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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Oct 30. 2022

나는 이렇게 책을 읽어주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불안이라는 동력

녀석의 발달에 대한 불안은 아이러니하게도 동력이 되었다. 무엇엔가 정신을 팔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찼다. 막상 휴직을 하고 나니 수중에 돈도 없고 복지관에서 하는 치료는 대기기간이 너무 길었다.


아이를 위해 휴직을 했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뇌과학 책에서 '아직 언어발달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적절한 자극으로 발달이 가능하다'는 그 글귀 하나를 믿기로 했다. 뇌를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책 읽어주기라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책 읽어주는 데는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이 필요 없으니 말이다.


책에 나온 사례처럼 하루에 열 권의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을 목표로 했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서 같은 책을 몇 칠씩 읽어 주곤 했다. 처음인 나에겐 그림책을 고르는 것도 힘든 일이고 대여와 반납을 위해 녀석과 함께 도서관을 방문하는 일도 많은 에너지가 쓰였다. 녀석은 천방지축이었고 두 살 어린 동생도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이사를 하면서 집을 구하고 남은 비상금의 절반을 책을 사는데 썼다. 잘 만들어진 단행본이 좋다고들 했지만 시간도 아끼고 책이 나쁜 영향을 줄리는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전집을 여러 질 들였다.


녀석은 처음에는 동물들 실사사진이 들어있는 책을 주로 보았다. 사진 이미지에 빠져서 보고 또 보았다. 책을 읽어주면 녀석은 옆에 잠깐 앉았다가는 까치발로 거실을 돌아다니곤 했다.


전래동화와 명작동화에는 이야기가 녹음된 CD가 부록으로 함께 있어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잠자기 전에 들려주기 좋았다. 구연하는 재주는 별로 없었지만 전래동화를 읽어줄 때면 나름 목소리를 바꿔가며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책 읽어주는 거야 못하겠어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일 10권의 책을 읽어주는 일은 솔직히 힘든 일이었다.  오히려 녀석의 동생이 책을 읽어주면 잘 들어서 동생의 호응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책을 읽을 때 옆에 녀석이 앉아 있는 시간이 느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생겼고,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는 날이 왔다. 말이 느는 것이 보인 것은 한참 후였다. 하지만 바퀴를 돌리고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시간은 줄고 책을 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여름쯤 되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주문했다. 미리 연습하면 학교 가서 수업을 잘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1학년 교과서에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동화가 실려 있었다. 교과서 뒷쪽에는 가면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동생과 함께 가면을 만들어서 역할 놀이를 했다. 녀석과 동생이 많이 재밌어해서 역할을 바꿔가면 꽤 오래 연극놀이를 했었다. 녀석은 어느새 이야기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었다.

     

@ 애플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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