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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Jan 23. 2022

엄마의 그림일기

사실 그리고 유희

주말 날씨가 푸근하다. 한동안 매서움을 떨치던 겨울 날씨가 이제 조금 마음을 누그러뜨린 듯하다. 차가운 공기가 숨을 고르니 먼지가 난리다. 그럼에도 주말을 허투루 보내기 아쉬워 토리와 함께 우리 셋은 소풍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서울 근교, 바닷가, 그리고 차크닉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떠났다. 토리는 차 안에서 늘 소리 연습을 한다. 가는 내내 귀가 쉴 틈이 없다. 그 사이에 신랑은 내게 말을 건다. 늘 바쁘기에 이 시간, 소란 틈의 대화도 즐겁다. 그런데... 진심으로 정신이 없다. 고속버스 안의 노래방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회의라고 표현하면 가장 근사치의 상황을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승용차 안에서의 그 난리는 나의 시위로 마무리되었다. 제발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빨리 나를 이끌라는 명령과 함께!

1차 목적지는 운영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근처 선녀바위로 향하던 길에 우연히 공영주차장 같은 곳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알음알음 알려진 장소 같이 보였다. 그곳에서 하루 캠핑을 하기 위해 준비해 온 차들의 형태가 화려했다. 차 위에 얹힌 텐트, 차 옆으로 이어 붙인 텐트, 자신만의 전용 화장실 텐트 등등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더욱 멋진 것은 노을이 장관을 이루는 바다였다. 물이 빠진 모래 위 얹힌 통통배도 너무 멋있었다. 확~ 트인 마음에 살짝 쓸쓸함이 감도는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리도 차 안에 의자를 접고, 내부 구조를 조금씩 변경하고 주변에 테이블을 펼쳤다. 가스난로도 피우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토리는 물론 레모네이드를 손에 쥐었다. 이 녀석은 소풍 나오면 가능한 일탈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신랑은 주변을 살피고, 난 무작정 앉아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갑자기 초능력이 생겨서 토리의 쫑알쫑알 소리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만의 차분함인가... 속으로 너무 모순된다고 느끼면서도 고요함이 좋았다. 팬데믹 이후 모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 지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이 시국에 아무도 없음을 내가 이리 좋아한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늘 사람을 그리워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아이와 늘 볶닥거리며 지내는 루틴에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아마도 육아하는 분들은 다 같으리라. 사람이 그리운데 동시에 절대적으로 혼자만 있고 싶은 모순을 다 안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오경성작가의 <문> 연작 (사진출처: 시민일보 홈페이지)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 문을 들고 다니면서 작업하는 오경성 작가의 사진이 머리를 스친다. 아름다운 풍경에 생경하게 문이 놓여있다.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으면서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문'이라는 대상이 놓였다는 이유만으로 실재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어려워진다. '문'은 열어야 하면서 동시에 닫으려는 의지 모두를 작동시키는 대상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게는 저 '문'이 늘 숙제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뒤로하고 문을 열고 가고 싶은 욕망도 일지만 동시에 아름다움 속에서 같이 머물고 싶은 묘한 기분이 감돈다. '문' 뒤의 세상이 두렵지만 반면에 아직은 '문'이 내 가시거리에 있기에 안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이불 속이나 구석진 탁자 아래 공간과 같은 '문' 이면의 세상은 주어진 상황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행복이 감돈다.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며 갑자기 생긴 초능력을 발휘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헤테르토피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연두, <Location #1>, 2005. / 오경성, <Purple Stone>, 2020. 

오경성 작가의 <문> 연작은 정연두 작가의 <location #1>(2005)과 연결되기도 한다. 물론 정연두 작가는 풍경 사진을 배경으로 연출된 공간을 재촬영하여 재현물의 2차 재현과 같은 방식으로 실재와 허구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반면에 오경성 작가는 실제 자연 속에 프레임까지 달려있는 철제문을 놓고 촬영한 것으로 풍경사진을 제작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결과물은 현실과 허상, 실재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각과 그것이 나의 인지 작용에 미치는 반향에 있어서 유사성을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내 위치와 주변 환경에서 다른 것을 바라보며 동경한다는 느낌, 비록 그것이 허상일지라도 늘 가보고 싶은 욕심과 동시에 앉아 있는 이곳이 내게 주는 안도와 삶의 희망을 모두 끌어안으려는 욕심이 늘 핑퐁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토리와 함께한 서해바다로의 하루 소풍은 작품으로만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일상의 단비 같은 경험이었다. 녀석은 조개구이를 잔뜩 먹어치우고는 저녁 바닷가에서의 불꽃놀이를 했다. 처음 하는 위험한 놀이에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재밌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또 바닷가를 뱅글뱅글 돌면서 뛰었다. 난 마지막 힘을 모아 또 음소거를 할 수 있는 초능력을 발휘했다. 녀석의 행복한 미소가 가드 번져있던 얼굴은 음소거 이후 더 밝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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