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찬가
스페인 내전은 1936년에 시작되어 1939년에
끝났습니다. 국민투표에 의해 수립된 좌파 연합
정권 인민 전선정부 (제 2공화국)와 프랑코가 이끄는
군부 세력 간의 내전으로 프랑코 군부의 승리로
끝났지요.
스페인의 제2공화국은 1931년 좌파 정권으로
부터 시작되었지만 2년 마다 치러진 선거에 의해
우파로 바뀌었다가 또 다시 좌파로 바뀌었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개혁정책은 실행될 틈도
없이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스페인은 19세기 세계에 존재하였던
온갖 이념들을 추종하는 여러 정당들이
공존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이념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전체주의
사회민주주의 등이었지요. 오래 지속된
갈등으로 사람들은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함하고 제거하는
일이 일상이 될 정도로 분열은 격렬해졌습니다.
인민전선정부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의
연합정권이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극우 정당인
팔랑헤당과 우파 부르주아가 있었습니다.
프랑코가 지휘하는 쿠데타군은 아프리카의 스페인
주둔군과 모로코 용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국내의 우파세력의 지지에 더하여 독일 나치 정권과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이 무기와 군함, 전투기
군사를 지원했습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출처 위키백과
프랑코군의 공격에 인민전선 정부는
마드리드를 떠나 발렌시아로 피신했고,
마드리드는 미아하 장군이 남아 쿠데타군에게
계속 저항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은
국제연맹을 통해 불간섭 조약을 맺고
스페인 내전에 대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
대신 물자 조달만 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지요. 다만 소련은
인민전선 정부에 무기와 군사를 지원했습니다.
(이것은 파시즘에 대항한다는명분 속에 좌파
연합 정권에서 소련 공산주의가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 인민전선정부를 돕기 위한
의용군이 조직되었습니다. 이들 국제여단은
53개국에서 모인 약 3만 2천여명으로 이루어진
반 파시즘 세력으로, 다양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과 같은 지식인도 많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카탈루냐 찬가"에서 제각기 녹여내었습니다.
조지 오웰이 르포형식으로 쓴 "카탈루냐 찬가"
앞부분에서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조지 오웰이 목격한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조지 오웰 출처 위키백과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도시에 들어간 건 그때가 처음이다.....건물마다 빨간 깃발이나, 검은색과 빨간색을 뒤섞은 무정부주의 깃발이 휘날렸다. 담벼락마다 소련 국기나 혁명 정당 머리글자가 달라붙었다. 교회마다 내부는 거의 박살 나고, 성상은 불에 탔다. ....상점마다 카페마다 '공동 소유'라고 쓴 종이를 붙였다. ....매장 직원이나 일군은 손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동등한 인간답게 행동했다. 비굴한 어투나 격식을 차린 말투는 단번에 사라졌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군중이었다. 겉으로 볼 때 부유한 계층은 실질적으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감동적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고 마음에 안드는 측면도 있지만, 나는 싸워서 지킬만한 가치가 충분한 상황이라고 단번에 확신했다.
카탈루냐 찬가 p9-10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공화파 수병. 출처 위키 백과
전력이 우세했던 쿠데타군은 1937년 북부의
바스크 지방과 아스투리아스 지방을 점령하였고
1938년 12월에는 카탈루냐 지방을 공격하였습니다.
거듭되는 패배로 인민전선 내에서는 공산당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분열하여 서로 총을 겨누게 됩니다.
다음 인용문은 조지 오웰이 처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받았던 신선한 감동이 실망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양극단이다. ...공산주의는 중앙 집권과 효율성을 늘 강조하고, 무정부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
전쟁에서 나타나는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쟁에 사용하는 모든 선전물을,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를, 만들어내는 게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이번 전쟁에서 무엇보다 우울한 건, 좌익 언론 역시 모든 점에서 우익 언론 만큼 사건을 조작해서 보도하는 사악한 집단이란 사실을 내가 깨달았다는 거다. ....내전이 발발하는 순간에 우익과 좌익 신문은 똥통에 그대로 뛰어들었다. ....기자들은 제일 지독한 욕설을 아끼다가 적군에게 사용하는게 일반인데, 이번 전쟁에서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공산당 측 기자든 통일노동자당 측 기자든 서로를 파시스트 이상으로 가혹하게 비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 .... 그들이 혁명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카탈루냐 찬가 p 73, 77, 78
1939년 3월 쿠데타군은 마침내 마드리드 까지
점령하였고 인민전선정부는 프랑스로
망명하였습니다.
3년간의 내전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내전이 끝난후에도
승리한 쿠데타군에 의한 숙청과 무자비한
보복이 자행되었습니다.
승리를 거머쥔 프랑코는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고, 독재정권은 1975년 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내전 기간동안 막대한 군사력을 제공하여
프랑코 군을 지원하였던 독일은
같은 해인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스페인 내전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