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시온 Aug 04. 2022

나의 해방일지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사람 감옥에서 해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초반은 답답하고 우울하고 억울하다.

기정이의 대사처럼, 사람에 치이는 일을 하는

현대인 모두는 "쉬는 말이 하고 싶을거다"

해방클럽의 해방 지침은 "행복한 척하지 않기.

불행한 척 하지 않기. 자신에게 정직하기.

충고하지 않는다. 조언하지 않는다." 이다.



같이 있되, 혼자 있는 것 같은 이러한

자리 배치는 자유롭다. 쉼을 준다.

부딪치는 시선의 어색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마주한 공간 속에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 각자 앞에 보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배려하여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삼남매와 엄마, 구씨는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해방되었다.



엄마의 해방

다 큰 자식 셋과 말없이 일만하는 남편을 건사하느라

매일이 노동이다. 가사일, 농사일, 싱크대 만드는 남편을

보조하는 일. 365일 쉬는 날이 없다.

무릎이 아파오고, 땀이 비오 듯 흐른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큰 딸 기정이는

애 딸린 이혼남을 사랑하게 되었다.

탐탁치 않았으나 멀찌감치서 사윗감을

보고는 너무 좋아서 밥 값을 계산해 주고 나간다.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났다.

엄마의 마음은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표현을 안하는 작은 딸 미정이는 사랑하던

사람 구씨를 떠나 보냈다. 식구들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던 딸이, 울면서 밤거리를

헤매더라는 이웃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이웃은 미정이가 우는 이유를 "키우던 개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복감에 가벼웠던 엄마의 어깨는 이내 작은 딸의

슬픔을 떠안고 걸어간다.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엄마의 뒷모습은 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그리고 엄마는 늘 하던데로 밥을 안치고

잠시 방에 누웠다. 엄마는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죽음으로서 해방되었다.



기정의 해방


기정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불평불만이 많다.

그런데 그녀의 불평불만은 모두 공감이 간다.

그녀는 자기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도

잘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 솔직하다.


그리고 사랑은 밀고 당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오롯이 사랑하고 편하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태훈을 쉬게 해 준다.

기정이가 결혼 감옥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마음

조렸다. 다행히도 기정이는 심통 사나운 시누이와

까칠하게 눈치주는 전처의 자식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정이와 태훈은 각자의 삶을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애틋하고, 편하게 쉬게 하는

그런 존재가 되면 되는 거다.

안도감과 해방감이 느껴졌다.



창희의 해방

창희는 사람을 좋아한다. 따뜻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창희 같지는 않다.



친절한 창희에게 고객은 자신의 신변잡기로

장시간 통화를 하고, 직장 동료는 시시때때로

수다를 떨며 창희를 이용하려 한다.

8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대출을 받아

편의점을 차렸다. 성실히 일하여 대출을

다갚고 새로이 사업을 확장하려는 찰나,

여자친구의 전애인이 임종하는 자리에

홀로 있게 되었다. 임종을 지키느라

사업계획은 어그러졌지만, 그래도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이 있어줄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임종도 혼자 지켰다.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관한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운명처럼 잘못 들어간 강의실은

장례지도사반이었다. 실수로 잘못 들어간

것을 깨닫고 나오려고하는 순간, 다시

자리에 앉고 교재를 편다.

창희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표정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미정과 구씨의 해방

미정은 잘 표현하지 않는다.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외국으로 가버린

전남자친구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고, 회사의 상사는 미정이만 괴롭히기로

작정한 사람같다. 그는 밤새워 디자인해

놓은 미정의 카드디자인에 빨간줄을 그으며

면박을 준다. 챙겨주는 줄 알았던 동료는

뒷통수를 친다. 그런데도 회사와 동료들은

자꾸 즐겁게 살라고 강요한다. 회식을 하라,

동아리 활동을 하라, 네일아트를 하라 등등.

하지만 미정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수와 다른 1인이다.

다수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속마음은 전쟁터이고, 억울하고, 허전하다.

자신은 한번도 채워진 적이 없다.




구씨를 만났다. 추앙하기로 했다.

추앙은 상대가 누구인지, 뭘 하던 사람인지

물어보지 않고 오롯이 상대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구씨의 이름도 과거도 묻지 않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충고도 하지 않는다.


구씨는 어둠과 폭력의 세상에서 나와

잠시 도피중이다. 그는 자신과 들개를

동일시 한다. 사납고, 공격적이며, 늘

경계태세이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과거의 모든 인간들의 환영에서

도피하려고 늘 술을 마신다.




미정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이 두려워 다시

어둠과 폭력의 감옥으로 돌아간 구씨를

원망하지 않고 마음 속 성역으로 두기로 했다.

그래서 감기한번 걸리지 않기를 바랬다.

그는 추앙의 대상이니까.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그 많은

인간들을 증오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증명하려고 살았던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그것을 깨달은 순간, 관대해 졌다.


구씨는 알콜 중독으로 인해 요일을 까먹고,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에겐 말할 상대가

필요했다. 미정은 그에게 2초, 3초 설레는

순간을 모아 하루에 5분만

설레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환영을 보며

환대하라고 말한다.


구씨는 미정과 함께 한발짝, 한발짝

해방되기로 한다. 구씨가 "염미정"하고

크게 부르면 미정이는 그게 좋다고 말한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내 평생 두 번본 유일한 드라마다.

주옥 같은 대사가, 꼭 내마음을 대변한 것

같아서 두번을 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사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