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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jazz Feb 18. 2024

축구와 꼰대, 그리고 플라스틱 축구 팬

 최근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AFC 카타르 아시안컵 졸전으로 인한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와 국가대표 일부 선수 사이에 생긴 불화 문제로 온 나라와 언론이 시끄러웠던 가운데, 심지어 그러한 불화 문제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인정하기까지 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할 정도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졌는데요. 국가대표 팀에 소집될 정도의 선수라면 대부분의 선수가 소속팀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이고, 심지어 불화 문제의 중심에 있는 선수는 국가대표 주장을 비롯하여 소위 World Class의 선수들인데 왜 그렇게까지 했나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행했다고 보도된 일련의 행동들은 사실, 그러한 스타 플레이어 사이에서 갈등이 쌓이고 쌓이다가 마침내 곪아터져서 충돌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싶은데요.


 제가 아주 편파적인 축빠로서, 그리고 심각한 꼰대로서 축구 국가 대표팀을 보면서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물론 대표팀 내부의 파벌 문제도 있고 또 선수들의 스타 의식이나 인성 문제도 있었겠지만, 경기장 내부에서도, 또한 경기장 외부에서도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하는 선수의 부재가 너무 컸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축구에서 강팀의 조건을 꼽자면 물론 최전방의 강력한 스트라이커와 단단한 수비 조직력을 들 수 있겠지만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2선에서의 볼 배급과 경기 조율을 하는 중앙 미드필더의 능력이라고 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각국의 A대표팀이나 UCL(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유럽의 클럽팀에는 언제나 훌륭한 중앙 미드필더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지네딘 지단과 함께 최고의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이탈리아의 통산 4번째 우승에 공헌했던 안드레아 피를로(당시 소속 클럽팀은 AC밀란)를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이탈리아는 빗장수비의 전통으로 수비에 중점을 두다 보니 그 해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던 칸나바로가 주장 완장을 찼었지만, 실질적인 경기 운영과 볼배급은 전적으로 피를로가 다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 월드컵에서 맹활약했던 중앙 미드필더를 꼽자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국을 결승까지 올려놓은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 선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선수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참고로 저는 FC바르셀로나의 광팬입니다.) 다보르 슈케르를 뛰어넘는 크로아티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일 정도로 정말 대단한 선수이죠.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과 볼을 다루는 능력은 아마도 어떤 선수도 쫓아갈 수 없는 최고의 수준일 겁니다. 그러면서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고 대표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죠. 지금까지 언급한 두 선수 외에도, 제가 너무 좋아했던 사비 에르난데스(FCB, 스페인),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잉글랜드), 미하엘 발락(바이에른 뮌헨 등, 독일), 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날 외, 스페인), 일카이 귄도안(맨시티 외, 독일), 케빈 더브라위너(맨시티, 벨기에) 등 경기를 지배하는 중앙 미드필더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럼 축구에서 중앙 미드필더가 왜 중요한지를 다른 단체 구기중목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단체경기에서는 대개 누구나, 득점을 하는 화려한 공격수의 움직임에 열광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경기 흐름을 읽고 공수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그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 받쳐주는 포지션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포지션은 농구에서는 포인트 가드이고, 배구에서는 세터, 그리고 야구에서는 포수인데요. 축구에서는 미드필더, 그 중에서도 공수를 연결하며 볼 배급을 담당하는 중앙 미드필더가 그러한 역할에 가장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들은 군대로 따지자면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는 선수인 셈인데, 해당 종목의 주장과는 별개로 사실상 경기를 풀어가는데 핵심이 되는 선수라 감독들이 가장 많은 작전을 지시하는 포지션입니다. 그래서 축구에서의 중앙 미드필더를 최근 웬만한 팀이 다 쓰고 있는 4-2-3-1 포메이션 상에서 전술적으로 봤을 때 무슨 역할을 하는지 좀더 상세히 보자면, (숫자 4가 4선–백4, 좌우 윙백과 중앙 수비수-이고 숫자 2를 3선(중앙 미드필더)으로 칭하겠습니다. 그 다음 숫자 3을 2선 미드필더(공격형), 그리고 마지막 1은 최종 전방 공격수(스트라이커, 원톱)로 칭합니다.) 3선에 있는 2명의 미드필더는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팀 페널티 박스부터 상대팀 페널티 박스까지 오고 가는 긴 활동영역을 갖는 팀의 살림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게 소위 말하는 ‘중미’(축구 관련 사이트에서 축빠들이 중앙 미드필더를 줄여 부르는 명칭)가 볼 배급, 공간 창출, 대인 방어 등 사실상 전술의 핵이지요.


