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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Apr 27. 2024

교실에 나타난 전두광


서나~쌤 ㅠ


점심시간.

작년 담임 했던 아이들이 멀리서 알아보고 뛰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마중을 나가니 지아(가명)는 곧 떨어질 것 같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뭔 일이여~'하며 안아서 등을 쓸어주니 참았던 방울은 폭포수가 되어버렸다.

우느라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할 아이를 이끌어 이목 없는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이동했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생긴 문제라면 교사와 함께 우는 모습을 상대 아이가 보게 되면 다시 오해가 생긴다.

다툼이 커질 것을 막아야 했다.

이동하는 사이 지아는 조금 진정이 된 모양.

차분히 억울한 마음을 쏟아냈다.

그니깐요 선생님, 체육대회 입장곡을 고르고 있었는데요...


아, 시작이구나.

여기까지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 •́ ̯•。̀ )

바야흐로 체육대회 시즌.

이때가 되면 아이들의 다툼이 풍년이다.

체육대회에 입을 반티 결정, 종목마다 선수 선발, 연습 시간 정하기 연습 방법 정하기, 체육대회 응원도구 제작을 하느냐 마느냐까지.

무언가를 결정하는 동안 모든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다른 사람 의견은 듣지 않는다.

이중 몇몇은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그걸 자기를 공격한다고 느끼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기분 나쁘다는 걸 팍팍 티낸다.

문제는 이 과정을 이끌어야 하는 반 대표 아이들이 큰 타격을 입는 다는 것.

지아는 현재 자기네반 학급 회장이다.

지아도 지금 2학년 반에서 체육대회 각 반별로 진행되는 입장곡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학급 회의 시간에 아이들 의견을 받아 입장곡을 추렸고 그 중 다수결로 입장곡이 선정되었단다.

그런데 결정된 곡이 맘에 들지 않았던 아이 몇몇이 주말 내내 반톡에서 곡을 바꿔야 한다고 계속 톡을 남겼다는 것.

반톡에서 별 반응이 없으니 그 다음에는 지아에게 개인톡으로 결정을 원점으로 돌려내라고 떼를 썼다는 것이다.

이에 지아는 이미 결정된 번복할 없다고 말을 했고 그럼에도 그 친구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욕설이나 심각한 비난은 없었기 때문에 학폭 수준은 아니었다. )

그러다 월요일 아침 사단이 벌어졌다.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지아가 교실을 비운 사이.

입장곡을 바꾸고 싶다고 끝까지 주장하던 아이가 교실에 남은 아이들만 데리고 입장곡을 바꾸는 안건(?)을 아이들에게 던졌고, 다들 어리둥절하며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하는 사이 '입장곡 000이걸로 바꾸자. 반대하는 사람? 없지? 그럼 결정된거다.' 하고는 스리슬쩍, 불법으로 자기 의견을 통과(?) 시켰다는 것이다.

이것도 절차를 밞았으며,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다수결 원칙(?)을 적용했으니 상관없다며 당당했다고 한다.

지아는 황당해서 담임선생님께 말했으나 입장곡은 니네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관여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지아는 요며칠 입장곡 하나 때문에 멘탈이 털털 탈린 상태였다.

다시 문제를 일으킨 아이를 찾아가 과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하고 감정싸움할 에너지가 없는 상태였다.


당장 그 녀석을 찾아내서 잘잘못을 가리고 사건을 정리하고 싶었다.

허나 참아야 했다.

우선, 내가 담임이 아니었다.

남에집 남매끼리 싸웠다는데 옆집 엄마가 혼을 수는 없다.

그 집 규율이 있고, 그 집 부모가 알아서 할일이다.

버젓이 담임이 존재하는데 남에 반에 참견을 할 수 없는 일.

에휴.

게다가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섣부르게 관여하면 교사 없는 자리에서 아이들 갈등은 더 커진다.

애초에 갈등이 발생하지 않게 방지하는게 우선이고, 발생했다면 더 커지지 않게 단도리하고 아이들 옆에 바짝 붙어서 밀착 방어하는 것이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아를 안아주고, 위로하고, 실컷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전부였다.

그 아이가 행동한 방법이 '전두광'과 다를바 없다며, 아마도 다른 친구들과 모든 과정이 잘못되었음을 느끼지만 귀찮아서, 또는 나서기 싫어서, 또는 얼떨결에 당했을 거라고 안심도 시켜줬다.

사연을 털어놓고 다시 한참을 울고 난 아이는 후련해진 듯 표정이 좀 가벼워졌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참 답답했지만, 다음에도 또 같은 문제가 생기면 꼭 찾아오라고 당부하고 지아와 헤어졌다.


난 학급 경영에는 플라톤의 생각이 옳다고 여긴다.

교실은 철인정치, 즉 지혜와 덕을 갖춘 자가 교실(국가)를 다스려야 한다.

교실의 철인은 나, 담임교사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학급 경영을 민주적으로 하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맡기신다.

이게 초등까지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담임 교사가 교실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사안이나 문제를 거의 즉각적으로 반응해주실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중고등학교는 담임교사와 담임반 아이들의 접점 시간이 1시간 내외다.

그 시간도 대부분 수업 시간에 만나는 것으로 온건히 아이들을 관찰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다.

담임교사 없는 사이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대처하기 힘들다.

게다가 현재 아이들은 코로나 시간 동안 단체 생활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연습이 부족한 만큼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이 서툴다.

가장 큰 문제는 뭐든 제멋대로 하려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현실.

가정에서 뭐든 자기 뜻대로 관철시켜온 아이들

그러니 단체 생활에서는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그 과정에 양보를 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런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아이들끼리 의견을 주고 받는 것 자칫 싸움이 되고, 서로 큰 상처를 입는다.


학급에 모두가 관여하는 의사결정은 무조건 담임 참관 아래 진행하도록 한다 → 이것이 내 원칙이다.

학급 단톡방은 만들지 말 것, 정보 전달용으로 운영되는 담임이 속한 단톡만 존재할 것 → 이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수시로 친구 간에 대화 예절을 말해주고, 채팅으로 주로 받는 대화보다는 서로 얼굴 마주보고 대화를 해야 오해가 생기지 않고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이 된다는 걸 반복할 것  → 귀에 딱지 앉을 만큼 얘기한다.

아침 조회, 오후 종례, 청소 지도,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최대한 교실에 머물 것  → 지금 껏 학폭을 포함한 어떠한 사안도 생기지 않고 학급 경영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학급 경영은 생각보다 세심해야 한다.

아, 속터져.


다음날, 전두광으로 지목한 아이를 만났다.

멀리 복도에서 부터 반갑다고 다가오는 아이에게 잔소리부터 했다.


종 친게 언젠데 아직도 이러고 있어.
왜 교복도 안입고, 너무 사복이네.


아이는 쌤 보려고 뛰어왔는데 왜 잔소리 부터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예원이(가명)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 받으라고.
지금 늦게 가면 교과 선생님이 혼내실까바.
교복 안입으면 학생부장 선생님 만나서 지적받을까바.
그래서.
괜히 미음받지 말라고.
누군가에게 상처주지도 말고.  


애둘러 당부하며 아이 등을 쓸었다.

그렇게 아이를 보냈다.

찜찜한 마음이라도 생기길 바라면서.







(사진출처:영화 '서울의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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