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오지 못한 여전을
다음이라 부르기로 해
그러나
다음의 다음이란 게 있다면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보태어질 작은 증명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게 될 수가 있을까
없음은 없음인데
펜 하나가 없어서
버리지 못해 가방에 꽂아 둔 서류봉투에
연필로
글자를
그어대고 있었다
아무 도움도 바라지 않을 때
필요한
이나
것이
생기면
혼자선 영영 불충분인 무언가 단단히 생겨난다는 건
말라서 눌러붙거나
불어터지거나
차이는
편지를 남긴 홍대의 어느 술집에 이제 나도 가질 않고 너도 그들도 그러니까 화자도 대상도 없는 편지를
누군가 읽고
말을 줄여야지 말수를 줄여야 돼
탁한 희망이 빠져나가지 않게
기꺼이 반복되지 않게
붙들어 놓고 있다
무사히라는 말을 매일 하는 사람은 무사하지 못한 사람
언제 사라질지 고민하며 쌓는 하루와
하루
할 일을 끝내면 할 일이 생긴다
방해가 될까 미안해서 흐려지지 못하고
할 일을 마치면 다시 할 일이
흐름이 끊어졌을 때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을 상상
끝까지 간다는 선택지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바라지 않는다만
역시 없음은
없음이어서
세상에 없는 너를 기억하는 건
없음이 아니라 나여서
나는 너의
헛되지 않을 유실물 보관소여야 하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