 그런데 이번 대회의 A대표팀은 어땠습니까? ‘중미’로 발탁된 선수는 총 5명이었는데요, 대다수의 경기는 황인범(6번)과 박용우(5번)가 주전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굳이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너무나 처참했습니다. 후방 빌드업의 붕괴와 어이없는 백패스 남발의 결과는 아주 손쉽게 실점을 하는 것이었는데요. 이는 국내에서 밤샘하며 경기를 지켜본 국대 축구 팬들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켰고, 이들은 결과적으로 졸전에 졸전을 거듭한 원인제공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국대 차출 때부터 전년도 국내 K리그의 득점왕 출신인 스트라이커 주민규를 뽑지 않아 K리그 팬들의 원성이 어마어마했으며, 심지어 리그를 씹어먹었던 광주의 주전 중앙 미드필더 이순민은 어찌어찌 명단에는 포함시켰으나, 막상 대회에서는 한 경기도 출장시키지 않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국내파 선수들을 외면했습니다. 월드컵도 아니고 아시안컵이었는데도요.


 이렇게 되자, 에이스급의 다른 선수들은 어땠습니까. 일단,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뛰는 우리의 손흥민과 이강인은 아주 답답했겠죠. 그러니까 이강인은 자꾸 후방으로 내려와서 본인이 볼을 소유한 뒤 질질 끌다가 볼을 빼앗기거나 아니면 본인조차 답답한 횡패스를 하는 등 뭔가 말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는데요. 심지어 왼발잡이가 오른쪽에 가 있으니 크로스의 질도 떨어지고 아무튼 많이 답답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조별예선 첫 경기였던 바레인 전에서는 이강인이 직접 골을 넣은 장면이 나왔지만 이후엔 말레이시아 전 프리킥 골을 끝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손흥민과의 투샷도(이전 A대표팀 평가전에서 축빠들이 극찬했던 ‘SON’과 ‘KANGIN’의 투샷) 프리킥 찬스에서조차 어색하게 잡히는 아주 희귀한 일이 되었죠. 결론적으로 운빨이었는지 어찌어찌 추가시간에 골이 들어가는 바람에 토너먼트 주요 경기마다 팀이 억지로 살아남긴 했지만 이건 뭐 사실 팀이 언제 패배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던 거죠. 그렇게 원치 않았던 합숙일만 점점 늘어나게 되니 결국 터질 게 터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단체 운동” 측면에서의 축구라는 스포츠를, 대학 다닐 때 축구부에서, 그리고 군대에서 주구장창 수비(윙백+수비형 미드필더)만 했던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몇 자 적어보자면, 사실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나름 호리호리했던 몸매로 엄청나게 빠른 주력을 자랑했기에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로 오래 활동했던 터라 수비는 뭔가 축구 잘 못하는 애들이 하는 별로 어렵지 않은 포지션으로 쉽게 생각했었습니다. 뭐 다들 그랬죠. 난 잘하니까 공격한다, 뭐 그런 마인드로요. 하지만 막상 제가 직접 뛰어보니까 이건 뭐 공격은 템포 조절이 가능한데 흔히 말하는 윙백이나 풀백 혹은 수미(수비형 미드필더)는 경기 내내 계속해서 주구장창 뛰어다녀야 하는 정말 미친 체력을 요구하는 포지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제가 꼰대가 되면서 입만 살아서 가볍게 몇 마디 날리는 공격수들과는 철저하게 철벽을 치며 뛰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축구를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잘 하지도 못하면서 자기는 공격에 특화되었다며 깝죽대면서 3선 밑으로는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 애들이 생각보다 꽤 있었는데요, 얘네들은 지들이 실수해서 볼을 빼앗기거나 혹은 아주 쉬운 기회를 날려서 골을 넣지 못해도 미안한 기색도 없는데 막상 수비가 한번 뚫리거나 살짝 실수만 해도 아주 그냥 사람을 축알못으로 만들면서 바보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 이 단체운동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구나, 운동이라는 피지컬 관리 보다도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멘탈 관리가 오히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3선이나 4선에서는 전방의 움직임이 직접적으로 똑바로 보이는데, 1선이나 2선에서는 사실 후방의 움직임이 바로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수비와 중원 그리고 공격이 서로 소통하는 게 너무 어려웠고, 무엇보다 자칭 공격수들의 수비수들을 향한 잘난 척이나 훈계 같은 게 정말 듣기 싫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복학생 때 총장배 시합 뛰던 날 녹지 운동장까지 늦게 올라온 2학년 공격수 후배 몇몇한테 뭐라고 했다가 상대팀 선수들이 보는 바로 앞에서도 그들이 아주 당당하게 “선배는 수비나 똑바로 하세요.”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축구부의 체력향상을 위해 단체로 4.18 단축마라톤을 뛰자고 했다가 공격수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게시판에 마라톤은 꾸준히 뛰는 수비수나 뛰라는 식으로 저를 심하게 저격했던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라톤은 제가 있던 축구부의 전통으로 남아 20년이 넘게 행사참여를 이어오고 있어, 한편으로는 축구 못하는 꼰대 선배로서 약간 뿌듯한 감정도 있습니다. 꼰대가 만든 악습(?)이 이상한 전통이 된 사례지요. 아무튼 그렇게 대학 동아리 축구부에서도 공격수와 수비수 간에 대놓고 갈등이 있었는데요, 이걸 국가대표로 확대시키자면 공격수와 수비수 뿐만 아니라 공격수 간 혹은 미드필더 간에도 이런 갈등은 단체 운동의 특성상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를 잡아줄 리더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학교 동아리라면, 갈등이 생긴 당사자들을 중재하는 선배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고 클럽 팀이나 국가대표 팀이라면 감독의 역할이 아무래도 절대적이라고 봅니다.


