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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May 02. 2024

체육대회 구경하다 눈물이 찔끔



교사입니다.

그보다 늦게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그제사 학교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겁니다.

비난보다는 나는 이런 경우 어떻게 할까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오늘처럼 배우는 날이 있습니다.


남매 학교 체육대회 날.

굳이 학부모 관람이 허락되어 아주 곤란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학부모를 초청하셨지만 워킹맘에게는 차라리 모두 못 오게 막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진심입니다.  

내 나이도 중하지만,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중합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만큼 아이들에게 영향이 갈까 봐, 업무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둘째가 '엄마는 못 와?' 하며 연거푸 물어보는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정말 어렵게 짬을 내 학교로 달려갔었습니다.


막상 가서 직접 보니 좋더라고요.

아이가 엄마가 왔다고 신나서 팔짝팔짝 뛰는데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습니다.

사실 딸아이가 반대표로 계주 선수로 참가했고 꼭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무리해서 참석했답니다.

지인 찬스로 동영상만 봐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 직관을 했더니 현장감 때문인지 제가 다 떨렸습니다.

넘어지지 않고 바통 받고 전달도 잘하고 아이가 속한 청팀이 이겨서 저도 같이 환호하고 신났습니다.





계주 경기 봤으니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다시 복귀하려고 돌아가는 길.

3학년 딸아이는 제가 온 걸 알고 인사도 했는데 아들은 먼발치에서만 보고 인사를 못했습니다.

아쉬워하서 두리번거려 보니 다행히 6학년 아들반이 나가는 길목, 학부모 관람 라인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앉아있더군요.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가서 열심히 두 팔을 흔들었습니다.

(아들, 여기 좀 봐. 엄마 왔어.)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학교에서 주신 생수얼음을 깨 부스려고 흔들고 때리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저와 눈이 마주치셨고 한눈에 알아보셨어요.

그리고는 아들에게 '엄마 오셨다. 인사드려'라고 하시는 겁니다.

덕분에 아들과 아이컨택하고 서로 손 흔들어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선생님께 허리 숙여 인사드리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핑 도네요.


눈물이 너무 가벼웠나요?

지난주 이야기와 연결이 되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열흘 전쯤 큰 아이 학부모 공개 수업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담임 선생님 외에 교과 선생님께서 아들의 반을 공개 수업반으로 지정하셔서 연거푸 두 시간을 참관했습니다.

2교시는 영어전담선생님 수업, 3교시는 담임선생님 수업.

그래서 2교시 시작 전 쉬는 시간에 도착해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아들의 담임 선생님께서 일부러 영어 교과 교실로 찾아오셨더군요.

제가 6학년 5반 담임교사 OOO입니다. 안녕하세요. 어느 아이 학부모님 이세요? 아 ★★이 어머님이시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이래저래 하게 학교 생활을 합니다. 상담 요청 없으셔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뵈어서 다행입니다. 언제든 의논하실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6학년이라서 참관 수업에 오신 분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10분쯤.

그래도 모두 한분 한분 먼저 인사드리고 질문에 답해주시고, 또 오시는 분이 계실까 싶어서 기다려주시더군요.

문뜩, 나는 학부모 공개수업 때 어떤 모습이었나 떠올려봅니다.

학부모님이 오실 때 먼저 마중 나가본 일이 있던가 생각해 봤습니다.

21년의 교직 경력, 모든 순간을 뒤적거려도 저는 교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참 부끄럽고, 그래서 아이 담임 선생님이 참 고맙던 순간입니다.

그날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그래도 잠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가 여러 학부모들 사이에 끼어있었는데 용케 알아보시고 아이와 눈 마주칠 있게 해 주신 거예요.

참고는 전 아들과 참 안 닮았어요.

(혹시 오늘 입은 꽃무늬 치마가 눈에 띄었을까요? ㅋ)


단순히 기억력이 좋으신 분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려하려는 마음이 와닿아 감사했습니다.

따듯한 선생님의 품에서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보낼 아이를 생각하니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요.

그리고 그동안 저는 학부모님께 안도를 드리는 교사였는가 되돌아봅니다.

이렇게 배웁니다.

학부모가 되어서야 참 교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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