다. 다른 동사와 비교해보면 이 원리가 쉽게 이해된다.


엄마가 학교에 가다(→간다).
강아지가 밥을 먹다(→먹는다).


“그래도 나는 ‘맞다’가 더 자연스럽다고요! ‘맞는다’라는 표현은 나에게 맞지 않아요!” 교정교열을 하다 보면 이렇게 문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느낌을 고집하는 저자를 만나게 된다. 편집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글의 최종 책임자는 저자이니, 틀린 표현이라도 함부로 고칠 수 없다. “하…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 수긍하면서 속으로는 ‘자꾸 그렇게 떼를 쓰시면 저한테 맞습니다’라고 끙끙 앓을밖에. 하지만 몇몇 폭력적인 편집자는 그런 억지를 무시하고 ‘맞는다’로 확 그냥 고쳐버리기도 한다(이는 엄밀히 따져서 저작권 침해니까 하면 안 된다).


왜 우리는 ‘맞다’에 더 끌릴까? 끌리는 데에는 모름지기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부분을 따져보기로 했다. 과연 ‘맞다’는 동사일까? 국어사전(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단어가 “‘그렇다’ 또는 ‘옳다’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사전에 따르면 ‘그렇다’도 ‘옳다’도 모두 형용사다. 이 외에 ‘맞다’의 유의어 ‘정확하다’, ‘합당하다’, ‘적당하다’ 역시 형용사다. 그런데 어째서 ‘맞다’만 동사로 분류되지? 사실은 형용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에 ‘맞다’의 또다른 유의어들이 떠올랐다. ‘상응하다’, ‘일치하다’, ‘부합하다’ 등등…. 아, 얘네들은 동사구나!


‘맞다’의 반대말인 ‘틀리다’는 어떨까? 얘 역시 동사이므로, 문장에서 현재형으로 쓰일 때 ‘틀린다’라고 해야 한다. ‘틀리다’의 유의어 ‘어긋나다’, ‘잘못되다’는 동사지만, ‘그르다’, ‘나쁘다’는 형용사여서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리를 더욱 어지럽게 만드는 표현이 있으니, 바로 ‘다르다’이다. 자주 틀리는 맞춤법 사례 중 하나로, 사람들은 ‘다르다’라고 써야 할 것을 ‘틀리다’라고 쓰곤 한다.


내 생각은 너하고 틀려(→달라)


‘달라’라고 말해야 할 것을 ‘틀려’라고 말하는 건 그저 의견·감정·생김새 따위가 다르기만 해도 무조건 틀렸다고 꾸짖는 정상성 이데올로기의 영향이라는 썰이 있는데, 글쎄…. 어쨌든 ‘틀리다’와 ‘다르다’는 서로 뜻도 다르고 품사도 다르다. ‘틀리다’는 동사이고 ‘다르다’는 형용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둘이 비슷한 단어라고 생각해 오류를 저지른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틀리다’를 ‘다르다’와 같은 형용사로 느낀다는 말이다. 더욱이 ‘틀림’과 ‘다름’에 각각 ‘없다’가 붙어서 ‘맞다’와 비슷한 의미를 띄게 되는 두 단어 ‘틀림없다’와 ‘다름없다’는 모두 형용사다.


단어 안에 ‘맞다’를 포함한 복합어들을 보면 혼란은 배가 된다. ‘알맞다’는 형용사이고, ‘걸맞다’도 형용사다(자주 틀리는 맞춤법! ‘걸맞다’는 형용사이므로 관형형으로 활용할 때 ‘걸맞는’이 아니라 ‘걸맞은’이라고 써야 한다). 하지만 ‘들어맞다’와 ‘빗맞다’는 동사다. 한편 ‘-맞다’는 접미사로서, 성격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또는 어근 뒤에 붙어 형용사를 만들기도 한다(‘궁상맞다’, ‘능글맞다’ 등등)



‘맞다’가 동사이긴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상황에서 쓰이는 것을 보면 사실상 형용사나 다름없다. 그리고 형용사는 동사와 달리 현재형으로 활용될 때 선어말 어미 ‘-ㄴ(는)’이 붙지 않는다. ‘예쁜다’라거나 ‘어린다’라고 쓰지는 않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네 말이 맞는다”보다 “네 말이 맞다”에 더욱 유혹되는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런 걸 생각해봤다. 한 단어 ‘맞다’에 담긴 여러 뜻을 좀더 명확히 분별하여 이를 두 가지 품사로 나누면 어떨까? ①번 맞다: <동사> ‘상응하다, 일치하다, 부합하다’라는 뜻. ②번 맞다: <형용사> ‘그렇다, 옳다, 합당하다’라는 뜻. 이렇게 구분한다면 우리는 구태여 “네 말이 맞다”를 “네 말이 맞는다”라고 교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방금 문장에서는 ②번 형용사 ‘맞다’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한국어에는 한 단어에 여러 뜻이 담긴 다의어가 존재하듯, 한 단어지만 여러 품사를 지닌 다품사어가 있다. ‘밝다’가 대표적인 예다. ‘조명이 밝다’라고 할 때는 불빛이 환하다는 뜻의 형용사지만, ‘날이 밝는다’라고 할 때는 밤이 지나고 새날이 온다는 뜻의 동사다(여기서 전자의 ‘밝다’와 후자의 ‘밝다’는 뜻이 명확히 구분되지만 같은 어원을 지닌 한 단어로 여겨지며, 소리만 우연히 같을 뿐 어원이 다른 ‘동음이의어’와는 구별된다). 마찬가지로 ‘맞다’ 역시 다품사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이런 의문이 든다. 만약 그렇게 ‘맞다’를 동사와 형용사로 엄격히 구분한다면, 이제는 반대로 “네 말이 맞는다”가 틀린 표현이 되고 “네 말이 맞다”가 올바른 표현이 되나? 흠, 그렇지는 않을 듯싶다. “네 말이 맞다”라는 문장은 ②번 ‘맞다’를 사용한 것(“네 말이 옳다”)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①번 ‘맞다’를 사용한 것(“네 말이 [정답과] 일치하다”)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후자라면 “네 말이 맞는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네 말이 옳다”와 “네 말이 [정답과] 일치한다”의 의미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근본적으로 ①번과 ②번 ‘맞다’의 뜻이 아주 비슷하다는 소리다. 어쩌면 지금 나는 하나의 ‘맞다’를 억지로 둘로 쪼개려 하는 건지도 모른다.


