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은 자폐인이다. 나는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바쁜 부서에는 근무할 수가 없었다. 녀석이 세 살쯤 되었을 때부터 근무시간에 시달리는 대신 야근은 안 하는 민원업무를 하고 있었다. 마음이 지치는 날들이었다. 낮에는 민원들한테 시달리고 퇴근 후에는 해맑게 끝없이 뛰어다니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력감에 눈물짓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날도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를 씻겼다. 녀석을 재우기 전에 나는 거실에 흩어져 있는 동물농장 블록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녀석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까치발로 블록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녀석은 언제나 그렇듯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저 녀석을 어쩌지 하는 절망스러운 마음과 막막함에 눈물이 났다. 울면서 블록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녀석이 악어 블록을 나한테 가져와서는 악어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울고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울지 마"
"응? 뭐라고?"
"........"
"다시 말해봐, ㅇㅇ아"
"치치 치치 치치"
놀란 내가 재차 물었지만 녀석은 대답이 없었고 자신만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녀석은 엄마, 아빠, 싫어, 배고파... 주로 생리적 욕구를 한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뭔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서 말로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나 따뜻한 위로였다. 녀석과 함께하면서 녀석은 악어 블록 일화와 같은 순간들을 여러 번 선물했다. 녀석과 실랑이를 하고 조금 좋아졌다 다시 제자리인 거 같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일희일비를 반복하면서 내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내가 마음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마다 녀석은 나에게 희망의 한줄기 빛을 준다. 그러면 나는 또 힘을 내 다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녀석의 희망주기는 마치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녀석의 "엄마에게 희망주기"는 고3이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 또한 녀석과 함께 성장하였기 때문에 녀석에 대한 걱정, 속상함이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희망에너지로 충전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