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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May 24. 2024

싹이 난 감자는 소가 되었다

감자로 도장 만들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감자볶음이 될 예정이었다. 상자에 든 감자를 정리하기 귀찮아 그냥 두었더니 감자는 뿔이 났는지 싹을 틔워버렸다. 아이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감자는 싹이 나면 독이 생긴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고, 그들이 아는 '독'은 백설공주 이야기의  사과 독처럼 먹으면 바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품고 있었다.


감자는 싹이 우둘투둘하게 났는데 겉보기에 징그러워 보인다. '버릴까?' 이미 먹을 수 없는 감자를 보며 게으르게 방치했던 며칠의 시간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감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감자를 통해 내 죄를 듣는다.


어차피 싹이 난 감자라 어찌 처분할지 시간을 둔다. 그러다 문득 어릴 때 했던 채소 도장 만들기가 떠올랐다.


[우리 감자 도장 한 번 만들어볼까?]


감자 싹을 잘라내고 표면에 홈을 낼 수 있는 도구들을 찾아낸다. 처음 우리가 선택한 도구는 이쑤시개였다. 그러나 생감자 위에 깊고 두꺼운 선을 만들기에 얇은 나무막대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찾아낸 일자드라이버!(큰 단점은 아이가 만드는 동안 계속 마음 졸이고 주의를 주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드라이버를 이용해 여러 도장을 만들었다.


첫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냉장고에서 벨큐브 치즈하나를 꺼내온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 겠지? 조그만 소 그림을 감자면에 채울 만큼 확대해 가며 입을 앙 다물고 조각하는 모습이 조각가 같다. 나는 계속해서 '조심해'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아이 손에서 나올 작품(?)이 궁금하기도 했다. 다 했다며 내미는 결과물이 나도 물감을 묻혀 찍어보고 싶을 만큼 제법 폼난다.

첫째는 벨큐브소를, 둘째는 토끼와 거북이를, 나는 여러 기호와 꽃 도장을 만들었다. 감자는 비록 먹히지 못했지만 바로 버려지지 않았고 잠시 그림 도장이 되었다.


감자는 이 쓰임새에 만족할까?

아무 주제도 정한 바없이 어린이와 동일선에서 자유주제의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할 때면 대부분 승자는 어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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