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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 Feb 18. 2022

10년 만나면 발가락도 귀엽다

장기 연애의 즐거움

7년 만나고 결혼하면 서로에 대해 더 이상 알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의외의 곳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된다. 가령 '발가락'처럼 말이다. 


연애할 때는 서로의 발가락을 보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항상 집에 함께 있다 보니 서로의 발가락이 눈에 띄는 순간이 온다. 특히 겨울에 그렇다. 


수족냉증인 나는 겨울엔 발톱이 파랗게 될 정도로 차가워진다. 하지만 양말은 잘 안 신는다. 양말을 신으면 땀이 나는데, 그 땀이 식으면 더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결혼 전엔, 발이 시릴 때마다 엄마 허벅지 틈으로 발을 쏙 넣곤 했다. 그럼 엄마는 '이노무 지지배... 양말을 신으라니까' 하면서 손으로 발이 따뜻해질 때까지 주물러준다. 


그 습관이 몸에 남아있었던 걸까. 올겨울엔 나도 모르게 남편 허벅지 틈으로 발가락을 쏘옥 넣어버렸다. 허벅지 밑에서 발등을 따뜻하게 한 다음, 다시 발을 빼 남편 종아리에 발바닥을 올려놓았다. 남편의 체온으로 발바닥까지 따뜻하게 만들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내 발을 덥석 잡았다. 눈은 그대로 TV를 향한 채, 아주 자연스럽게 내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발이 너무 차다. 수면양말 신으라고 해도 안 신을 거지?"


그렇게 연애 때보다, 내 발을 자주 보게 된 남편. 어느 날은 내 발가락을 유심히 보더니 뜬금없는 말을 시전 했다. 


"근데 발이 왜 이렇게 생겼지?"


평소 신발을 225~230 사이즈를 신을 만큼 작고 통통한 발을 가진 나는 순간 마음이 덜컹했다. 발가락이 너무 짧고 못생겨서 그런가? 내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털이 발가락에 남아있나? 하지만 이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발가락이 너무 쪼꼬매. 아기자기 귀여워" 


남편은 나의 둘째, 셋째, 넷째 발가락 3개를 가운데로 모으더니. 동시에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발가락에 눈, 코, 입을 그려 이모티콘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당신만 내 발가락이 귀엽지 다른 사람 눈엔 안 귀여워..) 


내 발가락이 너무 귀엽다며, 커다란 손으로 발등까지 감싸 안아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는 남편. 이렇게 일상에서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우리는 결혼했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당신만 귀여운 내 발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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