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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Nov 09. 2023

공포의 야간좌대

18년 동안 쌓아온 남편과의 추억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오래된 취미가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 남자친구에게 배운 낚시가 그것이다.
바다낚시, 민물낚시, 얼음낚시, 때와 장소, 계절, 시간 가리지 않고 즐긴다.
그저 낚싯대만 던질 수 있는 물만 있어도 신이 난다.


낚시왕 남자친구는 이제 남편이 되어 함께 낚시하러 다닌다.





올해도 결혼 6주년 기념으로 낚시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못 갔던 안면도 구매항 바다 좌대에 다시 예약했다.


개인 방갈로, 깨끗한 화장실, 샤워 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챙겨서 떠났다.







물론 나는 도서 인플루언서니까 협찬받은 책도 한 권 챙겨갔다.
바다 위에서는 역시 이순신 장군님의 <난중일기>를 읽어야 한다며 호기롭게 챙겨갔지만, 제목만 읽고 시작도 못 했다.






낚시 인생 13년, 거대한 파도를 만났다.


날씨를 보고 출발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많이 온다고 한다.
낚시는 우비 쓰고 하면 되고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바람은 문제없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예보와 다르게 낚시하는 내내 비가 오지 않았다.
낚시터 사장님도 크게 걱정할 날씨는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먹을 만큼 잡았다.
넉넉히 손맛을 본 뒤, 저녁에는 갑오징어회를 떠서 먹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잠도 부족하고 배도 부르니 졸음이 밀려왔다.


밤새워 낚시할 생각으로 저녁밥을 먹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밤이 깊어지자, 난리가 났다.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다 위 좌대는 미친 듯이 휘청거렸다.
비바람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무서웠다.







그때 옆으로 내리는 비를 처음 보았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흔들리는 몸을 붙잡고 신기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무서운 파도가 좌대 위를 덮쳤다.


속이 울렁거려서 일단 눈을 감고 누웠다.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나인데 한 시간 만에 또 깼다.
문밖을 내다보니 파도는 아직도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다시 누웠다.


전기가 몽땅 나가버리고 화장실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방갈로 전체가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다시 눈을 감았다.








또 눈이 떠졌다.
다시 밖을 내다보니 바다의 물살이 거세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손님 깨워도 안 일어나셔서 좌대 통째로 이동하고 있어요. 곧 육지에 도착합니다."


커다란 바다 좌대를 어떻게 통째로 옮길 수 있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육지로 가고 싶었다.


육지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날이 밝아졌다.
파도도 잔잔해졌다.

남편과 항에 주차해 둔 차에 짐을 실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집채만 한 파도가 보였다.
놀랄 틈도 없이 파도는 우리를 덮쳤다.








다시 눈이 떠졌다.
꿈이었다.

아직도 파도는 화가 나 있었고 방갈로와 좌대는 천둥처럼 쿵쿵거렸다.

다시 잠이나 자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가 조용했다.
흔들리던 좌대도 얌전해졌다.








"여보. 어제 잡은 주꾸미로 라면 끓였어. 일어나자."


이 난리 속의 주꾸미라면은 꼭 먹어야겠다는 남편이 놀라웠다.







정리를 하고 육지로 돌아가는 길.
사장님의 배는 떠내려갔고 다른 바다 좌대는 일부가 뜯겨 나가 바다 한가운데 떠다닌다고 한다.

생각보다 피해가 컸다.

모두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연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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