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판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건강한 음식을 영양제 먹듯 챙겨 먹어야 할 나이예요."
얼마 전 검진차 방문한 병원의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40 대 중반의 몸은 전과 많이 달라졌다. 몸은 너무나 정직하게 대세를 따르는 느낌이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노화는 자연스럽게 몸 구석구석에 머물듯 스며들었다. 몸의 기관들이 점점 닳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비타민이 좋고 오메가 3이 좋다고 해도 내가 괜찮다 느끼니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갱년기가 시작될 모양인지 발바닥에 열감이 심해지고 피로감이 잦았다. 더군다나 앓고 있던 망막박리로 인한 망막 상태가 좀 더 나빠졌다는 진단 후 냉동실에 박혀 있던 블루베리까지 꺼내게 되었다. 50인 남편도 눈이 침침하고 예전 같지 않다며 블루 베리를 주문해 먹고 있다. 나 보고도 먹으라는 거 그렇게 손이 안 가더니 의사 선생님 한 마디에 매일 약처럼 블루베리를 먹고 있다. 그 외 눈 영양제, 프로폴리스 및 유산균 등등 몇 년 전까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건강 보조 식품들을 강박적으로 챙겨 먹는 중이다.
가려 먹어야 할 나이
챙겨 먹게 되는 것이 있는 반면 가려야 하는 음식들도 많아졌다.
빵과 과자 등 정제 탄수화물 줄이고 건강한 음식을 먹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적절한 단백질 섭취와 야채 과일 등 비타민 식품 역시 균형 잡힌 식단을 위해 먹어줘야 한다. 건강하게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모범적인 중년 그걸 누가 모르겠나?
건강한 음식들은 하나 같이 손이 많이 가고 비싸다.
샐러드 하나를 만들려 해도 채소를 일일이 씻고 물기를 털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성껏 채소 볶음을 내어 놓아도 한 끼 먹고 나면 물리기 일쑤이다. 야채는 냉동 보관도 어렵고 제 때 요리 해 먹지 못하면 버려질 때도 많다. 그러니 몸에는 이로울지 몰라도 시간과 비용 면에서 건강한 식단은 때론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그냥 아무 음식이나 먹고도 건강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지만 중년은 퇴로가 없다.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건강하게 먹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건강한 밥상과 슈퍼 푸드 등에 눈이 가기 시작했고 홈쇼핑 속 올리브 오일 광고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손가락을 들썩거린다.
밤늦게 라면을 끓여 먹어도 말짱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달라졌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나 기름기 많은 음식은 쉽게 소화되지 않고 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맛있는 음식들은 몸에 나쁜 것이 많고 먹은 후 대가를 치러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못 참고 과자 한 봉지를 다 털어 먹고는 니글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후회할 때도 있다.
먹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음식
못 참고 먹고 싶어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음식이 생겼다.
바로 짜장면이다. 밀가루와 기름에 절은 춘장이 만들어낸 환상의 단짠 짜장면은 이름만 들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음식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짜장면을 먹고 나면 몸에 부담이 느껴졌다. 먹을 때의 즐거움이 오래 머물지 않고 불편해진 위장이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풍기곤 했다.
또 짜장면은 혈당 스파이트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흰 밀가루 면과 섬유질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혈당을 빠르게 올린다. 많은 기름과 설탕, 전분도 혈당을 급상승시키는 요인이다. 그렇다 보니 식후 소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노곤하고 피곤해지기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대사 증후군의 위험을 높인다. 이제 짜장면은 먹고 싶어도 겁이 나 참아야 할 음식이 되었다. 맛있게 먹은 후 불편한 대가를 치르기보다 안 먹는 쪽을 택할 만큼 소화가 되지 않았다. 오래전 초등학교 운동회 날 이후로 내 입을 호강시켜준 짜장면과 이렇게 슬픈 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자비 없는 세월과 대세를 따르는 내 몸이 야속했다.
아이들에게도 되도록이면 짜장면을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의 아들들은 한 번씩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한다. 사실 나도 너무나 먹고 싶다.
배달 음식으로 짜장면을 시킨 날 짜장면 곱빼기를 맛있게 흡입하는 아들들을 보며 참지 못하고 한입만을 외쳤다.
"엄마도 시켜 먹어"
"엄만 괜찮아."
한입, 두 입 짜장면은 역시나 환상의 MSG맛을 자랑했다.
나는 곧 아들들에게 면이 몸에 해롭고 특히 짜장면은 기름기가 많고 열량이 높아 자제해야 한다고 했지만 괜스레 서러운 마음에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싶었다. 안 먹는 것은 선택의 문제지만 못 먹는 것은 불가능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조건의 한계로 가려야 할 음식들이 많아졌다.
결국 나는 짜장면 앞에서 god의 노래 가사 속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날따라 이 노래 가사가 더 절절하게 머리에 맴돌았다. 짜장면을 곁에 두고 혈액 순환에 좋다는 양파만 집어 먹어야 했던 서러움을 평생 모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라 생각한다.
다들 어떠세요? 짜장면 소화 되시나요?
한 번씩 궁금했다. 나만 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