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집단상담 시간이었다. 초반 몇 시간은 이론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내담자로 집단상담 실습이 이루어졌다.
그때 상담의 역동을 처음 느껴봤다. 서로 이야기를 들으며 반응하고 깨달아갔다. 우리는 집단상담을 하면서 나만 이런 상황에 놓이고 이런 문제로 힘든 게 아니라는 것에 위안과 힘을 얻었다.
집단상담은 내담자 중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유사한 경험을 다른 이가 꺼내놓기도 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하면서 진행된다. 마지막에 상담시간 동안 느낀 것을 돌아가며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어떤 분이 장녀로서의 어려움을 꺼내놓았다.장녀이기 때문에 집안 대소사를 준비하는 일에 쓰였고 고작 한두 살 어린 동생은 성인이 된 지금도 열외라는 게 속상하고 부모님께 섭섭하다는 이야기였다. 장녀 분과 동생이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은 대학 다니던 시절에 동생은 허용되고 그 선생님은 집에 불려 가곤 했었다고 한다.
그때 고2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는 고2 봄방학 때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셨다. 어머니는 뜻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못 받아들여 일으켜 달랬다가 누웠다를 반복하셨다.
어머니가 맡고 있던 일과 책임은 고스란히 언니와 나에게로 맡겨졌다.세탁기가 없어서 언니랑 둘이 손빨래를 했고 식사 준비 등 집안일을 해야 했다. 몹시 고되었다.
엄마는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혼자 해내셨었기 때문에 처음 하는 일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힘든 집안일을 혼자 해내느라 병이 드셨다.
언니는한창 좋은 나이에 병간호와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언니는 지칠 때면 친구를 만나러 나가서는 집에 늦게 들어오곤 했다. 그런 날이면 오빠가 학교로 전화를 한다. 그럼 나는 야자를 접고 엄마를 돌보러 집으로 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을 가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마음이 없으니 공부는 뒷전이었다.현실이 힘드니 미래를 꿈꾸는 건 욕심 같았다. 어린 나와 언니에게엄마를맡겨두고 돌보지 않는 형제들이 미웠다. 간호전문대를 가서 졸업하면독립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언니는 시집을 갔다. 언니가 도와줬지만 엄마를 돌보는 건 내 몫이 되었다.
엄마는 어느새 엄마라기보다는 보살펴야 할 동생 처럼 되었다. 대학을 가서도 엄마를 챙기다 보니 MT와 같은 대학생활을 즐길 수 없었다.불행하다 생각했고 계속 불행할 것 같았다.
이후 나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으로 아팠고, 더 이상 엄마를 돌보기 어려운 건강상태가 되자 오빠가 엄마를 모셨다.
내가 한 선택이었다
장녀로서의 어려움을 듣고, 고2 때 기억을 떠올리다 그간 내가 긴 시간 끝에 내렸던 결론을 말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라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고.
가출을 할 수도 있었다. 엄마를 돌보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도 내가 그렇게 살겠다고 선택한 거였다.
수업시간에 내 경험을,
나도 환경 탓과 가족 탓을 했지만 결국 그렇게 살게 된 건 내가 결정한 것이 더라는......말을 했다.
수업이 마무리되고 오늘 수업에서 느낀 점을 나눌 때 장녀인 동기 선생님은 그게 자신의 선택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덜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