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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Dec 29. 2021

의미 중독자

나는 어쩌다 의미 중독자가 되었나?


나는 의미 중독자다.

무엇을 하든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곤 한다.



주말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자책하게 된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말이다.

아! 이봐, 이봐, 또 의미 타령이네.     


이런 의미를 찾는 중독은

아이들에게 잔소리로 이어진다.

내 기준으로 아이가 게임을 한 시간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는데 말이다.  

   



의미는 가끔 합리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생각한 것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그래도 이래 저래한 건 의미가 있었어’하고 마무리하지 않으면 못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왜 나는 의미 중독자가 되었을까


아이를 위해 시간을 쓸지, 승진을 위해 시간을 쓸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는 당연히 아이를 위한 시간을 선택했다.     


이후로 나는 휴직을 했고

아이 치료를 위해 부서를 옮겼다.

근무했던 조직에서 갑자기 승진시기가 빨라졌고 나와 같은 시기에 같은 조직에서 일을 시작했던 동기들은 먼저 승진했다.     


그때부터 의미 찾기가 시작된 거 같다.

신포도를 먹은 여우처럼

아이가 성장해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승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닌 아니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의미 중독자가 되었다.   




빅터 프랭클
의미 추구적 행복이론
  

내가 빅터 프랭클의 의미 치료를 알게 되었을 때 의 이론에 깊이 감동했다. (난 의미 중독자니까)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의미를 찾아낸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고 이것이 의미 치료법의 핵심이다.     


그의 이론에 내 삶을 비춰보니

내가 왜 의미 중독자가 되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녀석이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걸 안 때,

말이 안 늘고 발달이 정체되었던 몇 년간,

녀석의 장애가 좋아지고 있지만 한계가 보일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의미라는 무기로 부정적 생각과 불안을 이겨냈다.      

  

나는 살기 위해

의미를 부둥켜안고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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