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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새날다 Jul 09. 2020

할머니의 닭튀김

트레이더스에서 시식을 해보고 사온 치킨텐더를 발뮤다에 구웠다. 에어프라이어를 사는 대신 발뮤다로 대체하고 있는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발뮤다도 나름 괜찮다. 그리고 양념치킨 소스를 만들어보았다. 고추장, 고추가루, 간장, 케첩, 물엿, 생강술, 기타등등 해서 보글보글 끓인다. 오옷 나쁘지 않은데? 알고보니  초야에 스스로를 파묻요리천재? 라고 생각하며 아기새들을 먹였다.

양념치킨 소스 레시피를 검색하니 나처럼 야매로 치킨텐더 구워서 그걸 찍어먹는 사람보다는, 아예 닭부터 튀기는 사람들이 많다. 초야에 파묻힌 요리천재의 착각 따위에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사진과 메뉴들. 닭을 어떻게 튀기죠? 튀긴 닭은 사먹는  아닌가요?

라고 생각하기엔,
우리 외할머니는 닭을 튀기셨다.
삼시세끼에 나올 법한 솥뚜껑 달린 솥에 기름을 넣고, 닭을 튀기셨다. 닭튀김 냄새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던 내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의 냄새였다.

외할머니는 엄한 분이 아니었지만 애새끼(=) 이유없이도 할머니에게 삐지기도 했고 1층의 좁은 공간에 숨어서 "할매 나빴어, 나쁜 할매 나빴어"  중얼거리면서 눈물을 질질 흘렸다. 그러다가 동네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에서 종이인형을  준다고 하면 못이긴  따라나서서 팔랑팔랑 종이인형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의 가위질은 외할머니 댁에 살면서 하염없이 종이인형을 오리면서 늘었다. 취학하기도 전이었던 나는 너무 심심해서 여고 선생이던 막내이모가 학생들로부터 선물받은 종이학을  개씩 꺼내서 그걸 폈다 접었다를 수십차례 해보며 스스로 종이학 접는 법을 터득했고, 종이학을 눈감고도 접을만한 실력을 쌓은 후에는 학알, 종이거북 순으로 내공을 확장해나갔다.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할머니는 집안  하신다고 바쁘고(정말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으시는 분이었다) 일곱   혼자, 이모 방에 덩그러니 앉아서 종이를 접었다 폈다 해보면서 학알, 종이학, 종이거북 등을 자기주도형 학습하고 있는  모습이 ㅋㅋㅋ 

이모의 방에서 처음으로 송창식의 <우리는> 들었다. 이모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머리를 감고 라디오를 틀었는데  라디오에서 아주 오래된 노래들을 많이 들었다. 송창식의 <우리는> 들을  뭔가 마음 한켠에서 - 하고 울렸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목소리와  간절함, 바람부는 벌판에서도, 타는 가슴 하나만으로도 느낄  있는 연인이라는  뭔지 알지도 못할 나이에, 송창식의 <우리는> 듣고 눈물이  뻔했던, 그런 날들.
 
이모가 읍내에 나가서 사준 동화책  권을 마르고 닳도록 읽으면 집에  날이 왔다. 이모는 나를 "독똑한 " 이라고 농담삼아 부르곤 했는데 그것은 독하고 똑똑한 년이라는 뜻이었고 ㅋㅋ 나는 이모에게 지는 순한 년이 아니어서 이모에게 따박따박 말을 받아치며 노처녀라고 놀리면서도 이모를  사랑했던  같다. 아무튼, 서울에 가는 날은 새벽부터 할머니는 닭을 튀겼고, 나는 아침으로 따뜻한 닭튀김을 먹었다. 껍질이 바삭하고 속살에 염지가 되어 있는 그런 프라이드 치킨이 아니라, 정말 , 튀김. 정육점에서 아이가 먹기 좋게 잘라달라고 해서 할머니가 받아온,  튀김. 나에게 그걸 먹이고, 기차를 타고 우리는 서울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애들 데리고 대중교통 타는  고역인 나로서는, 할머니가 어떻게 애를 데리고 짐을 이고지고 기차를 타고 다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서 서울의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었을까, 싶다.

연초에, 할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쓰려고 했었다.
소설이 되었든 시나리오가 되었든, 무엇이든 써보려고 할머니에 대해서 생각하고 메모했었는데, 그때도 닭튀김 생각이 제일 먼저 났었다. 오늘 양념치킨 소스를 만들고 애들을 먹이는데 또다시 할머니 생각이 다.

할머니,  계시죠.
생명이 있는   귀하고 예쁘다,  말해주셨던 
이상하게 우리 애들이, 그때  나이보다 커버린 지금에서야 생각이 많이 나요.

엄마의 모습에서 이제는 할머니를 보고,
 모습에서 이제는 엄마가 보이네요.
그래도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싫은데
할머니는 할머니, 엄마는 엄마, 나는 나로 계속 남으면 좋겠지만
그게 사는 , 라고 할머니라면 말씀하실  같네요.

그래도 할머니에게는 아직 내가
1층에 숨어서 울다가 종이인형 사자고 하면 못이긴척 나오던 어린애일 테니
할머니, 거기서는 너무 바쁘게 움직이시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볕도 쐬고 꽃도 돌보면서  지내세요.

저도  지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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