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야 May 14. 2024

우연히, 큰 손

딸기잼을 만들다

끝물인 딸기가 들어가기 전에 우연히 지나가는 거리, 또는 마트에서 잼용 딸기를 만날 수 있기를.

꼭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보다 기회가 된다면 딸기잼을 만들어보자는 얕은 다짐.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는 깊은 생각으로 이어질 리 없었고 [딸기 5상자에 9천9백원]은 내 정신을 홀~~ 빨아가 버렸다. 귤잼, 살구잼의 경험이 있던 나는 딸기잼도 내 목록에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매번 사 먹는 잼을 직접 만들기로 하니 제법 살림꾼의 탈을 쓴 기분이 들었다.

1. 딸기를 씻는다.

2. 꼭지를 딴다.

3. 꼭지를 딴다.

꼭지를... 땄다.

... 

수제잼 시장의 가격이 주는 타당성을 납득했다.


[ 한 번에 끓일 냄비가 없구나]

그제야 끓인 후 넣을 병도 없음을 깨달았다. 요리 습관이 안 잡힌 주부(?)의 실패기가 될 것인가..?


"엄마, 있다가 딸기 으깨는 건 내가 한다!"

학원가는 두 아이가 딸기잼 만들기에 동참할 의사를 밝힌다. 학원이 끝나기까지 나는 딸기를 씻고 꼭지를 땄다.

그리고 조물조물, 두 아이가 딸기를 으깼다. 집 안에 딸기향이 한가득 들어차고 딸기즙 사이에서 덩어리를 찾아내며 주먹을 꼭 쥐어 또 즙을 짜낸다.

그리고 다시 나의 시간. 연차만 쌓인 요리의 초보는 혹시나 탈까 봐 젓고 또 젓는다. 설탕을 들이붓고 또 젓는다. 어느새 밤이 되어 신랑이 운동을 다녀올 동안 나는 한자리에 서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걸으면 괜찮은데 오래 서 있으니 다리가 아프다. 아직 정리 못 한 빈 딸기 상자를 보니 순간의 선택이 떠올라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짜잔, 되기는 되었다!

김치통으로도 쓰는 크기부터 손바닥 크기까지 줄 세워 놓으니 그럴듯하다.


아이들은 어린이날 선물을 준 삼촌을 잊지 않고 한통을 삼촌에게 보낸다. 그리고 할머니댁에도 맛보라고 한통을 챙겼다. 자기 지분이 들어가 있으니 나눌 때도 당당하다.


나머지는 얼리고 나머지는 얼른 먹어야 한다.


올봄의 끝자락에 새콤 달콤함을 남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일 싫다는 아이에게 과일 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