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아무렇지 않은 듯, 아픈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유치원선생님의 하루
이제 아이들과 어느정도 합을 맞추고 서로의 농담을 이해할 정도가 되었다. 그간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싸운 얘기, 동네 아파트의 집값 얘기, 주말에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얘기 등 민감함과 상관없이 자주 듣거나 밀접한 이야기들을 옮겨댔다. 한 아이는 웃으며 와서
"오늘 왜 맨발로 왔는지 알아요?"하고는
"아빠랑 엄마가 아침에 싸웠거든요, 엄마가 정신없어서 양말 신겨주는 걸 깜빡했어요."한다.
너무 천진하게 웃는 아이의 표정 안에 어두운 무언가 자리잡을까 걱정되어 나는
"아, 너무 속상했겠다. 아빠랑 엄마랑 싸우면 너무 싫지? 선생님이 꼭 안아줄께. 이리와."하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는 "아빠랑 엄마랑 싸우면 경찰이 올 때도 있어요. 진짜 시끄럽고 소리치고 막 그래요."하고 현상만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는 아이가 짠하고 아프다.
또 다른 아이는 부모가 집에서 부동산 이야기를 자주 하는지, 지역내에서 핫하고 비싼 아파트 단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무슨 아파트 살아요?"하고 묻는다.
물론 대부분의 이야기는 어제 스티커를 샀다거나 길을 가다 누구를 만났다거나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24명의 입을 통해 나온 각자의 에피소드들을 만나다보면 교실에서는 모두 조연같지만, 실제로는 모두 주연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놀이시간 동안 한녀석이 말하면 또 한녀석이 말하고, 그 옆에 녀석이 경쟁하듯 보태고... 또 다른 아이가 친구의 잘못을 이르거나 도움을 요청하러 오고... 그러다보면 나는 내내 무슨 일을 하려했다가도 뭘 하려했었나 한참을 생각해야하는...그리고 그 일이 아주 단순한 일이였음을 깨닫는 순간, 내가 얼마나 정신없이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