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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을 사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겠어

가끔은 사 먹어도 돼 (Feat. 똥손 아줌마)

by 송주

음식 솜씨로 성적을 매긴다면 친정 엄마는 하버드 장학생쯤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 손수 만든 반찬들로 상 위를 채웠다.

모든 음식들은 먹기 좋은 온도로 준비될 만큼 손도 빨랐다. 정갈한 반찬들과 갓 지은 밥으로 든든한 한끼를 채우며 하루를 시작했고 또 마무리 했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고 입을 움직이던 그때는 밥 상위를 오갔을 노고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집밥 예찬론자인 아빠의 집밥 사랑을 보고 자랐다. 아빠는 밖에서 파는 음식은 위생적으로 좋지 않고 몸에도 좋지 않다고 늘 말씀하셨다. 더군다나 엄마 음식 솜씨는 웬만한 맛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죽으나 사나 집에 와서 끼니를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후 엄마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퇴근이 일정치 않았던 아빠의 저녁을 위해 잠을 참아가며 버텼다고 했다.


한 끼를 차려 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던 나는 마술 부리듯 맛있는 음식들로 상을 차려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혼 후 여는 새댁들처럼 예쁜 앞치마를 사서 두른 내 모습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된장찌개

갓 지어낸 밥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간식과 정성 가득한 식사를 준비하는 나를 상상했다.


음식 만드는 것은 정성과 마음을 담아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 먹는 반찬을 가족들에게 내놓는 것은 내게 죄책감 가득한 일이었다. 엄마라면 정성이란 이름의 내 손맛이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어 내놓아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믿음에 사로 잡혀 있었다. 반찬을 사서 상에 올리는 것을 터부시 하며 손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고 끼니를 준비하는 것은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박 3일 아니 그 이상 먹게 되는 김치찌개

48시간을 넘어가는 밥솥 시계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음식 재료들

너저분한 내 주방은 이상과 내 피곤한 현실의 간극을 수시로 증명해 보이곤 했다.

반찬 하나에도 수많은 양념들이 들어간다. 한 끼를 차려 내며 도마와 칼을 여러번 씻고 헹궜다. 미처 다 하지 못한 뒷정리와 가득 쌓인 그릇들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싱크대를 채우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음식을 만들었다. 나만의 고집에 사로잡혀 찌개를 끓였고 나물들을 무쳐 냈다.


나는 종종 음식을 내어 놓고 남편에게 맛이 어떠냐고 묻곤 했다. 보통 남편의 대답은 "먹을 만하다."였다. 남편은 어떤 음식을 줘도 잘 먹는 사람이다. 먹을 만한다는 것은 먹고 죽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남편은 가끔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을 먹은 후에 "이게 장모님이 한 거지?"라며 알아맞히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며 아이들이 자랐고 내 요리 실력도 익숙한 요리들에 한해서 다듬어지고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전에는 한송주가 만든 음식 맛없어도 먹을 만하다고 했는데 이제 진짜 먹을 만 해."

욕은 아니겠지? 여하튼 손 끝에 스며든 세월이 의미 없이 지난 간 건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내는 일이 쉽거나 재미있어 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생에 처음으로 김치 담그기에 도전했다. 엄마가 담가주는 김치만 먹다 직접 담그려니 재료비가 적잖게 든다는 것을 알았다. 찹쌀풀을 만들고 액젓과 배 등 다양한 재료를 사서 양념을 만들었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물기를 빼는 과정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숨을 죽인 배추에 만들어 놓은 김치 양념을 버무렸다. 하지만 맛은 썩 좋지 않았다. 시간을 쪼개서 배추를 사는 일을 시작으로 김치를 담그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하는 것도 적잖은 돈이 들었다. 수많은 김치 브랜드가 있는 이유를 대강 알 것 같았다. 사 먹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김치를 담그느라 고생만 한 내게 "야야~ 진주도 은주도 반찬 다 사 먹는단다. 김치도 인터넷에서 다 주문해 먹는 단다. 너도 그렇게 조금씩 사 먹어라. 바쁜데 그게 낫다."


문득 집 근처 500M 내 반찬가게가 3곳이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꽤 오래 같은 자리에 있는 걸 보니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퇴근 후 A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사실 반찬 가게를 처음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쇼케이스에 반찬들을 집다가도 이걸 굳이 사 먹느니 내가 만들면 되지 하는 마음이 앞서 내려놓고 나오거나 쌈 모둠 야채 정도 사 오는 게 다였다.

하지만 그날은 결심이라도 한 듯 겉절이 김치가 담긴 통과 밑반찬 몇 가지를 담아 집으로 들고 왔다. 전날 인터넷에서 주문한 양념 불고기와 함께 한 상 차려냈다. 역시 내가 만들지 않은 음식은 다 맛있었다. 밥상이 다채로워졌고 아들들 반응도 엄지 척 이었다. 내 몸 편한 건 말해 뭐 할까?


오랜 습관이나 고집스러운 신념이 삶을 고단하게 할 수 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부와 명예를 거부하는 도덕적 완벽주의를 추구했다. 당연히 아내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금욕과 채식을 위해 가족이나 손님들이 고기를 먹는 것도 원치 않았고 성생활도 죄악시했다. 그의 도덕적 신념은 그를 위대한 문호로 만들었지만 삶 자체는 갈등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는 가게에서 반찬을 사서 상을 차리는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 틀에 갇혀 타인을 평가하고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정성 가득한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는 의도였지만 가득 쌓인 설거지와 정리되지 않은 주방에 한숨 쉬적이 많았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인덕션 앞에 서는 일이 마냥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내 몸이 힘들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날 반찬가게 문턱을 넘어 나오며 깨닫게 되었다.

내 손끝에서 나오는 따뜻한 정성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함께 나누고 맛있게 먹는다면 그게 집밥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음식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아들들도 남편들도 맛있으면 그만이었다.

솔직히 우리집 남자 셋은 별 생각이 없다.

반찬을 샀기에 덜어낸 수고만큼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는 다시 가족에게 흘러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반찬을 사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위 글은 오마이 뉴스에 동시 송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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