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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닭갈비 쿠폰을 할인 판매한 아들

기꺼이 사 주마

by 송주

아들이 7000원짜리 닭갈비 쿠폰을 내게 팔았다.

"엄마 닭갈비 쿠폰 6000원에 팔게"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엄마인 내게 당당하게 할인 판매를 시도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사기꾼 같은 순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장사꾼도 없다 싶은 생각에 나는 꽤 씁쓸했다. 하지만 쿠폰에 쓰인 '대한 적십 자사' 글자에 곧 마음이 누그러졌다.


첫아들의 의미

나는 아들을 낳고 싶었다. 물론 남편이 장손의 장남이라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귀속 지위를 가진 탓도 있다. 학습된 결과의 도출값인지 개인적 취향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까까머리 어린 남자아이들이 귀여웠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임신을 했고 뱃속의 아이는 아들이었다. 출산 후 아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내가 이렇게 예쁜 애를 낳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어설픈 엄마였던 나는 모든 것이 어렵고 서툴렀다.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가 아들을 두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이었다. 봉인된 건강 염려증 인자가 발현 된 듯 배만 아파도 온갖 걱정을 했다. 엄마는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들을 향한 강한 모성애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내 세상을 바꿔 놓았다.

그러던 중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밥을 먹으며 나를 찾던 어린 아들이 어른의 길목에 들어섰다. 아들의 마음은 제멋대로 부풀어지고 뒤틀리는 듯 보였다. 짜증 섞인 말투로 거칠게 문을 닫는 아들을 보는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내 존재 이유에 회의감 마저 들었다.

나는 직장 생활을 했지만 아들과 관련된 어린이집, 학교 일에 빠진 적이 없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 학교 앞 학원 라이딩을 하며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지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마음이 사춘기라는 벽돌 한 장에 무너진 벽을 보는 듯 망연자실 했다. 그 벽을 다시 쌓을 힘도, 이유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한때는 아들의 미소 한 번이면 하루가 환했는데,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힘들었다. 성장통을 겪는 아들도, 내려놔야 하는 나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내 사랑은 여전히 아들을 향해 있었지만 나는 표현할 방법을 잃은 사람처럼 아들 곁을 맴돌 뿐이었다. 걱정과 우려의 말은 어김없이 잔소리가 되어 쉼 없이 나왔다.


어느새 어른의 세상을 준비하는 아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성장통이 끝나갈 무렵 아들은 몰라보게 자랐다. 몸도 마음도 부쩍 어른스러워 졌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아들과 내 키 차이가 괜히 설레일 정도였다. 내가 봐도 피부가 하얗고 빚은 듯 잘 생겼다. 차은우 정도가 아닌 것이 아쉽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목표를 정하고 무너진 벽의 벽돌을 하나씩 다시 쌓고 있는 중이다. 아들은 오래 전 부터 "체대, 체대" 노래를 불렀지만 나의 답가는 "안돼, 안돼" 였다. 하지만 1학년 때 생활 기록부 내용을 체대 입시 전략에 맞춰 써 놓은 아들을 보고 내 답가를 거둬 들였다.

아들은 내가 없어도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앞서 말 했듯 아들을 낳고 죽음에 대한 걱정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편으로 그런 걱정이 덜어져 안도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안 내 옆에 서서 알통을 뽐내는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아들은 미사일이라 표현 하는 알통을 나는 총알이라 놀려댔다.

"조금만 천천히 크지"

"엄마 신기하지? 나 정말 많이 컸지?"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들은 다녀온다는 인사를 하고 쌩 가버렸다. 아장 아장 걷던 아들의 보폭이 저렇게 넓어지다니...

나는 아들이 아주 작아질 때까지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듬고 살 수 있는 시간이 참 짧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작은 발을 내 볼에 비비고 배 방귀를 해 주던 시간이 돌아올 수 없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태어나면 건강하게 자라는 주기 만을 바란다. 나도 그랬다. 건강이 최고의 효도라 생각했지만 나는 아들의 기가 막힌 성적표 앞에서 매번 좌절했다. 신의 내려주신 엄마라는 존재도 이렇게 간사하다. 사춘기라는 통과의례는 부모의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를 통해 다시 배운다.

나는 아들을 낳고 첫울음, 첫걸음 같은 처음의 순간을 다시 배웠다.

등에 업힌 아이가 옹알거릴 때 저녁노을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다.

나를 가장 쉽게 울린 수 있는 존재가 아들이라는 것도 배웠다.

아들을 품고 살며 사소한 것의 귀함을 알았고 너그러움을 배웠다.

아이는 소유가 아니란 것을 배웠고 살을 맞대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아픈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어른인 나는 세상을 다시 배웠고 힘든 시기를 보내며 다시 자랐다. 내년이면 아들은 법적 성인이 되어 자신의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또 잘 자랐다는 증거를 독립으로 남길 수도 있다. 언젠가 아들이 독립을 하는 그 날을 대비해 남겨진 여백의 허전함을 채워 나가는 연습을 해 놔야 할 것 같다.


아들의 효도

아들이 내민 쿠폰을 나는 기꺼이 샀다. 학교로 헌혈 차가 올 때마다 아들은 팔을 내민 모양이었다. 아들의 용기가 대견했다. 또 혈액을 나눌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 뜻이라 생각되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아들은 그렇게 효도를 하는 중이다. 나는 변함없이 내 자리를 지키며 좋은 엄마를 배워 나갈 것이다.



아들이 또 이렇게 쿠폰을 팔면 등짝 스매씽 날리수도 있습니다만 에세이는 아름답게 마무리 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립니다. 약간 다르지만...

https://omn.kr/2fl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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