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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Jun 16. 2023

딸들에게 1


올해 들어 길을 잃는 꿈을 자주 꾸었어.

나는 어느 낯선 장소에 서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가슴이 쿵 내려 앉아.

몹시도 당황스러운 그 장소는

대개는 어둡고, 고층빌딩이 많이 서있으며,

내게 익숙치 않은 최첨단의 교통수단들이 있는

경우가 많았어. 나 이외의 사람들은 익숙하게

탈 것에 올라타지만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지.

치매에 걸려 집을 잃어버리는 노인의 심정이

딱 그런 것이 아닐까 해.


내가 그런 꿈을 자주 꾸는 이유는

아마 방황하는 내 심리가 반영된 거겠지.

지금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중이라는 것.

60대에 들어서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의외이지 않니?

하지만 삶은 항상 어떻게 해야 하나,

뭘 해야 할까하는 고민의 연속인 것 같아.

그런데 60대에 하는 고민은 이제 마지막 고민이야.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운이 남아있는

인생의 마지막 장을 설계하는 시점이잖아.

그렇게 방황하던 중에 너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생전 처음 정밀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지.

그리고 췌장엔 종양이 있고 폐에 결절이 있다는

결과를 받게 되었어. 그 다음 수순은 종양과 결절이

암인지를 알기 위한 여러가지 검사를 하기 위해

입원하는 것이었어. 두 손엔 주사바늘이 꽂히고

조영제를 비롯한 알 수 없는 약물들이

투여되고 중환자 처럼 침대에 실리어

이리 저리 검사실로 이동했어.

아무런 증상이 없이 병원에 들어가서

환자가 된 듯 입원했다가 5일만에 퇴원했지.

그리고 이후 일주일간 조직검사의

후유증으로 이전의 생활로 복귀하지 못했어.

입원과 퇴원 그리고 일주일.

그동안 너희들과 아빠는 나를 많이 걱정하고

세심하게 돌봐주었지. 그래서 외롭진 않았어.

하지만 아픈 곳이 없는데, 일상 생활이

멈췄고, 혹시 암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나를 지배하여 우울했어.


내일이면 결과가 나오는 날, 결과가 무엇이 되든

난 이제 우울의 늪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잡고 방황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그 실마리는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야.

지금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건강하고

자유로운 시기야. 아빠와의 관계도 가장 편안하고.

이 시기를 병원에서 허비하고 싶지 않아.

병원은 아프면 갈께.

아프면 이미 늦었다고들 하지만,

자연이 허락한 운명 만큼만 살다 가고 싶어.

물론 아프지 않도록 노력은 할거야.

좋은 음식, 절제하는 생활을 통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감을 만끽하고 싶어.

너희들도 알겠지만, 난 그동안 즐기면서

살아본 적이 없어. 이젠 내 사정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것하고, 가고 싶은 곳 가보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살아보고 싶어.

그러려면 너무 늙지 않은 지금이 딱 좋아.

다행히도 이젠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딜 가고 싶은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안다는 것이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야. 그것이 나를 가장 활력있고 보람있게

만드는 일이니까.

그리고 국내의 여러 아름다운 곳을 가보고 싶어.

음식은 내가 사온 재료들로 내가 만든 음식들이

가장 좋아. 요즘은 아빠가 요리하는 것을 많이

도와주면서 배우려 해서 놀이하는 것 처럼

즐겁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단다.


나와의 이별이 두려워 너희들이 그러는 거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꼭 이별하게 되어있어. 그게 빠르면

충격은 크겠지만, 지리한 이별의 과정을 겪는 것

보다는 나을거야. 내가 경제적 활동도 못하고

의미없이 살면서,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다면,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너희들을 힘들게 할거야. 분명.

그러니까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하고 누릴 수

있도록 응원해 주면 가장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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