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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Dec 10. 2021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다 잘하면 좋겠어.

"그런 식으로 대충대충 할 거면 그냥 다 관둬!!!!"


기분 좋게 아침을 차려주고는 오늘도 30분을 넘기고, 너무나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는 꼬맹이를 보고 속이 뒤집혔다. 이른 아침 일어나 책을 보던지, 연습하는 음원을 듣던지,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학교 갈 준비를 빨리 하기를 나는 바란다. 1년 동안 아침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 누누이 말해왔다.


어떤 날은 스스로 을 읽기도 한다. 만화책...

그리고 어떤 날은 전날 못 했던 숙제를 엄청난 속도로 해낸다. 역시나 선생님은 무서운가?

어느 날은 식사를 일찍 끝낸다. 역시 전 날 혼이 많이 났던 게 효과가 있기도 한가...


유치원 시절로 거슬로 가보겠다. 당시 학업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었기에 난 가급적이면 아이가 오랜 시간 유치원에 있기를 바랐다. 때문에 영어유치원을 택했으며, 심지어 하원 후 이어지는 과정도 선택해서 아이는 3시 30분경... 비교적 늦게 집에 왔다. 그럼에도 내 일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늘 정신은 없었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많은 조언들을 솎아내야만 했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의 입장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영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달리게 하겠다는 분들이 많다. 이 경우 초3 이후 수학을 집중적으로 해야하기에 영어는 미리 다져둔다는 목표가 다수인 것 같다. 다음으로는 어린 시절에 많이 놀아야 하지만 영어만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닌 엄마다. 그리고 급하게 해외에서 거주하게 된 가족의 자녀가 문화적 충격을 받을까 걱정돼서 조금이라도 영어에 노출을 시킨 후 외국으로 나가려는 부모도 있다.


7세 아이는 유아계의 고3이라 불린다더라. 놀더라도 영어는 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닌 엄마들은 키즈카페 혹은 쿠킹클래스도 영어로 해주는 곳을 잘도 찾아 함께 하자고 말한다. 영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선행학습을 시키려는 분들은 다양한 놀이 수학 학습 과정이 있는 곳의 정보를 정말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유아계의 고3 시절을 잘 계획해서 그야말로 맞춤형 학습과정을 아이에게 선사했다.


난 어린 우리 꼬맹이의 유아계 고3시절을 최선을 다해 놀게 했다. 내가 너무 숨이 막혔었으니까...

8세가 된 이 녀석은 다행인지 아직까지 학업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서 수학 학습지를 찾아서 엄마와의 학습을 시작했다.

진짜 큰일이 나겠더라. 가족끼리는 가르치는 거 아니라더니... 참말이더라.

내가 애를 잡거나 애가 폭발할 것 같았다. 내 애의 머리가 이 정도인가? 그리고 아이는 "엄마, 원래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어?"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그래서 합의 하에 문제지를 다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난 학원을 선택했다. 정말 신이 나서 다닌다. 아마도 엄마와 선생님은 하늘과 땅 차이보다 컸을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짜면서 선행은 못 하더라도 현행이라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날로 커졌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학원계도 난리인데, 이전 같았으면 문자를 받고 한동안은 자체적으로 휴원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같은 반 친구가 아니면 그냥 보낸다. 학업을 쉬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 보다 더 확고해진 것 같다. 자꾸 뒤쳐진 느낌이 너무 강해진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여전히 속이 터지게 밥을 먹고 등교 시간에 간신히 겨우겨우 맞추어 빈둥빈둥 준비하는 아이를 보고 난 폭발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다 그만둬!!!"를 시작으로 네가 소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연습은 안 하냐? 책을 샀으면 읽어야지 뭣하러 돈만 쓰게 하냐? 시간을 낭비하면 되냐? 1학년이지만 3학년 수학을 잘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넌 1학년 문제도 제대로 안푸냐? 받아쓰기는 자신 있다더니 왜 틀렸냐? 등등등의 랩을 퍼부었다.


이 모든 화의 근원은 비교이다. 내가 내 아이만 보아야 하는데, 타 아이와 비교하니 속이 터진다. 세상엔 영재스쿨이 너무 많고, 영재도 너무 많다. 별일 아니라고 지나쳤는데 사실 난 부러웠던 모양이다.

스스로 참으로 잘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더 앞선 녀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른다. 내 아이는 건강하고 참 밝고, 정말 모든 일에 긍정적인 녀석인데 내가 어둠을 선물했다.


비교라는 무서운 벌레에게 물린 듯 속이 간지럽다. 건강하기만을 바란다면서 내가 그 녀석에게 건강하지 못한 말들로 건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타 아이와 비교하면 이 녀석은 참 건강한데 말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식성을 지녔으며, 밥도 정말 맛있게 잘 먹는데... 숙제도 혼자 잘 하고 똘똘하게 속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데...

내 속의 벌레를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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