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인천행)07:00 코리아프린세스호는 해상의 짙은 안개로 8시 30분까지 대기입니다.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려고속훼리’
샌드위치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배에 올랐다. 아쉽지도 지겹지도 않은 2박 3일 여행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 출발하기를 기다린 지 이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울리는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선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모든 승객은 배에서 내려 대합실에서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이른 아침 짐을 챙겨 용기포 신항에 나왔을 때, 안개도 걷히고 바람도 없었다. 날씨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배에서 내려 한두 시간 기다리면 정상적으로 백령도를 떠날 것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을 예상하지도 못한 채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어 댔다. 배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상황이 거꾸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날라 온 문자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4/6(인천행)10시까지 대기 중이던 코리아프린세스호는 해상의 짙은 안개로 운항이 통제되었습니다. 예매하신 표는 4/7(인천행)07:00 코리아프린세스호로 자동 순연처리 됩니다.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려고속훼리’
백령도에 들어와 사나흘 나가지 못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배를 탔다가도 다시 돌아와 짐 쌌던 숙소에서 며칠씩 지내는 일도 종종 있다고 김반장은 이야기했었다. 농담처럼 들었던 그 말이 우리 앞에 현실이 되어 떡하니 나타났다. 섬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물에 갇힌 물고기 신세로 전락했다.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숙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뱃멀미약까지 먹었는데 이게 뭐냐며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늘도 못 나간다고 하는 말에 직원은 김포에 가는 길인데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고 전해왔다. 어제 온종일 백령도를 뒤덮던 안개가 인천 쪽으로 밀려간 것이었다.
빨강 까나리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김반장은 당연히 벌어질 일이 벌어졌다는 얼굴로 버스 문을 열어젖혔다. 이른 아침에 들고 나갔던 반건조 우럭이 담겨있는 하얀 비닐봉지를 숙소 냉장창고에 집어넣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호실에 들어서자마자 메고 있던 가방을 방바닥에 벗어 던졌다. 이 순간부터 행색은 관광객이나 실제로는 배가 뜰 때까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버텨야 하는 난민이 된 것이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떨어진 사람은 백령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으라는 회장의 말은 우리가 위급 상황에 부닥쳤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버텨야 할까? 숙소를 떠난 지 반나절도 안 돼 제자리로 돌아온 난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숙소 근처 편의점에 다녀온 친구는 내일모레까지 나가는 것은 장담할 수 없고, 글피 아니면 그다음 날에나 갈 수 있을 거라고 편의점 점원이 이야기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일 나간다고 해도 3박 4일인데,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어느새 해는 중천에 걸렸다. 먹는 것이라도 제대로 먹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령도 냉면을 먹기로 하고 김반장이 알려준 숙소 인근 식당으로 걸어갔다. 이름이 알려진 냉면집은 차를 타고 갈 거리에 있어서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짙은 안개가 지나가면서 남겨 논 옅은 연무를 뚫고 봄 햇살이 머리 위로 내려왔다. 이름도 간판도 없는 현지인이 많이 찾는다는 냉면집으로 들어갔다. 이름도 생소한 반냉면을 시켰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중간쯤 되는 물냉면도, 비빔냉면도 아닌 서로 섞어 놓은 냉면이었다. 예전에 먹어 본 백령도 맛집 냉면과 비슷한 맛이었다.
백령도 냉면은 황해도에서 피난 나와 백령도에 정착한 실향민이 만들었다. 황해도 냉면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백령도에서 나는 메밀로 면을 만들기 때문에 식감이 다른 지방에서 먹는 냉면과 국수의 중간쯤으로 춘천 막국수와 비슷했다. 한우 잡뼈와 돼지 뼈를 푹 고아 우려낸 육수에 백령도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하고, 들기름을 뿌려 맛을 낸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백령도의 토속 음식은 냉면, 메밀 칼국수, 짠지떡으로 알려져 있다. 메밀 칼국수와 짠지떡은 어제 점심에 맛보았다. 짠지떡은 찹쌀가루와 메밀가루로 반죽한 떡에 신김치를 다지고 홍합이나 굴을 넣어 만든다. 찹쌀가루가 들어가 피가 쫄깃하다. 그래서 떡이라 부른다고 한다. 황해도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황해도식 만두라고 할 수 있다. 백령도 냉면까지 먹었으니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를 배 출항이 연기된 덕택에 경험했다.
점심을 먹고 나자 딱히 할 소일거리가 없었다. 우리를 태우고 갈 차도 없고, 구경하러 갈 곳도 떠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숙소에서 한나절을 뒹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숙소 옆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서너 명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는 그 뒤를 따라붙었다. 동쪽으로 한참을 가고 나서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백령도 주민이 산책길로 많이 이용하는 해안 길이란 사실을 알았다. 봄기운을 만끽하며 유유자적 걷다 보니 선두와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빨리 걸으라고 재촉하는 손짓도, 뒤처진 나를 뒤돌아보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일정에 맞춰 급하게 걸을 일도 땀을 흘리며 힘들게 걸을 필요가 없는 탓이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해안 길은 햇볕도 기온도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철책선 너머로 거무스름한 해변이 보였다, 제주도에서 보던 현무암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백령도 다른 지역에선 보지 못한 색다른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현무암 해변에서 무엇인가를 채취하는 주민도 간간이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해변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어벽 사잇길이 나타났다. 예전 서울 근교에 있던 대전차 방어선 사이에 난 길처럼 생겼다. 줄곧 앞장서서 걷던 친구들이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뒤처져 있던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으며 노닥거리는 모습이었다.