 최근 축협 사태로 인해 아시안컵에서의 답답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경기력과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중앙 미드필더라는 포지션, 그리고 단체운동이라는 특성상 팀에서 선배의 역할 등을 몇 자 적다 보니 어쩌다가 오랜만에 저의 대학 생활과 축구부 동아리 활동까지 끄집어 내게 되었네요. 그런데 사실 축구! 하면 남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축구 옷(소위 말하는 레플리카)도 남자들만 입고 다니면서 자신이 축빠라는 것을 인증하는 거였는데요. 놀랍게도 요즘엔 여자분들도 레플리카를 착용하며 축구팬임을 인증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여자들은 아무도 축구팀의 레플리카를 입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2005년이었나 '워터 보이즈'로 유명했던 일본 영화계의 신성(新星) 히라야마 아야(Hirayama Aya, 그녀는 2004년 배우 양동근과 함께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의 사진 한 장이 당시 제 시선을 아주 강하게 끌었습니다. 그건 그녀가 단지 매우 순수하고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또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의상 때문이었는데요. 그녀가 착용했던 그 강력한 레플리카가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착용했던 건 당시 저도 보유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대표 축구 클럽인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레플리카였는데요. 확실히 약간은 마르고 귀여운 타입의 그런 여성분이 레플리카를 입었을 때 저 같은 축빠들은 정말 묘한 매력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물론 그런 여성분들은 뭘 입어도 매력적이겠지만 그래도 그 레플리카라는 것을 여성분이 입으면 아주 귀엽고 활동적이고 털털해 보이는 착시를 더욱 더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 운동하러 나가다가 에미레이츠 항공의 스폰서가 떡하니 박힌 초록색의 아디다스 23-24 시즌 아스날 서드 유니폼을 입고 흰색 반바지 차림에 푸마 스니커즈를 신은 한 여성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북런던의 맹주 아스날의 광팬으로서 그녀가 어찌나 사랑스러워 보였던지요. (심지어 등번호도 8번 외데고르였습니다!) 한편, 제가 4년 동안 주재하여 지금은 제 2의 고향이 된 이스탄불에선 길거리에 갈라타사라이나 페네르바체 혹은 베식타쉬 클럽 팀의 레플리카를 입은 여성분들도 꽤 많았었는데, 한국에 오니 야구장 근처에 야구팀 레플리카 입은 분들만 좀 있지, 축구팀 레플리카를 입은 여성분들은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국대 사건이 봉합되어 잘 마무리되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삼정톤이 떡! 박힌 예전 성남일화의 샛노란 레플리카라도 좋으니 제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 거대도시 서울 곳곳에 축구 클럽 팀이나 각국 A대표팀의 레플리카 입은 멋진 여성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야심한 새벽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항목 중 ‘해외축구’를 클릭해 보니 지금 막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5라운드 토트넘과 울버햄튼의 경기가 진행 중이네요. 하지만 스포티비(SPOTV) 채널 유료화(TV채널 SPOTV ON, OTT채널 SPOTV NOW)로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저를 보니 저는 진정한 축구 팬은 아니고 그냥 레플리카 입은 여성분들이나 좋아하는, 그저 그런 플라스틱 축구 팬(Plastic Football Fan)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아, 2006년과 2010년 월드컵 주제가를 불렀던, 그리고 한 때 축구선수와 동거했던 라틴 팝의 여왕 샤키라(Shakira)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이 분 저보다 한 살 누나인데, 작년에 탈세혐의로 스페인에 거액의 벌금을 내고 겨우 실형 선고를 피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뭐 그래도 월드컵! 하면 아직까지 샤키라 아니겠습니까. 물론 푸에르토리코 출신 미국인인 리키 마틴 형님의 <La Copa De La Vida (The Cup of Life)>도 있지만 그래도 월드컵 두 대회 연속 주제가는 콜롬비아 출신 샤키라 누님이 유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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