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독서를 생각하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의 취미가 독서였던 시절이 있었다. 없이 살던 시절 음악 감상이나 독서는 큰돈들이지 않고 부담 없이 자신을 지적으로 포장하기 좋은 수단이었다. 커피를 사이에 놓고 마주한 남녀의 첫 번째 대화도 취미는 독서고 특기는 음악 감상이라는 상투적인 대화였다. 여대생이 되면 으레 헤밍웨이나 헤르만 헤세 같은 작가의 책을 제목이 잘 보이게 가슴에 안고 다녔으니 가히 독서 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진짜 독서 강국이었는지는 미지수라고 해두자
이런 유년기를 겪으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같은 말들이었는데 책을 읽는다고 배가 부르지도 않았고 길이 보이지도 않았다. 하물며 가을은 정말 놀기 딱 좋은 계절이었다. 생각해보면 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체 그냥 활자만 또박또박 읽었던 것 같다. 그 무렵 이솝우화를 시작으로 하는 세계명작동화 같은 전집이 각 가정의 책장을 점령했었고 화장품 외판원 만큼이나 전집을 팔러 다니는 전집 외판원들도 심심찮게 초인종을 누르던 시절이었다.
물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아버지 지인이 책을 팔러 와 전집을 구입했었다. 정확히 몇 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각 권마다 진한 벽돌색의 케이스가 따로 있었고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금색 테두리가 쳐진 고급스런 모습이었다.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버린 책은 아무도 읽지 않았다. 왜 읽는지 모르지만 무조건 읽어야 하는 것, 안으로 쌓이는 지식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 유년시절 독서의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독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가장 확고한 믿음은 책을 읽는 행동은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독서는 그냥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어나서 잠드는 시간까지 잠시도 틈이 생기지 않으면 책을 읽지 않게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같이 이동 중 자투리 시간도 스마트폰이 점령해버렸다.
빌 게이츠는 독서광으로 유명한데 평일 1시간, 주말 3시간을 온전히 독서만 하기 위해 시간을 확보한다고 한다. 이렇게 독서는 일부러 해야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굳이 정해서 시간을 들여야 진정한 독서가 이루어진다. 독서는 자투리 시간을 채우기 위한 번외활동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비슷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만 많이 읽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씨다." 식으로 활자만 읽어서는 진정한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내가 그랬다. 자랑하듯이 읽은 책을 블로그에 올리고 쌓여가는 권수에 흐뭇해했다.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는 상태에서 블로그만 비대해졌다. 이런 독서는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내고 많이 읽는 것이 아무런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한 달에 1권을 읽든, 10권을 읽든 개인의 능력치겠지만 중요한 것은 읽으면 깨달아야 하고 삶에 적용하는 독서를 해야 한다. 최소한 한 줄의 문장이라도 가슴에 새기고 적용하면 어떤 형태로든 삶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투자자인 워런 버핏과 그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는 이렇게 말한다.
“내 평생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똑똑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신은 워런과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알면 놀랠 것이다.”
-찰리 멍거 지음 「불쌍한 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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