둘로 가르기가 조금 거시기하니, 이렇게 생각해보자. ‘맞다’를 단일 품사어(동사)로 보되 형용사로의 활용을 인정해주면 어떨까? 한국어에서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이며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이다. 그런데 몇몇 단어는 과연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칼로 무 베듯 딱 잘라 규정하기가 무척 어렵다. 동사임에도 형용사의 성질(상태성)을 가진 것들이 그렇다. 국어학에서는 그런 단어를 형용성 동사라고 한다.


어떤 동사가 과연 형용성 동사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어떠하냐’라는 질문의 답으로 사용 가능한지를 본다.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다면 “등골이 오싹해!” “삶이 참 피폐하네”라고 답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오싹하다’와 ‘피폐하다’ 모두 형용성 동사다.


둘째, 평서형과 관형형에서 ‘-다, -ㄴ’으로 활용되면서 ‘-는다, -는’으로도 활용되는지 본다. 이는 한 단어가 형용사처럼 활용되면서 동시에 동사처럼도 활용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형용성 동사 ‘닮다’는 “쟤네 둘은 썩 닮은 구석이 있어”라고 형용사처럼 쓰이기도 하고 “사랑하면 닮는다더니”라고 동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한편 동사 중에서 ‘-었다, -ㄴ’으로만 활용되는 것들도 형용성 동사인데, 이를테면 ‘잘생기다’가 그렇다(‘잘생겼다’라고 하지 ‘잘생긴다’라고 쓰진 않는다).


셋째, ‘아주, 매우, 너무’ 같은 ‘정도 부사’의 수식을 받는지 본다. “고구마가 너무 설익었어” “배를 채우기에는 양이 조금 모자란데?”라고 할 때, ‘설익다’와 ‘모자라다’가 형용성 동사다.


이러한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형용성 동사가 있으니, 바로 오늘의 주제어 ‘맞다’이다. 동사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형용사로 봐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애매하고 중간적인 단어를 두고 ‘어쨌든 동사니까 형용사처럼 활용하면 틀렸음!’이라며 문법 규칙을 너무 깐깐하게 적용하는 건 언중의 직관으로 볼 때 부자연스럽다.


나는 ‘맞다’와 ‘맞는다’ 모두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품사를 명확히 따지기 어렵다면, 동사와 형용사를 넘나드는 활용법도 허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텐데, 그분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의 안정성과 명확성을 중시하느냐, 가능성과 직관성을 중시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맞는다’를 권장한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딱딱한 문법 이거 뭐라고 이렇게 공들여 소개하고 있느냐 싶으시겠지만, 자, 이 자리를 빌려 “네 말이 맞다”라는 문장은 틀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하는 바입니다. ‘맞다’는 동사니까 위 설명에 따르면 ‘네 말이 맞는다”라고 써야 하는 거죠. “그 말이 맞다면”이 아니라 “그 말이 맞는다면”이 맞고요. 어때요, 꽤 충격적이죠?
(『책 쓰자면 맞춤법』 232쪽)


‘다음 중 (  ) 안에 알맞은/알맞는 것은?’에서 ‘알맞다’는 형용사이기 때문에 ‘알맞은’이라고 써야 한다. ‘걸맞다’도 형용사이므로 ‘걸맞은’이라고 써야 한다. 그러나 ‘맞다’는 동사이므로 ‘맞는’이라고 써야 맞는다. 비슷한 뜻이라도 ‘고맙다’는 형용사이고, ‘감사하다’는 동사이자 형용사다. 그래서 ‘고맙는다’는 말이 안 되지만, ‘감사한다’는 말이 된다. 예외가 있다. 골칫거리인 ‘없다’는 형용사지만, ‘없는’이라고 동사처럼 쓰지, ‘없은’이라고 쓰지 않는다.
(『말과 글을 살리는 문법의 힘』 211쪽)




참고자료

김진해, 「[말글살이] ‘맞다’와 ‘맞는다’」, 〈한겨레〉

국립국어원, 〈쉼표, 마침표.〉, 2016.11.22.

도원영, 『국어 형용성 동사 연구』, 태학사, 2008.

박태하, 『책 쓰자면 맞춤법』 제2판(8쇄), 엑스북스, 2020.

정재윤, 『말과 글을 살리는 문법의 힘』, 시대의창,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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