점박이물범 최대 서식지라는 안내판에서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현무암 해변 건너에 물범바위가 보였다. 물범은 보이지 않았다. 물범의 주요 서식지는 두무진 해안 주변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었다. 파도가 잔잔하고 철책선으로 사람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어 물범이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쪽으로 난 산책길 옆으로는 조개무지가 널려 있었다. 현무암 해변에 굴과 조개류가 많이 있어 예전부터 채취한 흔적이었다. 철책선과 지뢰 표시만 없다면 제주도의 한 지역이라고 해도 믿을 만하겠다.
앞장서서 걷던 친구가 멀리 보이는 산 위 건물을 가리키며 그곳까지 가자고 말을 건넸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으니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뒤따라오던 두어 명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을 일이 없는 곳이기에 알아서 따라오든 말든 무시해버렸다. 언덕을 오르는 것이 힘에 부쳐 숙소로 방향을 돌렸을 것이다.
거리가 표시된 이정표를 보고 산 위에 있는 건물이 끝섬 전망대임을 알았다. 용기포 신항 옆이었다. 끝섬 전망대는 백령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용기원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 용기포 신항과 사곶해변, 하늬해변, 대청도와 소청도, 북쪽으로는 황해도 장연군이 보였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서자 나와 동년배이거나 한두 해 연배인 듯한 이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에서 안내와 설명을 담당하는 해설사였다. 내 고향도 인천이라고 말을 건네며, 이곳과 인연이 있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처럼 둘러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믹스커피가 해설사의 마음씨처럼 달콤했다. 한 잔의 믹스커피와 해설사의 마음이 어우러져 우리에게 다가왔다. 두어 시간 걷느라 소진한 에너지가 금세 채워지는 듯했다. 전장군이 짓궂게 이름을 묻고, 말끝마다 ‘ㅇㅇ씨’ 라고 부르는 호칭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해는 아직도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백령도 해삼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할 곳을 추천해 달라고 전장군과 이름이 같은 최군이 해설사에게 부탁했다. 가까운 곳에는 그런 집이 없다며 두무진 포구에 아는 집이 있다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인천에서 배가 들어오지 않는 날엔 대부분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다고 했다.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가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택시를 불러 주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늘 타던 승용차 택시가 아니라 대형 승합차 택시였다. 우리 일행 일곱 명이 타기에 충분했다. 전망대를 떠나기 전 단체 기념사진을 찍어준다며 우리를 전망대 출입문 앞에 세웠다. 해설사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올랐다. 백령도 특산 해삼에 막걸리를 먹으러 두무진으로 향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이었다.
택시 기사는 까나리 여행사 이야기부터, 이곳의 텃세까지 알지 못했던 비밀을 하나둘 풀어냈다. 김반장은 빨강 버스 주인 겸 운전사, 가이드, 특산품 판매 점원, 숙소 관리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관광객이 많지 않은 이곳에서 밥벌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해삼을 안주로 막걸리를 먹으면서 오늘 여기 온 것을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다. 누군 사주고 누군 안 사줬다는 불만에 대한 최군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었다. 모두 입을 닫으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로 남는 것이었다. 식당 밖으로 보이는 해가 뉘엿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화창해서 내일은 틀림없이 나갈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술기운에 하는 허튼 말이 아니었다. 택시 기사도 내일 아침 배가 출항할 거라며 우리 말에 힘을 보탰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온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방으로 들어왔다. 저녁은 색다른 것을 먹자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아귀찜이나 냉면을 먹으러 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진촌에 하나밖에 없는 중국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해산물이 들어간 요리가 맛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식당에 들어서는 대로 원탁에 둘러앉았다. 가격표를 보니 도시와 차이가 없었다. 해산물이 들어가는 잡탕밥을 시켰다. 테이블에 하나씩 탕수육도 주문했다. 맛이나 모양이나 육지와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저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은 이야기로는 맛은 무난했으나, 가격이 비싸고, 서비스 정신도 부족했다는 평가였다. 독점의 폐해가 이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기름진 음식으로 배는 잔뜩 불렀지만, 초저녁이었다.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 뒹굴다가 잠이 들면 밤새 속이 부대낄 것이 뻔했다. 면사무소 옆으로 난 길 위로 키가 큰 나무와 교회표시가 보였다. 소화도 시킬 겸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회장이 따라붙었다. 말없이 앞 만 보고 천천히 걸었다.
단아하게 생긴 하얀 건물이 보였다. 백령천주교회가 나타났다. 미사를 드리러 올라오는 교인,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교인이 눈에 띄었다. 성당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 7시 미사 일정이 적혀 있었다. 미사 전이라 성당 안에는 교인이 많지 않았다.
서양 문물이 서해를 건너 들어온 것처럼 천주교도 서해 바닷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바닷길을 개척한 김대건 신부는 백령도를 통해 17명의 신부를 밀입국시켰다. 이런 이유로 이 성당에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졌고, 천주교 신자의 성지 순례 코스가 되었다.
성당을 지나 예쁘게 지어진 건물로 들어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불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백령 청소년문화의 집이었다. 키가 훤칠한 사람이 나와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이곳이 너무 예뻐 구경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교실마다 청소년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수업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학생이 없어서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천천히 숙소로 내려왔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상쾌했다. 하늘엔 별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