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잊혀지는 죽음에 대하여
어떤 이의 죽음이, 특히나 그것이 사회적 타살일 경우 부고를 접하는 방식에 있어 나는 사회적 환멸을 느낀다. 글로 쓸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생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열한자와 함께 대학교 현수막에 걸려져 있는 걸 보면 무척이나 기괴한 느낌이 든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낯선이가 낯선이의 죽음을 바람에 나부끼는 천조각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인간적이지 않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를 놓고 한평생을 고민한다. 그 해답을 얻자고 책을 읽는 이도 있고 돈을 내고 강연을 들으러 다니는 이도 있으며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죽느냐'를 가지고 한평생 고민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세상에 유의미한 죽음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늙고 병들어 죽기밖에 더하는가. 그것이 정의든 사랑이든 내 아버지의 복수든 어느것 하나 더해져 가치롭게 죽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대의를 위해 누군가는 죽는다. 한 청년이 몸을 불살랐고 한 대학교수가 투신을 하였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이 고작 몇안되는 인터넷 부고 기사와 연예인 이름으로 가득 찬 실시간 검색어라는 것이 너무 분통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것인가. 죽고자 마음먹은 뜻이 그의 사후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헛된 죽음일까. 아닐까.
죽음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 죽음으로 인해 변하는 것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헷갈리는 밤이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