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mask)
나는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2021년 12월 31일 퇴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은행에 취직하여, 한 직장에서 34년 10개월을 근무했다. 마지막 1년은 심적으로 힘들었다. 퇴직 이후에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한 조바심은, 마치 하루하루 시험날은 다가오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는 학생의 마음 같았다. 게다가 은행이라는 곳이 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빈둥거리며 지낼 수는 있는 곳이 아니다. 실적에 대한 압박감은 기본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매 순간 손님들의 감정을 살펴야 했고, 그들의 민원에 지친 직원들의 힘든 마음도 다독여야 했다. 또 2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 사태는 외부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은행 특성상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런 여러 상황이 맞물리면서 출근하는 것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그런 날들이 끝났다.
생각해 보면 은행에 취직한 것이나 거기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의 추천으로 은행 입사 시험에 합격을 했다. 대학 진학과 직장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렵다 보니 대학을 포기하고 은행이라는 직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에 퇴직하고 싶었던 적도 많이 있었고 ‘이 직업이 내게 맞나?’ 하는 의문도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특별한 기술과 배움이 없었던 나는 은행이라는 직장에 오랜 시간을 거쳐 서서히 적응되었다.
퇴직 3, 4개월 전부터 ‘나는 나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화두처럼 맴돌았다. 실적을 위해서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야 했지만 내성적이고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성향의 나에게는 그것이 참 어려웠다. 나의 성격과 감정보다 손님들의 성격과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하는 일은 더 힘들었다. 집에서는 아버지, 남편, 아들, 동생으로서 직장 내에서는 상사, 부하, 동료 직원으로서, 손님들에게는 은행의 대표자 및 관리자로서 나는 한 사람이었지만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퇴직 무렵에는 한계에 다다랐다. 정신분석학자 융은 나의 이런 여러 가지 역할을 ‘페르소나’라고 했다. 배우가 주어진 배역에 따라 그 역할을 수행하듯이 나는 내가 선택했던 직업과 그에 따른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했던 배우였다.
지난 시간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나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집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도 서서히 줄어갈 것이고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역할도 점점 적어질 것이다. 나의 역할이 줄어든 만큼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지? 이것이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것일까?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일까?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은 잠시 미뤄두고 이런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살 것이다.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배우가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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