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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May 09. 2024

해야할 일, '열심히' 미뤄보기

'열심히'의 가치가 부여한 부지런함에 반항하기

[해야할 일을 애써 열심히 미루자!]

30대에 접어들면서였을까? 이런 이상한 슬로건을 실천하려 애써본 시작이...

우리가 결혼할 때 엄마는 말씀하셨다.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지더라고.'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지만 나도 '열심히'라는 가치가 존중받는 가정에서 자랐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가치는 중요하다. 


나는 열심히 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날 일은 그날 해결하기! 오늘의 일은 내일로 미루지 않기! 내일의 일은 오늘 당길 수 있으면 미리 하기!]는 유능한 삶의 표본인 듯, 실천했던 때도 있었다. 


20대는 무엇을 일구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학문을 접하고 공부하는 맛을 알았다.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나는 책을 읽고 배우는 기쁨을 세상 누구나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행히 나는 20대에 이 기쁨을 맛봤다. 원하던 시험에 합격하고 어린 아이를 대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여자들로 이루어진 학과 생활과 직장 생활에 감정 소모도 많았지만, 유아교육을 통해 아이를 만나는 일은 보람찬 날들이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마음이 어딘가에는 닿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참 부지런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 몸에 탈이 났다. 부지런히 돌아가던 하루 하루가 잠시 멈췄다. 덕분에(?) 나는 사회로 출근하지 않았고 병가 기간동안 부모님과 일상을 누렸다. 아침에 일어나 차를 타고 외곽에 있는 식당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부모님과 다정한 하루를 보내고 꺄르르 웃다보니 어느새 햇살이 물빛에 반짝이는 장면이 마음에 새겨졌다.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가치가 꼭 사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처음 깨달았다. '열심히'가 부여한 가치는 사회의 가치이지, 내 삶에 꼭 필요한 가치는 아니었다. 


해야할 일의 완벽함을 기하려 책임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할 때면 나는 내게 말한다.

 '다 지나가는 시간이야.'


 [해야할 일을 '열심히' 미뤄보기]

이렇게 요상한 슬로건은 생겨났다. 

요즘 우리 엄마는 말한다.

"부지런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를 그대로 바라보고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뭔가를 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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