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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03. 2020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다

프로젝트 comma, 시작하는 이야기




당연한 것들은 사실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에 내려 델리만쥬 냄새에 이끌리던, 긴 장마가 끝나고 올라오는 풀 내음을 크게 들이마시던 날들이 까마득합니다. 낯설었던 마스크가 이제 법제화가 될 만큼, 어색한 것들은 당연하게, 당연한 것들은 당연하지 않게 우리 삶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백상 예술대상은 이전의 시상식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행됐습니다. 무관중으로 진행된 낯선 모습의 시상식에서 다섯 명의 아역 배우들이 보여준 특별무대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역배우들의 순수한 목소리로 전해진 <당연한 것들>이라는 노래와 드라마 속 앞으로의 안녕을 바라는 대사들과 함께, 배우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이 화면에 포착되었습니다.  



56회 백상 예술대상 특별무대 <당연한 것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당연한 것들 中>


    '당연한 것들이 실은 감사한 것이었다'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 그리고 당연한 날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하나둘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마스크에 가려져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지 어엿 6개월입니다. 실제로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처럼 새로운 기준이 우리 앞에 놓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누린 것들은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대면이라는 환경은 오감을 통해 경험했던 세계를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사라져 가는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발 벗고 수집하여 언젠간 당연하지 않아 질 '당연한 이야기'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식구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아침 8시에 부은 얼굴로 학교에 달려가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그 당시를 회상해보니, 이상하게 원하는 성적을 받아 좋아하던 때보다 사소한 장면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야자 시간에 몰래 나가 배드민턴을 치다가 교감 선생님께 걸려 교무실 앞에서 벌을 섰던 것, 급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몰래 배달음식을 주문시켜 먹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그 순간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별 것 아닌 시시콜콜한 것들로 돈독해지는 것이 인간관계였다면, 거리두기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가 단단해지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부분은 바로 각자의 바쁜 일상에 밀려 뒷전이 되었던 당연한 존재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식구가 되어주시겠습니까?

 

   JTBC에서 방영했던  <한 끼 줍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낯선 집에 찾아가 집주인에게 숟가락을 건네며 '식구가 되어주시겠습니까?'라는 멘트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식구'는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뜻하고,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이 한 가족의 식사에 어우러져 '식구'가 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의미가 '식구'라는 말을 통해 보다 더 넓은 의미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프로그램에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청춘들부터 동거 커플까지 각기 다른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이 등장합니다.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나눈 친구들이,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료들이, 함께 집을 공유하며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피를 나눈 것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 우리에게 '가족'은 혈연관계를 떠나 함께하는 소중한 관계를 지칭할 수 있는 단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의 서두에도 언급했듯, 지금은 우리 주변의 당연한 '가족'과 같은 소중한 관계를 되새김질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Family by Family

    

   가족사진을 떠올리면 빛바랜 갈색 배경에 나무 의자에 앉아 계신 부모님,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그런 정형화된 장면이 그려집니다. 어색한 스튜디오의 공기 탓인지, 사진 속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가족사진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족과의 거리가 좁아지고 있는 지금, 자연스러운 장소에서 편안한 옷을 입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족들을 사진 속에 담는 '가족사진 프로젝트 : Family by Family'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위에도 언급했듯 저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내가 함께하는 모든 존재는 다 가족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가족'같은 사이로 서로를 칭해왔던 친구들과도, 한 달째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반려동물과도,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함께 하는 동료들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형식적인 하나의 생각일 뿐 우리가 만날 그들이 말하는 가족은 또 다른, 더 다양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집', '집밥', '홈 인테리어' 등 우리가 생각하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것들은 '아지트'로, '추억이 담긴 음식'으로, 그리고 그들의 공간에 묻어있는 '취향'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주 토요일, 이 공간에서 가족사진 프로젝트 'Family by Family'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희는 '당신의 일상이 이야기가 되는 곳'을 만들어가는 팀  <Comm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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