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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Jan 16. 2022

엄마의 그림일기

오래전 인연이 닿았던 작가님의 개인전을 보며 카메라에 담아온 것들을 토리에게도 보여주었다.

꼬마는 "왜? 왜 도자기로 저걸 만들어?"라고 묻는다.


음...


일전에 TV를 보다 우연히 마주한 광고 속 주인공이 던지는 말에 기가 찼던 기억이 있는데, 토리의 질문이 바로 그때의 감정을 일으켰다. "어쩌라고?"

내가 다시 왜 만들면 안 되는지 물었더니 "엄마가 저 젓가락은 못쓴다며? 근데 왜 만들어? 숟가락도 없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게...

근데 도자기는 무얼 어떻게 들어야 하는 걸까? 도자기가 뭔데?

전시 얘기를 잠시 이어가며 개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 아니 적어도 지속되는 의문의 매듭은 지어보련다.


전시는 이태원에 위치한 [인력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간을 찾기에는 아마도 [초능력]이라는 바를 검색하는 편이 훨씬 빠를 것이다.

김준명 작가의 <운수 좋은 날> 전시는 아주 작은 공간에 반해 딱 그것의 반비례만큼의 울림을 남긴다. 정신없는 벽지와 공간을 이미 가득 채워둔 철제 구조물은 [인력시장]을 운영하시는 주인장이 작가에게 내어주는 숙제이다. 화이트큐브와는 너무도 다른 이 공간에 도자기인데 도자기 같지 않은 무언가가 곳곳에 놓여있다.

이사를 가는 곳, 혹은 막 입주한 공간을 연상시키는 것이 전시의 콘셉트인 것으로 보인다. 옷걸이에 걸린 수건과 비누, 아직 풀지 못한 혹은 이 풀어야 할지 모르는 책 묶음, 급하게 식사를 해결한 흔적으로 보이는 자장면 그릇과 나무젓가락에 사용한 휴지, 우리 집 옥상 어딘가에도 잔뜩 쌓여있는 세라믹 화분과 벽돌,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나뭇잎, 이삿짐 박스 안에 놓인 고운 백자 등이 한데 묶여 독특한 서사를 이어간다.

작년 봄 영은미술관에서의 <돌 그리고 새겨진 단어들>에서는 말 그대로 펼쳐서 보였다면, 이번에는 꽁꽁 싸고 에 끼워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다.


누가 봐도 흙으로 만들었을 수건과 그 주변에 놓인 도자기 비누, 진짜 책들 사이 확실하게 가짜로 보이는 도자책, 도자로 빚어진 줄 알고 보았던 자장면 그릇 옆에 놓인 진짜 같은 휴지 등은 하이퍼리얼리즘과 의도적인 허상의 재현이 뒤죽박죽 섞이면서 혼란을 야기한다. 그러다 결국 왜 도자기로 이러한 사물들을 빚냐고 묻게 된다. 토리가 정말 천재거나 아니면 아이들 눈이 정확한가 보다.

실비아 하이만(Sylvia Hyman)처럼 누가 봐도 속을 것 같이 만들어진 비누와 스치듯 보아도 흙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대상들이 도대체 도자기라는 것은 무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늘 생각하던 도자기는 무엇일까?

실비아 하이만(Sylvia Hyman)

오래전 선비님들의 방안을 장식하던 기물일까? 혹은 계급사회 속 식탁 위 신분의 상징이었을까? 되물림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전통공예인가...

'도자기'라는 세 글자 내에 새겨진 너무나 무거운 역사성이 우리 집 식탁이나 나의 언어습관에서 묻어 나왔는지, 어린 토리에게도 도자기라는 것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나라의 것으로 인식이 되었나 보다. 어쩌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수업에서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김준명 작가는 그 무거운 역사성을 조금씩 벗겨내는 작업을 하는 듯 보인다. 일상의 가벼운 소재들을 흙으로 빚어 가짜인 듯, 진짜인 듯 애매한 경계 위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사를 주제로 그 모든 것을 우리의 눈앞에 펼친다. 과연 도자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도자로 무얼 어쩌라는 것이냐며 되묻는다.


고슴도치인 이 엄마는 토리의 무심한 그 질문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역시 우리 강아지~ 엄마에게 또 가르침을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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