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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미 Jan 27. 2024

무빈소로 엄마를 보내고.

빈소는 차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형제도 없을뿐더러 부모님의 가족들도 다 돌아가신 상태라 엄마를 기억하는 분들은 거의 계시지 않거든요. 저희 가족과 몇몇 요양원 식구들 외에는 말입니다.


시아버지, 친정아버지를 보낼 때만 해도 장례를 치르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성당교우분들이 오셔서 많은 기도를 해 주셨고 발인하고 화장하고 납골당에 가는 길까지 동행을 해 주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후 코로나19가 왔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 인구구조 변화도 한몫해서 장례일도 1일, 2일장, 무빈소로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입관할 때는 마지막 가는 엄마 모습에 저의 남편도 아들 둘도 할머니와 대화하며 이별을 잘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입관하고 다음날 발인을 하는데 화장하는 곳이 부족해서인지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보내고 그다음 날에 발인을 했습니다. 결국 4일장을 치르게 된 것이지요.


화장터로 가는 길엔 대형버스에 엄마, 저희 가족 4명과 운전기사분이 동행했습니다. 마지막 엄마랑 함께 가는 길이었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창밖만 쳐다보았습니다.


화장하는 시간까지는 2시간 정도가 걸리더군요. 가족들은 그 사이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이름이 불려지고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한 줌의 재가 된 엄마를 납골함에 모시고 다시 엄마가 묻힐 공원으로 이동을 했어요.


엄마가 묻힐 곳은 '꽃빛 공원'이라는 곳이었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잠들어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공원에 일하시는 분이 엄마 모실 곳을 이미 준비해 두었기에 바로 엄마를 모실 수 있었어요. 그러는 사이에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제 다 끝났다.'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허무함도 후련함도 그 무어라 할 수 없는 그냥 평온한 마음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무빈소로 장례를 치르는 동안 시끌벅적함도 없었고 처음과 끝이 너무나도 조용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절차를 안 한 것도 아니지요. 그냥 담담하게 엄마를 보내드렸습니다. 

저는 천주교신자이기에 엄마를 위한 연미사를 한 달간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저의 마음은 너무나도 평안합니다.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잘했다 하실 거예요. 무빈소로 엄마 장례를 치렀지만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이런 장례문화가 많이 이루어질 것 같네요. 


오명옥 젬마 여사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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