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서운하게 행동한다면 바로 잡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대학생인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기억이 별로 좋지 않다. 선생님은 국어교육에 열의가 대단한 분이었다. 읽기와 쓰기도 강조했지만 무엇보다 반듯한 글씨체를 강조하셨다. 아이들에겐 힘든 선생님이었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좋은 분이었다.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엄마와 외출 중이던 아이가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선생님의 첫마디는 "일기 잘 쓰고 있지, 글씨는 반듯하게 잘 쓰지"였다. "그동안 잘 지냈니?" "여름방학은 즐거웠니?" 같은 안부 인사를 기대했던 아이는 선생님에게 실망감을 느꼈고 마음이 닫혀 버렸다. 아홉 살 아이도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닫아버린다.
마음이 떠나는 순간은 예고가 없다. 예전에는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담배, 볼펜, 열쇠고리 같은 작은 선물들을 사서 직원들에게 돌렸다. 서로가 부담 없는 선에서 주고받는 정 같은 것이었다. 직원들은 물 건너온 것이라며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언젠가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배가 뉴욕이라는 글씨가 써진 열쇠고리를 돌렸었다. 대부분은 고맙게 받았는데 유독 한 선배만 받지 않았다. 후배는 머쓱한 기분에 몇 번 더 권했지만, 결국엔 필요 없다며 안 받았다. 굴욕감을 느낀 후배는 그 선배에게 마음이 멀어졌다.
살다 보면 상대의 행동이 예상과 달리 별거 아닌 일에 뾰족해지거나 몇 배의 서운함을 드러낼 때가 있다.
“겨우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화를 낸다고.”처럼 관계의 소원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상대의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큰 결과는 아주 작은 단초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무조건 상대방의 행동을 비판하기보단 나를 대하는 자세를 찬찬히 헤아려 봐야 한다. 관계의 개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의 거리가 명확해지는 것은 그동안 다른 이유로 이어졌던 관계가 정리되기 때문이다. 업무, 계급, 선후배, 동료 같은 꺼풀이 벗겨지면 진짜 인간관계만 남게 된다.
아홉 살 아이의 닫힌 마음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열쇠고리를 거부하던 짧은 순간이 그 선배의 기억으로 남아있게 된다. 그들의 관점에는 글씨체가 잡히지 않는 아홉 살 아이와 유달리 나에게 뾰족한 후배만 보이게 되는데 상대의 행동을 비난하기보단 그들이 비추는 거울에 진짜 나를 찾아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의 궤적을 벗어나는 상대의 행동은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고마운 행동이다. 지금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주변부터 찬찬히 다시 살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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